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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화가 사는 집
    기타 etcetera 2017. 10. 23. 21:42

    보문산.

     

    국화가 사는 집  /  김태권

     

    내가 산을 다니기 전부터도 그녀는 그곳에 혼자 살았

    내일모레가 백세를 가리키는 허리는 쇼트트랙 선수다

    달빛이 없어도 머리는 메밀꽃밭 처럼 허옇고 밤송이처럼 거칠고

    얼굴에 패인 것은 골이 깊기로 유명한 불영계곡이

    미라 같은 몸에서땀도 나지 않는

    그 때마다 오늘이면 갈까 내일이면 갈까 중얼거렸다

    길위에서 중얼거릴 때마다 무릎은 빠그작거렸다

    셋이나 되는 보고싶은 자식들은 죽어서야 본다고 했다

    먼산 바래기로 삼시 세끼 외던 죽음이었다 

     

    죽을 수 있는 재주가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했다

    하릴없는 *북두가시랭이 손이 두 개나 있었다 

    흙을 파고 씨앗을 넣고 물을 주고 풀을 뽑았다

    하늘은 왜 빗방울을 떨어뜨리고 햇빛을 쏟아내고 바람을 일깨울까

    허리 한 번 펼 때마다 한 송이씩 피어났다

    땀구멍이 막혔어도 꿈이 꾸어지지 않아도 피어났다

    꽃더미가 완성되자 소리없는 환호가 터졌다

    내일도 *깔끄막진 비탈을 엉금거릴 그녀를 콩그레츄레이션! 

    구순을 넘보는 그녀의 이름은 국화다

     

    * 북두가시랭이 : 북두는 부뚜(타작마당에서 곡식에 섞인 티끌이나 쭉정이, 검부러기 따위를 날려 없애려고 바람을 일으키는 데 쓰는 돗자리)의 사투리이며,

    가시랭이는 풀이나 나무의 가시 부스러기를 말한다.

    * 깔끄막지다 : 가풀막지다 방언. 가풀막지다는 바닥 몹시 비탈져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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