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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박물관 국보 순례
    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3. 8. 25. 16:46

    진흥왕순수비(眞興王 巡狩碑), 국보3호, 신라 진흥왕(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포항 냉수리 신라비 국보264호,이 비는 1989년 마을주민이 밭갈이를 하던 중 발견하였으며, 재산분배를 확인하는 증명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형태는 네모난 자연석으로 밑부분이 넓고 위가 줄어드는 모습이며, 앞면과 뒷면, 그리고 윗면의 3면에 글자를 새겼다. 비문은 거의 닳지 않아 눈으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다. 글자는 총 231자이고 서체는 해서체로 보이나, 예서체의 기풍이 많이 남아 있어 비문의 형태와 글씨체면에서 충주 고구려비(국보), 울진 봉평리 신라비(국보)와 매우 비슷하다. 비문은 절거리(節居利)라는 인물의 재산소유와 유산상속문제를 결정한 사실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 공문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각 부의 여러 귀족들이 참여하여 재산권 분쟁을 처리하고 있는데, 이는 왕권을 강화하기 이전에 미약했던 신라왕권의 한계를 알려주고 있다. 또한 소를 잡아 하늘의 뜻을 묻고 제천의식을 행하던 당시 풍속제도의 실상이 잘 담겨져 있다.내용중 ‘계미(癸未)’라는 간지(干支)와 ‘지도로갈문왕’등의 칭호가 나오고 있어 신라 지증왕 4년(503)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에서 세운 비로서 신라의 왕명을 다룬 초기 율령체제의 형태를 보여주어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신라역사 연구와 금석학 연구에도 중요한 유물이다.

    경천사지십층석탑(敬天寺址 十層石塔), 국보86호,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 세워져 있었던 이 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무단으로 반출되었던 것을 되돌려 받아 1960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중이다. 석탑의 3단으로 된 기단(基壇)은 위에서 보면 아(亞)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基壇) 역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자 모양이었다가, 4층에 이르러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화려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부처, 보살, 풀꽃무늬 등이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돌리고,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의 기와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탑의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이 출현했던 고려시대에서도 특수한 형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끌며, 지붕돌의 처마가 목조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러한 양식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일본으로 반출되면서 훼손되었던 원래의 탑 형태를 국립문화재연구원의 복원작업을 거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높이 13.5m.

    원각사지십층석탑, 국보2호. 높이 12m. 문화재청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왼쪽 금동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 6세기 후반, 높이 81.5cm, 무게 37.6kg이다. 국보 제78호였는데 국보 1962-1로 고쳐부르고 있다. 오른쪽 금동반가사유상은 삼국시대 7세기 전반, 높이 90.8cm, 무게 112.2kg이다. 국보 제83호였는데 국보 1962-2로 고쳐부르고 있다. ‘반가 (半跏)’는 양쪽 발을 각각 다른 쪽 다리에 엇갈리게 얹어 앉는 ‘결가부좌(結跏趺坐)’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뜨린 자세다. ‘사유(思惟)’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상태를 나타낸다. ‘반가의 자세로 한 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을 반가사유상이라고 한다. 사유의 방의 두 국보 반가사유상을 전시한 공간은 건축가 최욱(원오원 아키텍스 대표)이 디자인했다. 오른쪽반가사유상은 일본 고류사(廣隆寺)의 목조반가사유상과 모습이 비슷하여 영향 관계가 주목된다. https://blog.naver.com/cha1934/223159402572

     

    금동반가사유상 / 송찬호

     

    멀리서 보니 그것은 금빛이었다/ 골짜기 아래 내려가보니

    조릿대 숲 사이에서/ 웬 금동 불상이 /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누고 있었다//

    어느 절집에서 그냥 내다 버린 것 같았다

    금칠은 죄다 벗겨지고/ 코와 입은 깨져/ 그 쾌변의 표정을 다 읽을 수는 없었다//

    다만, 한 줄기 희미한 미소 같기도 하고 신음 같기도 한 표정의 그것이

    반가사유보다 더 오래된 자세라는/ 생각이 잠깐 들기는 했다/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골짜기를 벗어나 돌아보니 다시 그것은 금빛이었다//

