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클라멘 Cyclamen persicum

 

창턱에 놓인 고운 마음은 남이 알까 저어하는 것이어서

누가 가져다 놓았니?  꺼내다가 말았다. 수줍음을 잘도 탄다.

지중해연안이 고향인 여러해살이풀로 감자만한 덩이줄기에서 잎이며 꽃줄기가 나온다.

이 덩이 줄기가 빵 같기도 하여 돼지가 좋아한다고 소브레드(sow bread)라고 한다는데 ...

야생시클라멘, 족두리꽃을 뜻하기도 하지만

sow는 (씨았을) 뿌리다, 암퇘지 등의 뜻도 있으며, 

bread는 빵을 가리키니 그럴듯한 이름이다.

Cyclamen persicum 의 개량종을 Cyclamen 이라 통칭하는 모양이다.

 

 

시클라멘 / 김경인

 

 

여자는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운다

흰 커튼이 무표정하게 흔들리는 방 안

 

거울 속, 여자가 축 늘어진 가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허물어진 무덤 한 쌍

 

내일은 꽃시장에 나가봐야겠어

중얼거리며 그녀는 무덤 귀퉁이를 열고

선반 위에 남은 시클라멘 씨앗을 밀어 넣는다

 

그녀가 뒤척인다, 꿈속 심겨진 씨앗들

싹이 튼다, 젖몽우리 단단하다

그녀는 뒤척이다 말고 가슴에 손을 얹는다

텅 빈 무덤 속 파고들며 물기를 빨아올린,

심장처럼 쿵쿵 뛰는 이파리들이

손을 휘감고 자란다

 

아랫도리에 단단히 박힌 뿌리는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고

줄기마다 뚝뚝 떨어지는 수액,

얼굴이 팽팽히 부풀어오른다

그녀를 끌고 다닌 헐렁한 눈동자가

이불 위로 뚝 떨어진다

 

몸 가득 일렁이는 이파리가 그녀를 쓰다듬는다

여자는 너덜거리는 껍데기를

창밖으로 힘껏 던져버리고

어둠이 진딧물처럼 다닥다닥 달라붙은 거리를

팔에 돋은 잎사귀로 찬찬히 닦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