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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彌勒寺址) Maitreya Buddhist temple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0. 12. 3. 09:58
미륵사지 서탑은 복원하겠다고 해체된지 10년이 지났건만 내부는 아직 해체된 상태 그대로다.
해체되기 전 국보 제11호인 서탑 14.24m 6층의 1,300년 장엄한 모습.
대학재학시 유적답사 때 보았던 모습이다. 그 사진이 어디 박혀 있을 법 한데...
복원한 27.67m 구충 동탑의 장엄하고 신이한 모습
보물 제236호인 당간지주
미륵사지 내의 연지
정림사지오층석탑 http://ktk84378837.tistory.com/6189 익산 미륵사지 http://ktk84378837.tistory.com/945
백제문화제 http://ktk84378837.tistory.com/3667 http://ktk84378837.tistory.com/1066 700미터 인절미 http://ktk84378837.tistory.com/3668
빛내림 http://ktk84378837.tistory.com/3580
미륵사 창건설화
부여의 한 과부가 용과 정을 통해 아들을 낳았는데,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
집이 가난해 산에서 마를 캐어 생계를 꾸려 갔기에 마동 또는 서동(薯童)이라 불렸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경주로 갔다.
그는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서동요>라는 이 노래는 곧 경주에 퍼졌는데, 선화공주가 밤마다 서동을 몰래 만나 정을 통한다는 내용이었다.
임금은 깜짝 놀라 선화공주를 멀리 귀양 보냈다. 이때 왕비가 공주에게 황금 한 말을 주었다.
공주의 귀양 길을 뒤따르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가 서동이었다.
공주는 운명으로 알고 서동을 따라갔다.
공주가 황금을 내어 놓자 서동은 그것이 산에 많다고 했다.
공주가 따라가 보니 과연 황금이 널려 있었다.지명법사의 도력으로 황금을 신라의 진평왕에게 보내 인심을 얻어 서동은 백제의 무왕이 되었다.
어느 날 무왕과 공주가 용화산의 지명법사를 만나러 가는데, 산 아래 큰 연못에 이르자 미륵삼존이 출현하였다.
두 사람은 경배했고, 못을 메우고 절을 짓기로 하였다.
진평왕도 많은 일꾼을 보내 도움을 주었는데, 이때 완공된 절이 바로 미륵사이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20702&cid=50223&categoryId=51051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정말 설화가 되어버렸다.
석탑을 해체하면서 금제사리봉안기가 나왔는데 639년에 좌평인 사택적덕의 딸이 재물을 희사해서 지은 절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신비가 사라진 설화 한 토막의 아쉬움이라니...
미륵사터의 탑 / 문효치
옥개석에 누워
잠자던 세월이 내려 온다.
용화산 소나무
목숨의 한 끝 다쳐
앓고 일어나는데
구겨져 날아다니던 햇빛들
이제는 저 들 끝으로 모두 가버리고
텅 비어 적이 안심되는 평화.
요 무언의 땅바닥,
미륵의 세상인가.
남내리 엽서 ( 문학아카데미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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