     

    정문경(精文鏡) 또는 옛 명칭 다뉴세문경(多鈕細紋鏡), 국보141호, 뒷면에는 거울을 멜 때 사용하는 고리인 뉴가 우리나라의 경우 한쪽으로 치우친 곳에 2개가 돌출되었다. 또한 청동기 시대에 주로 보이는 거칠게 무늬를 새긴 거울(거친무늬거울)에 비해, 작은 삼각형을 기본으로 하여 기하학적 무늬를 세밀하게 새긴 것이 특징이다. 이 정문경은 지름 21.2㎝로 뉴가 2개이며 내구(內區), 중구(中區), 외구(外區)로 3등분 되어있다. 각 구마다 작은 삼각형 무늬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세밀하게 장식하였다. 외구에는 동심원 무늬가 2개씩 짝을 지어 균형있게 8개를 배치하였으며, 주석이 많이 들어가 빛이 잘 반사되게 만들었다. 현존하는 잔무늬거울 가운데 크기면에서 가장 크고 문양도 가장 정교한 우리나라 초기철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은 문화재청.

    청자상감모란넝쿨무늬조롱박모양주자. 국보116호, 고려12-13세기. 상감기법의 종류에는 가는 선을 상감하는 선상감과 넓은 면적을 상감하는 면상감, 무늬의 바탕면만 상감하는 녁상감이 있다. 이 주자는 세 종류의 기법을 모두 활용하여 상감청자의 화려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유려한 곡선의 몸체와 역상감된 모란넝쿨무늬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화려하다.

    청자상감국화모란무늬참외모양병, 국보 114호, 고려12-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고려 왕실과 귀족은 정원을 만들어 꽃과 나무를 키우고 감상하는 취미를 즐겼다. 황실과 종교의례에서도 꽃을 바쳐 정성을 표현했다. 모란과 국화가 상감된 참외모양 병은 꽃을 꽂았던 꽃병으로 여겨진다.

    청자철화버드나무무늬병, 국보113호, 고려청자의 여러 기법 중 철화(鐵畵)기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청자이다. 철화기법은 산화철 성분 안료로 무늬를 그리고 음악을 입혀서 구워 무늬가 검게 나타나게 한 청자이다. 철화청자에는 사물의 특징을 간결하면서 생동감있게 묘사한 예들이 많다. 도자기에서는 많이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청자어룡모양주자, 국보 61호 고려 12세기, 높이 24.4cm. 용머리로 된 주자의 주구(注口)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터질듯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둥근 몸체에 조각된 비늘은 안쪽에 유약이 몰리도록 각도를 조절하여 입체감이 두드러진다. 상상속 동물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청자귀룡모양주자, 경기도 개성 출토, 높이 17.3cm. 국보96호.연꽃 받침 위에 앉아 있는 거북이 모습을 한 주자로, 얼굴과 목은 고려시대 석비(石碑)의 귀부(龜趺)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용머리로 표현하였다. 수염 · 갈기 · 이빨 · 비늘 · 이마의 뿔 등이 모두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눈에는 철사 안료를 써서 검은 점을 찍었다. 등껍질에 있는 육각형 무늬 안에는 ‘왕(王)’자를 하나씩 새겨 넣었는데, 이는 사용하는 사람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청자투각칠보무늬향로(靑磁 透刻七寶文蓋 香爐), 국보95호. 고려 12세기, 높이 15.3cm, 이 향로는 향이 빠져나가는 뚜껑과 향을 태우는 몸통,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받침으로 이루어진다. 각각 다른 모양을 기능적으로 결합하여 완성된 조형물로 나타내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음각, 양각, 투각, 퇴화(堆花), 상감, 첩화(貼花) 등 다양한 기법이 조화롭게 이용되었다.

    청자 사람모양 주자, 국보 167호, 고려 12-13세기. 높이28cm. 대구 출토, 인물의 형상을 정교하게 본떠 만들었다. 의복의 생김새와 봉황이 장식된 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받쳐든 복숭아로 보아 도교의 도사나 전설속 서왕모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왕모는 곤륜산 정상에 있는 궁에 살면서 불로불사와 신선세계를 주관한다고 전해진다.

