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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Citrullus vulgaris초목류 wild flower/박과 Cucurbitaceae 2022. 8. 15. 22:59
야생 수박 Citrullus vulgaris SCHRAD. 한자어로는 서과(西瓜), 수과(水瓜), 서과피(西瓜皮), 시과(時瓜), 취의(翠衣). 영명 watermelon. 열대아프리카 원산. 박과에 속하는 덩굴성 한해살이풀. 덩굴식물. 수박의 도입에 대하여 원산지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까지 퍼졌으며, 동양에는 터키인에 의해 천산 남로를 통해 전해졌다. 우리나라는 『도문대작(屠門大嚼)』에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에 귀화하여 고려인을 괴롭힌 홍다구(洪茶丘)가 처음으로 개성에다 수박을 심었다고 하였다. 〈연산군실록〉에 연산군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김천령에게 수박을 가져오라 명하는데 여러 이유를 들어 거절하고 병사한다. 연산군이 죄를 물어 부관참시하고 가족은 노비가 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세종 때도 내시가 수박을 훔쳐먹다 들켜 곤장 1백대를 맞고 귀양을 보내고, 또 다른 수박 절도사건에서는 곤장 80대로 낮추었다. 의식주가 넘쳐나 어쩌구 저쩌구 하는 요즘 시대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올해는 수박을 맛도 보지 못하였다.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는 득이 되지 않는다나? 이뇨에 도움이 된다는 말과 충돌하니 무엇이 올은 것인가. 수박은 이뇨, 지갈(止渴), 해서(解暑)의 작용이 있어 소변불리, 수종, 고혈압, 서열번갈(暑熱煩渴)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수박의 효능을 '번갈과 더위 독을 없애고 속을 시원하게 하며 기를 내리고 오줌이 잘 나가게 한다. 혈리(血痢, 혈액이 섞인 설사를 일으키는 병)와 입안이 헌 것을 치료한다'라고 되어 있다. 수박은 성질이 차기 떄문에 몸이 찬 사람은 설사나 복통이 올 수 있고, 칼륨이 많아 신장질환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념과 지역색이 유난히 강한 우리나라에서 수박이란 용어가 회자되고 있는 작금이다. 뉴스 때마다 무슨 말인가 궁금하였는데 민주당 지지자이면서도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수박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친문재인계인 고민정의원도 이재명 지지자들로부터 수박이라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하였다. 수박의 연원을 검색해보니 5.18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이 시민을 향해 곤봉을 휘두르던 사진에서 비롯하였다. 겉은 푸른색이지만 속은 빨갛다(빨갱이)며 진압군에 맞아 죽어가던 사람들을 비하하여 수박 터진다고 빗댄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으로 회자된 사자성어는 구밀복검(口蜜腹劍), 양두구육(羊頭狗肉), 인면수심(人面獸心), 표리부동(表裏不同), 허장성세(虛張聲勢)였다. 어쩌다 고냉지 특유의 달콤하고 시원한 무등산수박이 치르는 유명세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해야할까...
수박에 관련된 속담도 찾아 보았다. 수박 겉핥기, 수박은 속을 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 수박 먹다 이 빠진다. 잘되는 집안은 가지나무에도 수박이 달린다. 수박 흥정. 그리스 속담에 수박과 여자는 우연히 선택된다. 중국 속담에 참깨를 붙잡고 수박을 놓친다. 불가리아 속담에 한 팔에 두 개의 수박을 들지 못한다. 북한 속담에 수박은 쪼개서 먹어봐야 안다.
금강전도(金剛全圖)로 유명한 진경산수(眞景山水)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수박 그림을 그렸다는 상상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수박서리하는 쥐를 등장시키는 스토리는 비슷해도 우리 머리 속에 각인된 신사임당의 '초충도' 수박에 비해 정선의 '서과투서(西瓜偸鼠)'는 엉뚱하고 흥미로운 느낌을 준다. 겉무늬가 없는 진녹색의 청수박 종류가 따로 있는지 잎도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쥐는 곡간을 침탈하는 탐관오리쯤 되는 모양이다. 서과투서에 감동 먹은 석미화의 시를 소개한다.
신사임당, 초충도(草蟲圖), 16세기 전반, 간송미술관 소장
겸재 정선, 서과투서(西瓜偸鼠), 간송미술관 소장.
당신은 망을 보고 나는 청수박을 먹는다 / 석미화
이 여백은
나의 입덧의 한때다
당신과 무더운 밤을 나서면
바랭이풀이 물들고
달개비꽃이 피는 언덕배기
청수박 한 통
당신은 망을 보고
나는 투명해지도록 수박을 먹는다
그때 아이의 까만 눈이 생기고 둥근 입이 생겼지
침샘이 소르르 돋고 솜털이 올라왔지
바랭이풀이 우거지고 달개비꽃이 번지는
이 노래는
나의 입덧의 절정이다
나는 달을 게워내고
당신은 구름을 밀어내고
여름밤은 어디가 어딘지 모른 채 흘러가고
서과〔西瓜〕 / 성현
울타리 밖 가을 수박이 살이 통통 올랐네 籬外嘉瓜秋濯濯(이외가과추탁탁)
덩이덩이 열려서 깊은 밭둑에 널렸어라 結子團團委深畦(결자단단위심휴)
크고 작은 구슬처럼 넝쿨에 줄줄이 달렸네 大小附蔓如瓔珞(대소부만여영락)
허리에 차고 있던 금패도를 쓱 뽑아서 拔出腰間金佩刀(발출요간금패도)
청옥 같은 껍질을 쟁반에 쫙 갈라놓으니 剞破盤中靑玉殼(기파반중청옥각)
범로의 옥두가 산산이 부서져 쏟아지는 듯 紛紜范老玉斗碎(분운범로옥두쇄)
위왕의 속 텅 빈 큰 바가지가 열린 듯해라 濩落魏王大瓠坼(호락위왕대호탁)
입 안에 상큼한 맛은 운유를 씹은 듯하고 口含爽氣咀雲腴(구함상기저운유)
이 시리는 달콤한 향은 서리를 뿜는 듯하네 齒冷甘香噀霜雹(치냉감향손상박)
몸은 상쾌해라 갑자기 오폐가 서늘해지고 身淸頓敎五肺涼(신청돈교오폐량)
흥은 넘쳐라 삼주가 먼 것 못 깨닫겠네 興逸不覺三洲邈(여일불각삼주막)
어느 때나 속세의 먼지를 툭툭 털어버리고 何年擺却軟紅塵(하면파각연홍진)
포의 차림으로 가서 청문의 낙을 배울꼬 布衣往學靑門樂(포의왕학청문락)
* 서과(西瓜) ; 수박
* 犁 ; 검을 리, 渥; 두터울 악, 濯:클 탁, 빛날 탁, 畦; 밭두둑 휴, 殼; 껍질 각
* 범로(范老) ; 초나라의 범증. * 옥두(玉斗) : 옥으로 만든 그릇, 수박씨를 비유
* 위왕(魏王)의 박 ; 쓸모없는 큰 박
* 爽; 시원할 상, 腴; 아랫배 살 질 유, 噀; 물뿜을 손, 雹; 누리 박
* 운유(雲腴) : 전설상의 선약(仙藥) * 頓; 조아릴 돈, * 오폐(五肺) : 오장(五腸)
* 삼주(三洲) : 전설상에 나오는 삼신산 * 邈; 멀 막, 擺; 열릴 파,
* 청문(靑門) : 장안성(長安城) 동문(東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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