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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주 화암사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5. 4. 21. 14:00

    우화루 목어

    우화루의 동쪽과 서쪽에는 조선 후기에 유행한 벽화인 한산습슥도(寒山拾得圖)와 금강역사도 벽화가 그려져 있다. 누각의 마루는 마당과 비슷한 높이로 만들어졌으며 누각의 북쪽이 마당으로 연결되어 있다. 당나라 정관년간에 전설적인 인물인 한산(寒山)은 문수보살, 습득(拾得)은 보현보살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

    우화루 벽화 금강역사도, 금강역사는 흔히 입을 '아' 하듯이 벌린 '아(阿) 금강역사'와 '훔' 하듯이 입을 다문 '훔(吽) 금강역사가 있다.

    우화루 측면

    우화루(雨花樓) 극락전의 정문 같은 성격의 누문형식인데 정면은 누문형식이지만 후면은 단층 건물로 한 반 누각식이다. 현 건물은, 조선 초기광해군3년(1611)에 세워진 이후로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정면 지층의 기둥은 4칸이나 2층에서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북쪽 문은 없다. 정면의 편액은 불명산화암사, 안쪽의 편액은 우화루이다. 공포는 안과 밖에 모두 3출목 형식으로 다포집 양식이며 공포 부재의 양식으로 보아 조선 초기 양식이 가미된 느낌이다. 내부는 중앙에 고주 2개를 세워 대들보를 그 위에 얹고 한쪽으로 이어진 퇴량은 평주 위 공포에 얹게 했다. 천정은 연등 천정이며 대들보와 고주 위에서는 화반형식의 포작을 짜서 동자기둥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 보물 662호.

    어느 시인의 '잘 늙은 절' 한 구절로 화르륵 유명세를 탄 화암사에 꽃비 내리는 우화루(雨花樓)를 만나려면? 우화(雨花)란 본래 부처님이 법화경을 강론할 때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꽃잎이니...

    화암사 극락전은 국내 유일의 하앙식(下昻式) 구조로,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의 원리로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구조로 국보 316호, 편액은 각각의 글자로 나누어 걸었는데 하앙구조로 공간부족해서라는 해석이 있다.   

    극락전 삼존불(좌로부터 대세지보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극락전 나한도 벽화

    화암사 괘불도. 등록문화재 제625호. 제작시기 1917년, 실제크기 세로 7.03m 가로 4.72m. 비로자나불 삼존도. 주불 비로자나불, 좌협시 문수보살, 우협시 보현보살이다.

    전각 안에는 불단을 화려하게 만들어 부처의 상을 모셨다. 불단 위에는 지붕 모형의 닫집이 있고 나한도와 화조도 등의 벽화와 단청이 화사하게 그려져 있다. 극락전 삼존불(좌로부터 대세지보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중심으로 아미타후불도, 신중도, 현왕도 등이 그려져 있으며 동종이 놓여 있다

    대웅전 동종은 조선시대 작품으로 높이 107cm, 밑지름 70cm이다. 종머리에는 용뉴 모양의 고리가 있고 어깨 위 가장자리에 꽃잎무늬 장식이 줄지어 있다. 그 밑에 폭 8cm의 꽃무늬 띠를 둘렀다. 임진란때 불타 광해군(1608-1623)에 다시 만들었는데 스스로 종이 울렸다. 일제때 헌병대가 몰려오자 스스로 울어 종을 대피시켰다는 일화도 전한다. 유형문화재 40호.

    적묵당은 보수공사중

    명부전

    화암사를 여러 번 갔어도 철영재(啜英齋)는 처음이다. 철영재는 판중추원사 숭록대부 성달생(1376-1445, 성삼문의 조부)이 전라관찰사를 거쳐간 훗날 쇠락해가는 화암사를 중창불사하였기에 그를 기리기 위해 위패를 봉안한 곳이라는 안내문이 있다. 가까운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 산58번지 사송재 고개 마루에 성삼문(成三問)의 묘역이 연결되는 것 같다. 啜英齋는 꽃봉오리 향기를 맡는 집이란 뜻이다. 啜 자가 하 신기해서 찾아보니 啜英咀华(철영저화, 啜 마시다, 英 꽃부리, 咀 씹다 저주하다, 华=華 빛나다 화려하다)와 含英咀华(함영저화)는 글의 묘미를 반복적으로 음미하다. 철숙음수(啜菽飮水)는 콩을 먹고 물을 마신다 즉, 집은 가난하여도 부모에게 효도를 극진히 함을 비유하는 성어가 보인다. 

