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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강(採石江)풍경 landscape 2012. 6. 4. 21:21
당나라 때 시선(詩仙) 으로 불리는 이태백이 취중에 달이 하 아름다워 잡으러 들어갔다가 빠져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붙은 채석강.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 지층이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한데서 유래한다.
격포해수욕장 방면, 이상은 2012년12월 촬영.
바다책, 다시 채석강 / 문인수
민박집 바람벽에 기대앉아 잠 오지 않는다.
밤바다 파도 소리가 자꾸 등 떠밀기 때문이다.
무너진 힘으로 이는 파도 소리는
넘겨도 넘겨도 다음 페이지가 나오지 않는다.
아 너라는 冊,
깜깜한 갈기의 이 무진장한 그리움.
- 문인수,『쉬!』(문학동네, 2006)
격포항 남쪽 방파제 방면의 채석강. 시간이 허락되면 근처에 적벽강을 둘러봄직하다. 중국의 적벽강은 삼국지의 적벽대전으로 더욱 유명해졌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본딴 적벽강이 금산에도 있다. 채석강과 함께 격포항 북쪽에 위치한 적벽강은 국가지점운화재로 명승13호로 지정되어 있다.
격포항엔 부안의 문학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매창, 소승규, 허섭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춘사(春思) / 이매창(李梅窓)
東風三月時 處處落花飛 봄바람 부는 3월에 곳곳마다 낙엽 날리네.
綠綺相思曲 江南人未歸 거문고로 상사곡(相思曲) 연주하지만 강남 간 님 돌아오지 않네.
상춘(傷春) / 이매창
不是傷春病 봄을 근심해서 생긴 병이 아니라 只因憶玉郞 다만 임 그리워 생긴 병이라오
塵豈多苦累 진세(塵世)에 어찌나 괴로움이 많은가 孤鶴未歸情 외로운 학이 되어 돌아갈 수 없는 정이여
誤被浮虛說 잘못 뜬소문 도니 還爲衆口暄 도리어 여러사람 입들이 시끄럽구나
空將愁與恨 부질없이 시름과 한스러움으로 보냈으니 抱病掩柴門 병난 김에 차라리 사립문 닫으리
자한自恨 / 이매창(李梅窓)
春冷補寒衣(춘냉보한의) 봄날이 차서 엷은 옷을 손질하는데
紗窓日照時(사창일조시) 사창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네
低頭信手處(저두신수처) 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긴채
珠淚滴針絲(주루적침사) 구슬 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 적시네
규원(閨怨) / 이매창(1573-1610)
離恨悄悄掩中門 이회소소엄중문 이별의 한 사무쳐 중문을 닫으니
羅袖無香滴淚痕 나수무향적누흔 비단소매엔 향기없이 눈물자국뿐이라
獨處深閨人寂寂 독처심규인적적 혼자있는 깊은방엔 사람이 적적하고
一庭微雨鎖黃昏 일정미우새황혼 뜨락의 부슬비는 황혼까지 막네
매창의 시가 아닌 정이사군(呈李使君)? 향토문화대학원장인 김형주는 매창집(梅窓集)에 실린 57수에 없는 작자미상의 시라고 주장한다.
유봉래산일기(遊蓬萊山日記)는 난곡(蘭谷) 소승규(蘇昇奎 1864-1908)의 산문.
채석강 / 난곡(蘭谷) 소승규(蘇昇奎)
白鷗翩翩莫飛去, 捕爾者非我(백구편편막비거, 포이자비아)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
我亦忘機今己久, 江湖何處景最好(아역망기금기구, 강호하처경최호) 나 또한 욕심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니 강호 어느 곳 경치가 가장 좋던가
大海衝撞彩石頭(대패충당채석두) 큰바다가 채석강 머리에 부딪혀
不知磨洗幾千秋(부지마세기천추) 몇천년 갈고닦였는지 모르겠구나
五色鍊餘媧氏線(오색련여와씨선) 오색돌은 여와씨의 줄에서 갈리다 남고
百盃醉去謫仙舟(백배취거적선주) 백 잔에 취해서 적선의 배로 떠나가네 - 소승규
冊在石頭纔及肩(책재석두재급견) 책이 돌머리에 있어 겨우 어깨를 미쳤는데
時人看取莫爭先(시인간취막쟁선) 사람들이 보먄서 앞서기를 다투지 못하네
仙人恐惑人移去(선인공혹인이거) 신선께서 사람들이 가져갈까 두려워하여
高壓層巖秘理玄(고압층암비리현) 높은 층층바위에 현묘하게 감추어두었네 - 소승규
유관산해록(遊覌山海錄) / 수학(睡鶴) 허섭(許鍱, 1834∼1901, 임실의 선비)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 이매창
청자한옥정자(青瓷韩屋亭子). 건축비 무려 5억8천만원짜리, 관광안내소로 설치됐으나 누가 찾을까, 현실성은 ‘제로’, 군 담당자, 운영과 사후관리 부서 달라…‘핑퐁’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이상은 2022년5월 촬영.
채석강 / 이은봉
채석강 여기, 얼마나 많은 이별이 있나
이별을 위한 여행이 있나
잊을 수 없는 젊음이 있나
흔들바람 부는 어느 해 늦봄
이 먼 바닷가에까지
터벅터벅 혼자 걸어온 청년 있었느니라
첩첩이 쌓인 바위를 바라보며
첩첩이 고인 슬픔을 바라보며
손톱으로 제 가슴을 쥐어뜯던 사내가 있었느니라.
―《시와문화》 2013년 봄호
채석강을 읽다 / 나혜경
차곡차곡 쌓아놓기만 했지 한 권도 빼주지 않는
저 수만 권의 전집
한 권 슬쩍 하려다가 열 손가락 손톱 다 빠져버릴라
천년만년 정박 중인 비릿함과 무르익은 놀빛과 재탕 삼탕 글 읽는 바다의 소리로 엮었다니
그 이력이 참 새까맣다
좀약 한 알 쓰지 않고 멀쩡한
비 맞아 젖어도 못쓰게 된 적 없는
파도 떼의 몰매에도 무너진 적 없는
정정한 틈새 각주인 듯 삐죽, 풀꽃 한 송이 달려 있다
요철凹凸이 있어 점자책 같기도 하고,
그럼 마음 끝으로 더듬어 읽기라도 했단 말인가
펴 보지 않고도 저 책더미 앞에서 시구를 받아쓰는 사람
여럿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