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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청 남사예담촌
    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3. 19. 15:55

    전망대 남학정(南鶴亭)에서 보는 남사마을 파노라마

     

    남호정사(南湖精舍)의 이씨매(李氏梅), 기골이 장대한 장부를 닮은 백매, 고가(古家)는 경남문화재자료 118호. 남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1700년대 건물이 안채, 사랑채, 익랑채, 곳간채가 ㅁ자형인 것이 특징이다. 건물의 뒷편은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삼신할머니회화나무다. 

     

    하씨고가 원정매(元正梅), 진양하씨, 수령 670년 원목은 2007년 고사하고 뿌리에서 자란 후계목이다.  사직공파 하즙(河楫)이 심은 것으로 그의 시호(諡號)인 원정 (元正)에서 비롯되었다. 흔히 남사예담촌의 원정매, 단속사지의 정당매, 산천재의 남명매를 산청3매라 부른다. 元正旧廬 (농막, 오두막 려) 현액은 석파노인 즉 대원군 의 글씨다.

     

    사양정사(泗陽精舍), 경남문화재자료 453호, 근대 한옥의 건축적 특성을 잘 나타낸 1920년대 건물, 정면 7칸 측면 3칸, 사랑채 내부에 다락까지 갖춘 영일정씨의 재실이다. 배롱나무(泗陽精舍), 수령134년(2024년 기준), 백일간 피고지는 개화기간 때문에 선비의 학문수양과 조상의 은덕이 거듭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었다.

     

    지리산 길목에 있는 산청 남사예담촌은 18-20세기 초에 지은 전통한옥 40여 채가 남아 있다. 그중에 최씨고가는 문화재자료 117호, 이씨고가는 118호, 이사재는 328호, 사양정사는 453호이다. 돌과 진흙을 번갈아 쌓은 담장은 높이 1.2-2m로 높다. 국가등록문화재 281호로 경남 서부지방의 담장형식을 잘 보여준다.

     

    최씨고가 최씨매(崔氏梅), 수령 150년,  대문옆에 있던 400년 매화나무는 고사하고 그 후계목이다. 향이 좋아 고가의 운치를 더해 준다. 감나무 가지엔 하늘타리 열매가 쭈그렁쭈그렁 봄바람에 달그닥거리고, 백목련 가지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망울이 발버둥이다..

     

    돌담 밑에 쪼그려 앉은 오랑캐가 보라보라 하다.

    남사마을 옛담장 표지판 앞의 너럭바위 고인 물에 희화나무 가지가 일렁이고 있다..

     

    사효재(思孝齋) 향나무, 수령 520년. 사효재는 1706(숙종32년) 피접(避接) 중인 아버지를 해치려는 화적의 칼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낸 영모당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향나무는 사효재 건축 전에 심어져 있었으며 제례를 올릴 때 향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성주이씨 경무공종회 영모재(永慕齋), 조선 개국공신이었던 경무공(景武公) 이제(李濟)를 모시는 재실로, 1987년에 후손들에 의해 정면 5칸과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1차 왕자의 난 때 왕명에 따라 세자를 보호하다가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 영모재에 걸려있는 이제개국공신교서(李濟 開國功臣敎書) 는 국보 324호이다. 조선 태조가 경무공이제에게 1392년(태조원년)에 내린 최초의 공신교서. 이제(李濟, 1365-1398)는 태조의 셋째 사위이며 조선개국공신 1등으로 흥안군(興安君)에 봉해지고, 의흥친군위절제사가 되었다. 시호는 경무공(景武公)이다. 진본은 국립진주박물관에 보관중이다. 교서는 국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문서로 공신도감(功臣都監)이 국왕명의로 발급한 녹권(錄券)에 비해 위상이 높다. 선초 개국공신녹권으로는 국보 232호 이화개국공신녹권(李和開國功臣錄券) 등 8점이 전하나 개국공신교서는 이제개국공신교서가 유일하다.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라는 공민왕19년에 명(明)에서 내린 어보(御寶)가 찍혀 있다. 우람한 비석은 이재개국공신교서 원본에 기초하여 비석에 새긴 이제개국공신교서비(李濟 開國功臣敎書碑)이다.

