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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 악양루(岳陽樓)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3. 3. 19. 19:30

    하동에 악양루가 있었어? 북새통인 홍쌍리매실가에서 놓친 단체기념사진을 촬영할만한 곳에 내려 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고 내린 곳이 여기다. 기사가 초행길이라니 알고 멈춘 곳은 아니겠지만 눈썰미가 있어 보였다. 얼마나 고맙던지 내리면서 인사를 하였다... 하동 동정호(洞庭湖)와 악양루(岳陽樓), 1937년 지역인사 손영민, 이태성, 박준구가 아미산 아래 중건하고 10년 뒤 미점리 도로변에 있던 것을 2012년 동정호가 있는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하동 악양루를 유호인이 노래하였다.

     

    등악양루登岳陽樓 / 뇌계㵢谿 유호인兪好仁(1445~1494)

     

    형초등림지(荊楚登臨地) 남쪽 하동의 악양루에 올라와 보니

    군산일발흔(君山一髮痕) 군산은 터럭처럼 보일 듯 말 듯하네

    조회침곤축(潮回浸坤軸) 조수는 돌아들어 지축을 푹 적시고

    전체감천근(電掣撼天根) 천둥은 울려서 저성(氐星)을 뒤흔든다

    앙망삼간일(泱漭三竿日) 강 위에는 높이 뜬 해가 아른거리고

    부요만리곤(扶搖萬里鯤) 회오리치며 만 리의 곤어 날아오른다

    이소유패랭(離騷遺佩冷) 근심을 만나 버려진 패옥조차 차가우니

    수위채방손(誰爲採芳蓀) 그 누가 향내 나는 창포를 딸 것인가?

     

     

    가녀린 허리로 웨이브를 타며 동정호를 봄빛으로 물들인 수양버들.

     

    春日(춘일) 봄날 / 徐居正(서거정, 1420~1488)

     

    金入垂楊玉謝梅(금입수양옥사매) 수양버들 금빛으로 물들고 매화는 지는데

    小池春水碧於苔(소지춘수벽어태) 작은 연못 봄물이 이끼보다 더 푸르네

    春愁春興誰深淺(춘수춘흥수심천봄의 시름과 운치 중 무엇이 더 깊을까

    燕子不來花未開(연자불래화미개제비 아직 안 오고 꽃은 피지 않았는데

    *() ; ~보다, *燕子(연자) ; 제비.

     

    함안 악양루. 조선 철종 8년(1857) 남강가에 설립. 옛날 현판은 기두헌(倚斗軒)이었으나, 지금 것은 청남 오재봉(菁南 吳濟峰)이 쓴 岳陽樓(악양루)이며 1992년 문화재자료로 지정. 입구에 처녀뱃사공 노래비가 있다. 한국 전쟁 이후에 복원하였으며 1963년에 고쳐 짓고 2003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문화재자료190호, 함안 악양루를 안효순이 노래하였다.

     

    岳陽樓(악양루) / 岳隱(악은) 安孝淳(안효순, 1790~1846)

     

    中夏巴陵又我先 (중하파릉우아선) 중국 파릉의 악양루가 또한 우리보다 먼저이니

    樓名以岳豈徒然 (누명이악기도연) 누정 이름을 어찌 악양루로 따라 짓지 않으리오

    東南坼濶餘無地 (동남타할여무지) 동과 남으로 넓게 펼쳐진 끝도 없는 땅은

    上下浮空別有天 (상하부공별유천) 위 아래 허공에 떠 있는 다른 세상이더라

    來且暮 (정혜여등래차모) 좌천된 滕子京이 늘그막에 와서 수리했더니

    文希屬范志宜宣 (문희속범지의선) 范希文이 그 뜻을 기리었더라

    衰年任作江湖客 (쇠년임작강호객) 늙고 쇠약해 세상 나그네 되어 멋대로 떠도니

    謾使詩人號我仙 (만사시인호아선) 시인들은 부질없이 나더러 신선이라 부르더라

    岳隱安孝淳自著 (악은안효순자서) 악은 안효순이 스스로 적다.

    *:터질 탁, : 근고할 탁, : 샛길 혜, : 등자경, 文希范: 범중엄,

     

    중국 호남성(湖南省)의 악양루(岳陽樓). 호북성의 황학루(黃鶴樓), 강서성의 등왕각(滕王阁)과 더불어 중국의 3대 누각으로 유명하다. 삼국시대 동오(東吳)의 명장 노숙(魯肅)이 215년에 동정호에 주둔하며 열군루(閱軍樓)라는 망루를 지었는데 716년 당나라 때 악주의 태수 장열(張說)이 중수하며 악양루가 되었다. 1044년 송의 등자경(滕子京)이 태수로 좌천되어 증수하고 희문(希文) 범중엄(仲淹, 989-1052)을 시켜 악양루기(岳陽樓記)를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1880년 청나라 광서제 때 다시 중건한 것으로 누각의 높이는 20m이다. 국어교과서에 두보(杜甫: 712~770)의 시를 우리말로 옮긴 <두시언해> 중 '등악양루(登岳陽樓)'를 통해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아래 아) 표기는 편의상 'ㅏ'로 적었다.

     

    등악양루(登岳陽樓) / 두보(杜甫: 712~770)

    昔聞洞庭水 (석문동정수) 洞庭(동정)므를 듣다니, (오래 전에 동정호에 대하여 들었건만)

    今上岳陽樓 (금상악양루) 오날 岳陽樓(악양루)의 올오라. (이제야 악양루에 오르게 되었네)

    吳楚東南拆 (오초동남탁) ()()東南(동남)녀키 떠뎟고, (오와 초는 동쪽 남쪽 갈라 서 있고)

    乾伸日夜浮 (건곤일야부) 하날과 따콰난 日夜(일야)애 떳도다. (하늘과 땅이 밤낮 물 위에 떠 있네)

    親朋無一字 (친붕무일자) ()한 버디 ()글월도 업스니,  (친한 친구에게조차 편지 한 장 없고)

    老去有孤舟 (노병유고주) 늘거 가매 외라왼 배옷 잇도다. (늙어가며 가진 것은 외로운 배 한) 

    戎馬關山北 (융마관산북) 사호맷 마關山(관산)()녀긔 ,  (싸움터의 말이 아직 북쪽에 있어)

    憑軒涕泗流 (빙헌체사류) 軒檻(헌함)알 비겨서 눈므를 흘리노라.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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