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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시산방(老枾山房) 연상시키는 암삼마을
    풍경 landscape 2009. 10. 27. 21:19



    진산에서 우회전 하여 가자니 한밭교육박물관장을 역임한 sjss 님이 안다는 곳이 석막교회다.

    석막교회는 언론에 사이비 재림주 사건으로 유명한 정명석목사의 개신교회다.

    호기심에 교회를 들려 보자니 마침 행사가 있어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며 다음에 오시라 하여 되돌아 나왔다.

    세상 교회가 다 이기적이로구나 씁쓸해 하며 좁은 산길을 기어오르니 서너 가구 마을이 오른켠으로 들어온다.

    얼마 전에 가르친 김용준의 노시산방 분위기와 비슷하여 부러 내렸다.

    행정구역상 충남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에 있는 암삼마을이다.

     





     진산.

     

     

    노시산방기(老枾山房記)  /  김용준

     


    지금 내가 거하는 집을 노시산방老枾山房이라 한 것은 3,4년 전에 이 군이 지어 준 이름이다. 마당 앞에 한 7,80년은 묵은 성싶은 늙은 감나무 2,3주가 서 있는데 늦은 봄이 되면 뾰족뾰족 잎이 돋고 여름이면 퍼렇다 못해 거의 시꺼멓게 온 집안에 그늘을 지워주고 하는 것이 이 집에 사는 주인인 나로 하여금 얼마나 마음을 위로하여 주는지 지금에 와서는 마치 감나무가 주인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요, 주인이 감나무를 위해 사는 것쯤 된지라 이 군이 일러 노시사老枾舍라 명명해 준 것을 별로 삭여 볼 여지도 없이 그대로 행세를 하고 만 것이다.


    하기는 그 후 시관時觀과 같이 주안酒案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던 끝에 시관의 말이 노시산방이라기보다는 고시산방古枾山房이라 함이 어떠하겠느냐 하여 잠깐 내 집 이름을 다시 한 번 찝어 본 일도 있기는 하다. 푸른 이끼가 낀 늙은 감나무를 노시 老枾라 하기보다는 고시古枾라 함이 창唱으로 보든지 글자가 주는 애착성으로 보든지 더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요, 노사라 하면 어딘지 모르게 좀 속되어 보일 뿐 아니라 젊은 사람이 어쩐지 늙은 체하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아서 재미가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나는 역시 고古 자를 붙이는 골동 취미보다는 노老자의 순수한 맛이 한결 내 호기심을 이끌었던 것이다.


    원래 나는 노경老境이란 경지를 퍽 좋아한다. 기법상 술어로 쓰는 노련老鍊이란 말도 내가 항상 사랑해 온 말이거니와 철학자로 치면 누구보다도 노자를 좋아했고 아호로서도 나이 많아지고 수법이 원숙해진 분들이 흔히 노老 자를 붙여서 가령 노석도인老石道人 이라 한다든지 자하노인疵瑕老人이라 하는 것을 볼 때는 진실로 무엇으로서도 비유하기 어려운 유장하고 함축 있는 맛을 느끼게 된다.

    노인이 자칭 노老라 하는 데는 조금도 어색해 보이거나 과장해 보이는 법이 없고 오히려 겸양하고 넉넉한 맛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나는 노시산방을 무슨 노경을 사랑한다 하여 바로 나 자신이 노경에 든 행세를 하려 함이 아니요, 그저 턱없이 노老 자가 좋고 또 노시老枾가 있고 함으로 그렇게 이름을 붙인 데 불과함이요, 또 가다가는 호까지도 노시산인老枾山人이라 해본 적도 있었다.


    한번은 초대면하게 된 어느 친구가 인사를 건넨 뒤에 놀라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나를 적어도 한 4,50은 넘은 사람으로 상상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노시산인이란 호를 쓴 것을 본 때문은 아니요 집 이름을 노시산방이라 한 것을 간혹 들은 것만으로 그 집 주인은 으레 늙수그레한 사람이려니 하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떄 처음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생각되었음직도 한 일이라 싶었다. 아무튼 나는 내 변변치 않은 이 모옥茅屋을 노시산방이라 불러 오는 만큼 뜰 앞에 선 몇 그루의 감나무는 내 어느 친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나무들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때는 교통이 불편하여 문전에 구루마 한 채도 들어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집 뒤에는 꿩이랑 늑대가 가끔 내려오곤 하는 것이어서 아내는 그런 무주 구천동 같은 데를 무얼 하자고 가느냐고 맹렬히 반대하는 것이었으나 그럴 때마다 암말 말고 따라만 와 보우 하고 끌다시피 데리고 온 것인데 기실은 진실로 내가 이 늙은 감나무 몇 그루를 사랑한 때문이었다.


    무슨 화초 무슨 수목이 좋지 않은 것이 있으리요만 유독 내가 감나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놈의 모습이 아무런 조화造花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때문이다. 나무껍질이 부드럽고 원시적인 것도 한 특징이요, 잎이 원활하고 점잖은 것도 한 특징이며 꽃이 초롱같이 예쁜 것이며 가지마다 좋은 열매가 맺는 것과 단풍이 구수하게 드는 것과 낙엽이 애상적으로 지는 것과 여름에는 그늘이 그에 덮을 나위 없고 겨울에는 까막까치로 하여금 시흥을 돋우게 하는 것이며 그야 말로 화조花朝와 월석月夕에 감나무가 끼어서 풍류를 돋우지 않는 것이 없으니 어느 편으로 보아도 고풍스러워 운치 있는 나무는 아마도 감나무가 제일일까 한다.


