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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동마을 관가정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4. 4. 27. 13:51

    양동마을 손종로정충비각(孫宗老旌忠碑閣)(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조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시 순절한 손중로(1598-1636)와 노비 억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7년(1783)에 왕명으로 세운 비각이다. 비각 안에는 손종로의 정충각과 충노억부의 정려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뒤로 관가정이 보인다.

    천년목의 사즉생

    모란은 이제 5월에 피지 않는다

    팽나무

    아로니아

    관가정 대문과 담은 예전에 없다가 후에 세웠다. 

    관가정(觀稼亭) 보물 442호. 조선 성종 때의 청백리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1463~1529)의 고택이자 손씨 문중 종택으로 중종9년(1514)에 건축.. 양동마을 입향조인 송재(松齋) 손소(孫昭)의 차남이지만 맏형이 결혼하면서 마을을 떠나자 대종가가 되었다. 20세기 초에 서백당으로 대종가를 옮겨가면서 관가정은 손씨 일가의 별장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빈집이다  관가정 사랑채와 행랑채, 사랑채에 관가정 당호가 걸려 있다. 관가(觀稼)는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는 뜻이다. 대청이 넓은 것이 특징인데 살림집이 후대로 오면서 제사공간확보를 위해 변형된 것이다. 본채 뒤쪽에 사당이 있으며 특이하게 대문이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조선중기 남부지방의 주택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또 하나의 천년목 향나무가 꼬인 몸 지탱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명 황제 가정(嘉靖), 1521~ 1567)은 조선 중종(1506~1544) 후반기, 인종(1544~1545), 명종(1545~1567)의 재위 기간과 겹친다.

    객거암(客居巖), 주인인 손중돈(孫仲暾)이 손님들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독락당의 양진암과 같은 기능이다.

    양동마을 입향조인 송재(松齋) 손소(孫昭)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영당(影堂). 초상은 가로 105㎝, 세로 160㎝이며 비단 위에 채색. 손소는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해 적개공신에 오르고 후에 안동부사와 진주목사를 거쳤다. 적개공신 때의 모습을 10년 후인 성종 7년(1476)에 그린 것으로 조선 초기 공신도상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이며, 당시의 화법을 보여주고 있어 그 의의가 더욱 큰 작품이다. 영정은 문화재청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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