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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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임난수 은행나무문화 culture/천연기념물 natural monument 2024. 11. 17. 14:43
임난수(林蘭秀, 1342∼1407)은행나무, 임난수는 고려말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운 부안임씨의 중시조이다. 고려 멸망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여러 번 벼슬을 주며 청했으나 응하지 않고 전월산 아래 양화리(현재 세종동)에 은거하며 심었는데, 맹씨행단의 은행나무처럼 쌍행수(雙杏樹)로 수령(樹齡) 652년의 나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이곳의 나무를 베려고 했는데 나무가 울어서 벨 수 없었다고 전한다. 며칠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좋았다. 홀쭉하고 작은 나무는 암나무인데 열매를 맺느라 고달펐는지 잎이 거의 졌으나 은행은 아직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근육질의 통통하고 큰 나무는 수컷인데 아직은 잎이 무성해서 볼만 하다. 바람이 불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압각수(鴨脚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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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동 독락정(獨樂亭) 역사공원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3. 5. 11. 18:12
독락정(獨樂亭). 2013년 겨울에 와서 일출촬영을 한 기억이 있다. 고려 후기 충신이자 부안임씨 전서공파 파조인 임난수(林蘭秀 1342~1407) 장군의 절개와 의리를 기리기 위하여 아들 임목이 조선 세종 19년(1437)에 지은 정자로 그 후 여러 차례 고쳤다. 임난수 장군은 고려 공민왕 때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여 큰 공을 세우고 전서(각부의 장관)의 벼슬에까지 올랐으나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한 하늘에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 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지금의 세종시 연기면 양화리로 낙향하여 생애를 마쳤다. 독락정은 생사축와형(生蛇逐蛙形,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고자 강가까지 쫓아 내려온 형국)으로 금강가 언덕 끝에 금강을 내려다보고 서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후열 가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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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율당(景栗堂)과 덕양서당(德陽書堂)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2. 6. 9. 21:33
경율당(景栗堂). 영조11년(1735) 경율당 전후증(全后曾)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서당. 정면4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전형적인 서당형식이다. 용마루에 얹은 장식기와에 옹정13년이란 글이 있어 건축연대를 알 수 있다. 전후증의 호는 율곡을 숭모하여 경율당이라 하였고 본관은 용궁(龍宮)이다. 전씨종중에서 후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며 이곳에 자주 모여 친화를 도모하였다. 충북유형문화재192호. 안남면 종미3길120(종미리 523) 보리밭 너머로 금강줄기와 함께 둔주봉이 보인다. 둔주봉에서는 뒤집어진 한반도지형(아, 한반도! :: 시사랑꽃사랑 (tistory.com)을 굽어볼 수 있으며, 그 아래쪽엔 조선 선조 40년(1607) 절충 장군 중추부사의 벼슬을 지낸 주몽득이 세운 독락정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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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정 일출과 6d의 변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3. 2. 12. 19:16
고려 임난수 장군(부안 임씨 시조)의 신도비가 있는 독락정.그의 충절을 기리는 매년 4월 독락문화제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전월산에 있는 그의 묘와 함께 세종시의 자랑거리로 충남문화재 제264호.(세종시가 되면서 세종시문화재자료 제8호가 되었다.)독락정 아래 소나무도 풍취가 있어 좋구나.독락정은 임난수(林蘭秀) 장군이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 부안으로 낙향하던 중 옛 양화리에 정착하였다.이성계가 여러번 벼슬을 주어 불렀으나 끝까지 응하지 않고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그의 아들인 임목이 1437년(세종 19년)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킨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이다.구룡포 과메기 http://ktk84378837.tistory.com/4411 연오랑세오녀 h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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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적의 옥산서원(玉山書院)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2. 12. 8. 20:25
옥산서원(玉山書院).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위치한다.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572년(선조 5) 경주부윤 이제민(李齊閔)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창건했다. 1574년 사액 서원이 되었다. 1871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사적 제154호이며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구인당(求仁堂)은 한석봉(韓濩)의 글씨이며 옥산서원 편액(扁額)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회제는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의 양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양동마을의 무첨당(보물411호)은 경상감사 재직시 지은 종가이며 병중인 모친을 돌볼 수 없어 중중이 지어준 향단(보물412호)이 있다. https://ktk84378837.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