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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 산성시장 山城市場
    풍경 landscape 2020. 9. 30. 20:28

    붉은 햇살 아래 차양막 열기로 한가위 인절미가 익어간다

     

    고춧가루 반죽은 치열한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변신은 무죄라고 외친다 

     

    이 정도 되어야 전통시장 특유의 감칠맛이 살아나지

     

    봄에 뜯어 삶아 냉동실에 숙면하던 쑥을 녹여 익히는 동안

     

    한켠에서 먼저온 손님의 쑥떡을 잘라 비닐봉지 포장작업을 한다

     

    들마루에선 인절미 담을 비닐봉투 뒤집기 작업을 하고

     

    안쪽에선 원심력과 구심력을 이용해 찹쌀가루와 쑥을 치대는데 요로코롬 이쁘다

     

    기름집에는 쑥인절미 하는 사람들이 줄 서 기다리는데

     

    희한(稀罕)하다, 떡집에는 떡 하는 사람이 없다 

     

    한발짝 트니 둥근잎나팔꽃을 키우는 집도 있고

     

    미인을 키워 항시 대기시키기도 하지만 코로나19 탓일까 속이 갑갑하데

     

    수도꼭지에서 터진 콸콸지는 물소리가 시원하다

     

    오늘은 팔릴까 찰지게 맛난 저 가죽비곗살

     

    미용실 싸인볼은 돌고돌아도 지치는 기색이 없다

     

    국숫집 처마는 비닐초가지붕에 매달려 있고

     

    스레트 지붕끝 자반에선 호박고지가 말라간다

     

    흰테왕나팔꽃은 언제까지 희망의 등불 노릇을 할까

     

    언제 뽑혀나갈지 알 수 없는 오동잎은 후년의 환생을 위해 떨어져 사라질 날을 기다리는데

     

    스멀거리는 비린내와 핏기는 얼만큼 지워졌을까

     

    골목길 자전거에 찬란한 햇살이 무정하게도 파고 든다

    공주 산성시장 ktk84378837.tistory.com/9270 ktk84378837.tistory.com/9380

     

    공주 시장 / 윤재철

     

    오이가 비를 맞고 있다

    가락시장에도 못 간

    구부러지고 볼품없는 흰 오이

    예닐곱 개씩 쌓아놓은

    무더기가 예닐곱 개

    좌판도 없이

    아스팔트 맨땅 위에

    얇은 비닐 한장 깔고 앉아

    비를 맞고 있다

    장날도 아닌 공주 시장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아주머니는 중국집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턱을 괴고 있는데

    대책없는 오이는 시퍼렇게 살아

    다시 밭으로 가자고 한다

     

    - 윤재철,세상에 새로 온 꽃(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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