    청자 사자모양 향로, 국보60호. 고려12세기, 높이 21.2cm. 사자의 입에서 향이 뿜어져나오는 구조다.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1124)에 산예출향(狻猊出香 사자모양향로) 역시 비색이다. 위에는 사자가 웅크리고 있고 아래에는 연꽃이 떠받치고 있다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청자다. 훌륭한 조형미와 아름다운 비색이 어우러진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힌다.

    청자 음각연꽃넝쿨무늬 매병, 국보97호. 고려12세기, 고려는 불교국가로서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을 귀하게 여겼다. 고려도경(1124)에는 고려인들이 연꽃을 비롯하여 연근 연밥까지도 신성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이 매병의 연꽃은 비췻빛 비색과 조화를 이루며 12세기 고려인니 추구한 미감을 보여준다.

    청자 참외모양 병(靑磁 瓜形 甁), 국보94호. 고려12세기, 전 인종 장릉 출토, 고려 왕실 청자의 품격을 보여주는 비색 청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용도는 꽃을 꽂는 꽃병으로 추정된다. 중국 산서성 평양현 금대(金代 1115-1234) 무덤 벽면에는 참외모양 병에 연꽃을 꽃아놓은 장식이 조각되어 있다.

    청자 상감무늬 항아리, 국보98호. 고려12-13세기, 개성 출토, 선상감으로 외곽선을 만들고 그 안에 모란꽃 잎을 상감했다. 고려시대 왕과 신하들은 모란을 대상으로 시 짓기를 즐겨했다. 이규보도 궁궐 안 산호정에 모란이 피면 읊는 사람이 많았다고 기록을 남겼다. 모란을 애호하던 분위기가 담겨 있다.

    분청사기 상감인화구름용무늬 항아리, 국보259호. 조선 15세기 전반, 상감과 인화기법이 조화를 이루는 15세기 전반 분청사기의 정수이다. 상감기법의 역동적인 용을 중심으로 작은 국화무늬를 인화기법으로 꾸몄고, 크고 당당한 형태는 분청사기 고유의 조형성이 돋보인다. 용무늬가 그려진 이 항아리의 용도는 왕실 의례와 관련된 것으로 짐작된다.

    백자 상감연꽃넝쿨무늬 대접, 국보175호, 조선15세기, 1981년 이홍근 기증, 조선 상감백자 중 가장 뛰어난 예술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단정한 형태와 연꽃 넝쿨무늬는 중국 명의 청화백자를 닮았지만, 섬세한 상감기법과 유백색의 부드러운 질감은 고려 연질백자의 전통을 이었다.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무늬 자라병(粉靑沙器剝地鐵彩牡丹文扁甁), 국보260호, 조선 15세기 후반, 자라 모습을 닮은 자라병은 조선시대 생활용기로 사용되었다. 분청사기와 백자는 물론 용기로도 제작되었다. 병 윗면에는 조화기법으로 모란꽃과 이파리를 표현했고, 무늬 주변의 흰 흙을 긁어내고 그 위에 철화 안료를 칠했다. 조형성이 뛰어나며 흑백의 대조가 멋스러운 작품다.

    백자 철화매화대나무무늬 항아리, 국보166호. 품격 있는 장중한 형태와 뛰어난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대표적 철화백자이다. 백자의 품질과 그림의 표현수준으로 보아 도화서의 궁중화원이 무늬를 그린 왕실용 철화백자로 생각된다. 당시 화단의 사군자 표현기법을 가늠할 수 있다.