     

    남사예담촌에서 가장 핫한 부부회화나무, 수령 310년. 부부나무로 불리는 두 그루의 회화나무는 서로에게 빛을 더 잘 들게 하려고 몸을 구부리며 자랐다. 부부가 나무 아래를 통과하면 백년해로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 주(周)나라때 회화나무 아래 삼공이 모여 정사를 논의한 것에서 학자나무라고도 불린다. 이파리 파란파란 돋을 때 다시 올 기회 있으려나?

    그래요, 당신 / 이서린

    당신이었나

    기울어가는 어깨를 받쳐주고

    휘우듬한 허리를 안아주던 사람

    당신이었을 것이다

    내 눈물이 적신 무명옷자락으로

    팔베개 내어주던 그 온기는

    당신이어야 한다

    살아있다는 나의 기척을

    멀리 혹은 가까이서 살필 눈길은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영영 눈 감는 그날

    꽁꽁 언 내 손 잡아줄 한 사람

    그래, 당신이다

    몇 백 년이 지나도 여기

    내가 기다릴 사람은

     

    산천재(山天齋) 입구의 거대한 가시나무와 외부 전경

    시천면 사리에 소재한 산천재(山天齋) 국가등록문화재 305호,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72)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곳이다. 산천은 주역(周易) 대축괘(大畜卦)의 괘상으로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이다. 두류산(지리산)이 바라보이는 이곳에서 국왕에게 세 차례 상소를 올려 국가와 사회의 기강을 바로 잡을 것과 백성을 위한 정치를 건의하였다. 남명매(南冥梅) 조식(曺植)의 호인 남명(南冥).에서 비롯된다. 남명매의 달큰한 향기에 꿀벌소리가 잉잉거리고 멋쟁이나비가 훨훨 날아들다. 남명의 철학과 인생과 정신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경의사상(敬義思想)을 엿볼 수 있다. 흔히 남사예담촌의 원정매, 단속사지의 정당매, 산천재의 남명매를 산청3매라 부른다. 

     

    덕천서원(德川書院).  480살 은행나무 보호수, 전사청 건물에 안내팻말이 없다는 대전시공무원 출신 김모씨의 지적에 따라나온 문화해설사인지 관리인인지 중년이 준 정보에 의하면 은행나무 고목에 벚나무, 찔레, 뽕나무가 동거를 한다고 한다. 휴대전화를 열어 고이 간직하고 있던 벚꽃 사진을 보여주며 전국 유일이라고 자랑한다.

    덕천서원(德川書院)  강당 전면과 후면

    덕천서원(德川書院)  동제 이름은 진덕재(進德齋)

    덕천서원(德川書院)  서재 이름은 수업재(脩業齋)

    덕천서원(德川書院)  의 전사청과 숭덕사(崇德祠)

    덕천서원(德川書院) 시천면 원리에 소재. 1576년(선조 9) 지방유림의 공의로 조식(曺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09년(광해군 1) ‘德川(덕천)’이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그 뒤 최영경(崔永慶)을 추가배향였다. 사액서원이라 해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은 피할 수 없어 1870년(고종 7)에 훼철되었다가 1920년대 지방유림이 복원하였다.

     

    단성면 운리에 위치한 단속사지(斷俗寺地) 동서삼층석탑, 보물 72호. 단속사는 경덕왕 7년(748)에 대나마 이순(李純)이 창건했다는 설과 경덕왕 22년(763)때 신충(信忠)이 창건했다는 2가지 설이 있다. 삼국사기에 신라시대 단속사에는 솔거의 유마거사상(維摩居士象)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유란때 소실되었다. 기단, 몸돌과 지붕돌, 머리 장식이 남아 있다. 기단은 2단이며, 몸돌과 지붕돌은 3층이다.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아래층에 2개, 위층엔 1개의 기둥 모양이 새겨 있다. 지붕돌에 5단의 받침, 모서리에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인다. 탑 꼭대기에 머리장식 받치는 네모난 장식인 노반(露盤)과 연꽃모양 장식인 암화仰花)가 남아 있다. 장식이 많지 않고 간략한 9세기 통신시대 작품이다. 서삼층석탑의 보개는 마모되어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동삼층석탑 보개는 앙화가 확연하다. 동 삼층석탑의 최치원이 쓴 광제암문(廣濟嵒門, 널리 세상을 구제하다) 탁본은. 창원대학교박물관 소장이다.

