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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서불과지(徐福過之)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5. 11. 8. 17:13

     

     

     

     

     

     

     

     

     

     

    30년만에 보는 정방폭포.

    <사기> '진시황본기'에 진(秦)의 시황제로부터 齊나라 서불이 "저 멀리 바다 건너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의 삼신산(三神山)에 신선이 사는데, 동남동녀를 데리고 가서 모셔오고자 합니다" 하였다.

    봉래(蓬萊)는 금강산, 방장(方丈)은 두류산(頭流山 즉 지리산), 영주(瀛洲)는 한라산으로 해석된다.  '회남형산열전'에

    "또한 서복(徐福)으로 하여금 바다에 들어가 신선에게 기이한 물건을 구하게 하니, 그는 돌아와 거짓으로 말하기를 "신(臣)이 바다 속의 커다란 신(神)을 만났는데, '네가 서황(西皇)의 사자냐?'라고 묻기에 신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너는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묻기에 '수명을 연장시키는 약을 원합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그 신은 '너는 진왕(秦王)의 예(禮)가 박해 그 약을 볼 수는 있으나, 얻어 취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하고는 바로 신을 데리고 동남쪽에 있는 봉래산(蓬萊山)으로 갔습니다.

    영지초(靈芝草)로 이루어진 궁궐이 보이고 사자가 있었는데, 구릿빛에 용의 형상이었으며, 그 광채가 하늘까지 비추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재배(再拜)하고 '마땅히 어떤 예물을 바쳐야 합니까?'라고 묻자 해신(海神)은 '양가집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그리고 백공(百工)의 제품을 바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라 했습니다.

    진시황은 크게 기뻐하며 동남동녀 3천명을 보내고 오곡의 종자와 여러 장인들의 만든 것을 가져가게 했습니다. 서복은 평평한 들판과 넓은 못을 얻자 거기에 머물러 왕이 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서복공원 안내문에는 서불(徐福)이 500명의 동남동녀를 이끌고 정방폭포에 닻을 내리고 암벽에 서불과지(徐福過之)를 새긴 후 불노초를 찾아 돌아갔다고 했다. 

    이로부터 서귀포(西歸浦) 지명이 생겼다는 말은 무엇이며 또한 불노초는 무엇인가  ... 조선말 김석익의 '파한록'에는 제주목사 백낙연이 서불과지를 확인코자 절벽에 올랐는데 고문자인 과두문으로 12자가 기록되어 있어 해독이 어려웠다는 해설이 안내문에 소개되어 있다. 

    * 서불과차(徐福過此)는 경남기념물 6호로 남해 두모마을 계곡 거북바위에 새겨져 있다. 

     

     

    시황과 불로초 / 손정모

     

     

    고집만 세던 선비들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짓뭉개고

    분연히 말 몰아

    내달은 곳, 성산두

     

    천하의 권세로도

    생명 연장은 어려워

    동남동녀 풀어

    불로초 구하렸어도

      

    전설의 봉래도(蓬萊島)

    안개 속의 미궁인데

    어느 날에 만날까

    불로초의 향기

      

    시황 죽고

    왕국마저 스러졌는데

    관 속에서나 들리려는가?

    선경(仙境)의 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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