    백자 청화매화새대나무무늬 항아리, 국보170호, 조선 16-17세기 전반, 품격 있는 장중한 형태와 뛰어난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철화백자이다. 백자의 품질과 그림의 표현 수준으로 보아 도화서의 궁중화원이 무늬를 그린 왕실용 철화백자로 생각된다. 당시 화단의 사군자 표현기법을 가늠할 수 있다.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무늬 항아리, 국보93호, 조선18세기, 탐스럽게 열린 포도와 포도넝쿨을 잡고 노니는 원숭이를 생동감 있게 구성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철화백자이다. 유백색 바탕에 철화 안료의 깊고 진중한 색감과 능숙한 필치가 어우러져 원숙한 세련미를 드러낸다. 18세기 전반 경기도 광주 금사리의 관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황남대총 북분 금관(皇南大塚 北墳 金冠) 국보191호, 5-6세기, 높이27.5cm. 지름17cm. 무게750g. 금관에는 앞면 중앙과 좌우에 3개의 '山' 자 모양의 장식이 세워져 있다. 이 장식은 나무를 단순한 의장으로 생각한 것 같고, 뒷면 좌우에 세운 2개의 의장은 사슴의 뿔을 간략화한 것이다. 대륜(臺輪) 위에 '山' 자 모양을 3개 겹쳐놓은 것은 나무의 줄기와 옆가지를 뜻한 것 같다. 1가지에 곱은옥과 영락(瓔珞)을 5개씩 달았다. 대륜의 위아래에는 2줄의 점선무늬가 안에서 두드려 밖으로 도드라져 있고, 여기에도 역시 곱은옥과 영락을 달았다. 좌우에 각각 3개의 수하식(늘어뜨린 장식)이 있으며, 바깥의 것이 길고, 안쪽으로 가면서 짧아진다. 이 수식 중 1쌍에는 끝에 청색 곱은옥이 달려 있고 다른 금관보다 2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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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병 과 유리잔. 높이 25 cm, 국보193호, 경주 황남대총 남분 1975년 발굴, 대롱 불기기법으로 형태를 만들고 띠를 덧대거나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제작하였다. 초기 비잔틴시기 자중해 동부연안의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북부지역에서 제작하여 실크로드를 따,라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봉황머리 모양 유리병과 세트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청자모자원형연적(靑磁 母子猿形 硯滴) 국보270호.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차용.

    고려시대 만들어진 원숭이 모양의 청자 연적으로,크기는 높이 9.8㎝, 몸통 지름 6.0㎝이다. 어미 원숭이 머리 위에는 지름 1.0㎝ 정도의 물을 넣는 구멍이, 새끼의 머리 위에는 지름 0.3㎝인 물을 벼루에 따라내는 구멍이 각각 뚫려 있어 연적임을 알 수 있다. 두 원숭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그 사이사이를 파내어 도드라지게 표현하였고, 어미 원숭이의 눈, 코와 새끼 원숭이의 눈은 검은 색 안료로 점을 찍어 나타냈다. 어미 원숭이의 엉거주춤한 자세, 보채는 새끼의 모습을 통해 원숭이 모자의 사랑을 재미있게 묘사하였다. 유약은 잘 녹아 투명하고 잔잔한 기포가 전면에 있어 은은하고, 표면의 색깔은 아름다운 비취색이다. 1146년에 제작된 청자과형화병, 청자합과 유약 색이 동일하여 12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청자 연적 중 원숭이 모양의 연적은 드물며 더욱이 모자(母子) 모양으로서는 유일한 예이다.-문화재청

     

     

    청자모자원형연적 / 신중신(1941)

     

     

    마음 함께 비취빛이었을

    고려적 웬 사내

    햇볕 좋은 봄날

    전대미문의 연적 하나를 구워냈다네.

    그의 심성 익살궂었던지

    사철 양반네 머리맡에 놓일 그것

    그 시늉만으로도 헤살질이 진득 묻어나는

    앙증맞은 잔나비상을,

    사내 심사 또한 따스하여

    그것도 새끼 보듬은 원숭이 모양을,

    애오라지 천연스럽고 정감 하나인

    저 청자모자원형연적을 구워냈다네.

    저것 보아, 저것 좀 보아!

    어미 정수리로 부어넣은 물이

    새끼 뒤통수께로 흘러나와

    먹물을 간다 미소가 번진다

    삼짇날 저물녘, 비색(翡色) 이내 같은 것이 설핏한가 싶더니

    남녘마을 선비 마음을 적셔

    인연 굽이굽이 강물 짓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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