    단속사지  서탑 위쪽에 정당매각(政堂梅閣)이 있고 그 안에 비가 두 개 있다.. 좌측 비에 道亭姜先生手植政當梅碑(도정강선생수식정당매비), 우측 비에 政堂文學道亭姜先生手植梅碑(정당문학통정강선생수식매비)가 있다.

    단속사지(斷俗寺地) 정당매(政堂梅). 조선초 통정공(通亭公) 강회백(淮伯)과 통계공 회중(通溪公 淮仲) 형제가 급제 전까지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직접 심었다는 매화인데, 훗날 종2품인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오르자 정당매라 부르고 두 기의 비석과 매화각이란 누각까지 세워주었다. 강회백의 손자 강희안(1417~1464)이 쓴 양화소록,이 있으며 동생은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다. 정당매 고사하자 강회백의 증손자 강용휴(1450~1505)가 다시  심은 후계목이다. 김용휴가 정당매 시를 모아 편찬하는 중에 김일손에게 정당매 유래를 밝힌 정당매시문후(政堂梅詩文後)를 짓게 하였다. 탑골공원 대원각사비(보물3호) 전액은 강희맹의 글씨다. 경남보호수 260호. 흔히 남사예담촌의 원정매, 단속사지의 정당매, 산천재의 남명매를 산청3매라 부른다.

    점심 오찬을 했던 한식당 예담원에 걸려 있는 정당매(政堂梅)  그림

    화폭에서 다시 살아 난 '산청 3''남사 8' 이호신 화가... 정매, 정당매, 남명매 이어 남사예담촌 매화 그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_w.aspx?CNTN_CD=A0003009822

     

     

    단속사견매(斷俗寺見梅) / 통정공 강회백((姜淮佰, 1357~1402) 

     

    一氣循還往復來(일기순환왕부래) : 한 기운이 돌아 갔다가 다시 오나니

    天心可見臘前梅(천심가견랍전매) : 천심은 섣달 전의 매화에서 볼 수 있도다

    自將鼎鼐調羹實(자장정내조갱실) : 스스로 큰 솥에 국맛을 조화하는 열매로

    謾向山中落又開(만향산중락우개) : 부질없이 산중에서 떨어지고 또 열리고 한다

     

    단속사에 심은 매화(斷俗寺手種梅) / 통정공 강회백(姜淮佰, 1357~1402)

     

    偶然還訪石山來(우연환방고산래) 우연히 옛 고향을 다시 찾아 돌아오니

    滿院淸香一樹梅(만원청향일수매) 한 그루 매화향기 사원에 가득하네

    物性也能至舊主(물성야능지구의) 무심한 나무지만 옛 주인을 알아보고

    慇懃更向雪中開(은근갱향설중개) 은근히 나를 향해 눈 속에서 반기네

     

     

    斷俗寺政堂梅 (단속사정당매) /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

     

     

    寺破僧羸山不古 (사파승리산불고) 절은 부서지고 스님은 파리하며 산은 옛날같지 않은데

    前王自是未堪家 (전왕자시미감가) 앞의 임금들이 스스로 나라를 감당하지 못하였네.

    化工正誤寒梅事 (화공정오한매사) 하느님이 매화의 일을 바로 그르쳐

    昨日開花今日花 (작일개화금일화) 어제도 꽃이 피고 오늘도 꽃이 피었다네.

     

    -강희안 양화소록

     

     

    단속사지 정당매 / 박남준

     

     

    봄날이었네

    두고 벼르던 산청 단속사지 정당매 찾는 길

    백석의 정한 갈매나무를 그려보던

    두 눈 가득 기다리던 설렘이 내게도 있었네

    거기 매화 한 그루

    한 세월 홀로 향기롭던 꽃그늘은 옛 시절의 풍경이었는가

    두 탑만이 남아 있는 단속사지

    텅 빈 그 꽃잎들

    저 탑 위에도 꽃 사태는 일어 바람을 불러 모았으리

    늙고 꺾인 수령 610

    잔설 같은 뼈만 남은 정당매여

    네 앞에 서서 옛날을 기억해주랴 이름을 불러주랴

    무상한 것들 어찌 사람의 일뿐일까

    산중에 홀로 누웠네

    별이 뜨기도 했네 별이 지기도 했네

     

    - 시집 적막(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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