    독약으로 썼다던 풀이름이 왜 천남성(天南星)일까. 북두칠성(北斗七星, Big Dipper) 닮은꼴의 천남성 즉 남두육성(南斗六星, Milk Dipper)의 모습을 닮은 듯도 하다.

    현호색도 보이고

    늦둥이 개복수초가 아는 척을 하고

    늦을대로 늦은 얼레지는 색깔이 죽었고

    산괴불주머니는 때깔이 좋다

    매화말발도리 산뜻하고

    고로쇠나무 멀직이서 봄바람에 출렁이고

    앉은뱅이 제비꽃은 가슴에 파고드는 보라빛(자화지정, 紫花地丁)이다

    요즘 홍벚이 많아졌다 

    산벚은 화려하지 않아 좋다

    싱그랭이마을 느티나무 보호수 지정번호 9-6-13, 지정일자 2007년, 수령 500년, 높이 25m. 나무둘레 5.85m. 소재지 경천면 가천리 요동마을, 당산목으로 정월대보름에 제를 올리고 음식을 가지고 나와 주민들이 술과 음식을 나누며 화합을 다진다. 싱그랭이는 이곳이 조선시대 역참이 있었는지 나그네들의 중간 기착지여서 신발을 갈아 신고 가래이라는 말이 변천하여 싱그랭이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싱그랭이, 참 감칠맛 나는 지명이다. 여기 마을영농법인에서 운영하는 싱그랭이 콩밭식당의 순두부찌개 참 명품이다.

       

    목어 아래 피는 꽃 / 김삼복

     

    화암사 가는 길, 물길과 사람길이 나란히 정답다. 봄에 피는 얼레지나 볼까 하여 나선 길, 아직 때가 이른가 보다. 불심 깊은 골짜기에는 꽃 대신 나지막한 돌탑들이 돋아있다. 누군가 하나 둘 쌓은 것 위에 산 아래 감골 아낙이 자신의 소원을 슬며시 얹어 놓았을까. 돌탑들은 소원을 숨긴 채 수줍게 쌓여있다. 깊고 외진 산문 앞 돌무더기 그림자 안에 웅숭깊은 마음이 가득하다.

    마음이 아파서도 특별히 빌 것이 있어서 온 건 아니다. 그러나 산사는 스스로를 부감시키는 마력이 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마음의 조망이 옮겨지고 자신의 짊어진 짐의 내력을 살핀다. 발걸음부터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터진 살갗으로 키가 자란 참나무와 속세의 먼지를 터는 산죽이 일주문을 대신하는 길목, 나무들이 봄물을 머금어서 굼실굼실 움마다 열망으로 도드라져 있다. 산길을 다 오르니 심연의 충돌들이 기운을 잃고 숨을 고른다. 적묵당에 앉아 풍경소리를 듣고 있으니 헝크러진 마음결이 제자리를 찾는다.

    우화루 나무창으로 들어온 봄바람이 아직은 차갑다. 반듯한 사각천장에 파란 하늘이 팽팽하다. 이곳을 몇 번이나 왔을까. 마음은 너무나 여리고 예민하여 사각마당에 지는 그림자에서 비켜간 세월을 읽는다.

