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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비 屈非
    심상 image 2023. 10. 4. 22:36

     소금에 절여 바싹 말린  조기가 원래 굴비였다. 전라도에선 엮거리라고도 하였다. 굴비가 무슨 말인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아 더듬거리니 재미난 역사 이야기가 붙어 전한다. 고려시대 영광에 유배를 당한 이자겸이 왕에게 염장 조기를 진상하면서 “선물은 보내도 굴한 것은 아니다.”고 굴비’()라 적어 보낸 것이 이름의 유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지역에서 전하는 민간어원인 것이고 학술적인 근거나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굴비라는 이름은 조기를 짚으로 엮어 매달면 구부러지게 되는데 그 모양새를 따서 구비()조기라고 하던 것이 굴비로 변한 것이다. 구비()는 우리말의 산굽이, 강굽이처럼 구부러져 있는 모양새를 일컫는 ‘굽이’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다. 보리굴비는  굴비를 바닷바람에 자연 건조시킨 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통보리 항아리 속에 보관해 숙성시킨 굴비를 가리킨다. 구두쇠, 스크루지와 이음동의로 사용되는 자린고비 설화도 전한다.  정호승 시인은  굴비’()로 시를 썼고,  최승호는 북어를 썼고, 김병손은 코다리를 썼고.. . 유성장날..

     

     

    굴비에게 / 정호승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

    강한 바닷바람과 햇볕에 온몸을 맡긴 채

    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오직 너만은 굽실굽실 비굴의 자세를 지니지 않기를

    무엇보다도 별을 바라보면서

    비굴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기를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

    내 너를 굳이 천일염에 정성껏 절인 까닭을 알겠느냐

     

     

    보리굴비 / 박찬희

     

     

    깊은 곳, 동안거에 들 날이 가까워지면 옆구리가 가려웠다

    수년을 가로거침 없던 길 없는 길이 아른거리기만 하고

    바싹 말라버린 감정이 압착된 채 눌어붙어 겉보리 색깔이다

    꼬아 내린 새끼줄이 미명을 건져 올리는 때마다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억, 잊은 물질의 기법을 유추해

    켜켜이 돋워 꿰면 아가미에서 배어 나오는 소금기

    바람이 낙관을 찍고 갈 때마다 입술이 들썩거리고

    항아리 깊은 속에서 오장육부를 비워내면

    아가미를 통해 내통하는 바다와 육지

    숨이 찬 시절이 건조되는 동안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흘러 빠져나가는 너울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음께를 바람이 변주하면

    뭉툭하던 허리를 조여 맨 상처가 껍데기에서 바삭거린다

    잠이 깰 때 아무 느낌이 없게 될지도 모르는 귓속말을

    차곡차곡 채우면

    봄 건너 가을에 이른 연록의 찻잎이 움 트는 게 보이고

    긴 호흡으로 너른 바다를 마시고 뱉던 간절기의 촉감이

    비워낸 속에 사분사분 채워진다

    무뚝뚝한 등대의 시선이 흘리고 간 은빛 주단 위를

    미끈하게 흐르다 누워 동경했던 뭍을

    응달을 비집고 든 볕에 기대어 다시 찍어내는

    데칼코마니

    오랜 기억이 바람에 말라가면

    허공에 박제되는 바다의 냄새

    동안거를 마친 날엔 점점이 찢겨도 좋다며

    그만큼 찢긴 바다가 청보리밭을 덮는

    그 하나로 가뿐해지는 몸이

    시간의 변곡점 속으로 너끈히 헤엄쳐 간다

    -22 16회 바다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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