    처음에는 오류선생의 본을 받아 버드나무를 많이 심어 볼까고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 너무 짙은 감나무 그늘은 우울한 내 심사를 더 어둡게 할까 저어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지나고 보니 요염한 버들가지보다는 차라리 어수룩한 감나무가 정이 두터워진다.


    나는 또 노시산방에 이들 감나무와 함께 조화를 지켜야 할 여러 가지 나무와 화초를 심기에 한동안은 게으르지 않았다. 우선 나무로서는 대추며 밤이며 벽오동 등과 꽃으로는 목련, 불두佛頭, 정향丁香, 모란, 월계, 옥잠, 산다山茶, 황, 철쭉 등을 두서없이 심어 놓고 겨울에는 소위 온실이라 하여 한 평이나 겨우 될락말락한 면적을 4,5자 내려 파고 내 손으로 문을 짠다 유리를 끼운다 해서 꼴같지 않게 만들어 놓은 데다가 한두 분 매화와 난초를 넣고 수선을 기르고 하면서 날이면 날마다 물을 주기에 세사世事의 어찌 됨을 모를 지경이었다. 이렇게 하고 있노라니까 이 모양이나마 우리 산방의 살림을 누가 보면 재미가 나겠다고도 하고 자기네도 한번 이렇게 살아 보았으면 하며 부러워하는 인사도 있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의 성질로서 그런 생활이 오래 계속될 리는 만무한 것이었다. 나는 한두 해를 지나는 동안 어느 여가엔지 뜰을 내려다보는 습관이 차츰 줄어들고 필시에는 본바탕의 악성 태만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 좋아하던 감나무도 심상해지고 화초에 풀이 자욱해도 못 본 체하고 어떤 놈은 물을 얻어먹지 못하여 마르다 못해 배배 꼬이다가 급기야는 곯아 죽는 놈들이 비일비재였건만 그래도 나는 태연해졌다. 대체로 화초랑 물건은 이상한 것이어서 날마다 정신을 써 가면서 들여다볼 적에는 별로 물을 부지런히 주는 법이 없더라도 의기가 충천할 것처럼 무럭무럭 자라나는 놈이 아무리 비옥한 토질과 규칙적으로 물을 얻어먹는 환경에 있으면서도 주인에게 벌써 사랑하는 마음이 끊어지고, 되면 되고 말면 말라는 주의로 나가는 데는 제아무리한 독종이라고 해도 배배 꼬이지 않는 놈을 별로 보지 못했다. 화초일망정 아마도 정이 서로 통하지 않는 까닭일까.


    나의 게으름은 이렇듯이 하여 금년 들어서부터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다시피 했다. 그것은 어느 때고 한 번은 오고야 말 운명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비록 게을러서 화초를 거두기에 인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해마다 하느님께만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다. 마르다 못해 곯고 골다 못해 죽어가던 놈도 철따라 사풍斜風과 세우細雨의 덕분으로 밤 동안에 개울물이 풍성하게 내려가고 뿌리 끝마다 물기가 포근히 배어 오르면 네 활개를 치듯이 새 기운을 뽐내는 것들인데 금년에도 역시 나는 설마 비가 오려니 하고 기다렸더니 설마가 사람을 죽인다는 격으로 장마철을 지난 지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석 달이 또 가고 하여도 비가 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산골 개울물이 마르는 것쯤은 또 혹시 그럴 수 있더라도 괴이할 것이 없으려니와 그 잘 나던 샘물이 마르고 실수가 떨어지고 나중에는 멀쩡한 나뭇잎이 단풍도 들지 않은 채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연달아 밤나무가 죽고 대추나무가 죽고 철쭉이 죽고 하여 평생에 보지 못하던 초목들의 떼송장이 온 마당에 질펀해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지 못해 한 지게에 십 전씩 하는 수돗물이라도 사서 먹는다 치더라도 그렇다고 그 많은 나무들을 일일이 십 전어치씩 물을 사서 먹일 기력이 내게는 또한 없다. 그러고 보니 점점 초조해지기만 한다. 가지마다 보기 좋게 매달렸던 감들이 한 개 두 개 시름없이 떨어지고 돌돌 말린 감잎이 애원하듯 내 앞으로 굴러 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보기 좋던 나무 둥치가 한 겹 한 겹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나는 다른 어느 나무 보다도 감나무가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주인이 감나무를 위해 살고 있다시피 한 이 노시산방의 진짜 주인공이 죽는다는 게 될 말인가. 모든 화초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감나무만은 구해야겠다는 일념에서 매일같이 십 전짜리 물을 서너 지게씩 주기로 했다. 그러나 감나무들은 좀처럼 활기를 보여주지 않은 채 가을이 오고 낙엽이 지고했다. 여느 해 같으면 지금 한창 불타오르듯 보기 좋게 매달렸어야 할 감들이 금년에는 거의 다 떨어지고 몇 개 남은 놈들조차 패잔병처럼 무기력해 보인다. 주인을 못 만난 그 나무들이 내년 봄에 다시 씻은 듯 새 움이 돋고 시원한 그늘을 이 노시산방과 산방의 주인을 위해 과연 지어 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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