    명승지 산사에는 크고 화려한 어고도 많은데 화암사 목어는 작고 소박하다. 비늘도 벗겨지고 색도 휘발되어 산산조각난 목어 한 마리. 지난겨울에는 백석의 명태처럼 꽁꽁 얼었다가 꼬리에 기다란 고드름도 달렸겠다. 서럽게 차갑고 파리한 목어는 여전히 처마밑 쇠고리에 묶여 속을 비운다. 제 속을 파내고 바람과 햇볕과 시간을 끌어 담았다. 그것들이 엉겨 붙은 뜨거운 속을 나무방망이로 두드려가며 첩첩산중에서 아직도 예불 중이다. 제 가슴을 울려 바다짐승들을 깨우는 소리는 계곡물 따라 강물 따라 어느 바다로 가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목어의 꿈을 싣고 가는 물길을 따라 사람들은 거꾸로 거슬러 왔다.

    30년 만이다. 거슬러 온 시간들을 나는 놓아버렸던가 아님 놓쳤던가. 다시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 무슨 바람이 내 속에서 일어 이런 짓을 도모했는지 거슬러 온 나의 물길을 내려다본다. 이제 와 또 학인이 되겠다는 나의 의지의 원인이 어디서부터 불어왔는지 생각했다. 철 지난 외투의 구멍 난 주머니처럼 의미 있던 것들을 자꾸 흘려버려서 이제와 꿰매보겠다는 우격다짐인지도 모른다. “다 늙어서 웬 공부냐?”며 제대로 늦바람난 욕망이라고 친정언니는 지청구를 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새롭게 배운다는 것은 흥분되는 것이다. 반들거리는 전공서적을 나도 모르게 쓰다듬었다. 어쩌면 이런 떨림이, 두근거림이 남은 시간을 꽃피우게 할지도 모른다. 파냈던 살 한 점을 되찾은 듯하다.

    자신의 꿈을 파내고 비우면서 마르고 비틀린 목어의 시간을 지나 배움의 열망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나이 든 문우들이 스쳐갔다. 내세울 것 없고 어느 누구와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이었다. 옹골진 불구 하나에 의지하며 두두둥 소리를 울리며 살아 나온 그들은 한결같이 따스하다. 파낸 속살들로 먹이고 키운 아들딸들은 하나 둘씩 자기의 물길을 따라 헤엄쳐 갔다. 사각천장에 갇혀 대웅전 햇볕이 그어놓은 그늘의 금을 세어갔던 목어의 시간은 어느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을까. 목어의 불경을 듣고 자란 산 아래 나무와 꽃들과 들짐승과 물고기를 생각했다. 눈과 비에 젖고 얼어 해쓱하게 늙었지만 못생긴 목어는 그래서 더 우직하다. 외갓집 같은 산사마당에 따스한 볕이 노랗다. 내려가는 산길 어딘가에 숨어 있을 꽃을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돌 위에 돌을, 마음 위에 마음 하나를 얹지 않고 사붓사붓 산길을 내려왔다. 돌이 자란 곳, 아니 마음이 쌓인 계곡 길을 내려오며 하심下心이니 무소유니하는 말들을 곱씹었다. 오늘도 우화루 밑에 걸린 목어는 깨끗이 속을 비워 바람과 볕에 제 빛깔을 내주지 않던가. 어차피 마음 비우기는 애당초 과분한 하문으로 남기고 산밑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였다.

    새로 난 철계단을 뒤로하고 옛길로 내려섰다. 절벽 아래 너덜겅바위 옆을 지나는 순간, 드디어 보랏빛 치맛자락을 사뿐히 들어올린 꽃 한 송이가 보였다. 햇볕이 잘 들어 포실한 흙속에서 뽀얀 속살 내보이고 매초롬하게 고개 숙이고 있었다. 분명 목어가 목 터지게 불러낸 꽃이리라. 그래서 화암사 기슭에는 우직한 목어 옆에 역마살 낀 얼레지가 그리도 많았나 보다. 이제 목어 꼬리에 제 몸을 묶어두려는 발칙한 보랏빛들이 와앙 일어나겠지.

    화암사 목어 아래 앙큼한 얼레지가 피었다. 그것이 제대로 바람났다는 풍문이 벌써 저잣거리에 파다할 것이다. (재미수필문학가협회https://jaemisupil.com/index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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