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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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國立慶州博物館)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8. 7. 13. 18:07
고선사터삼층석탑, 국보 제38호, 경주 국립박물관 내, 통일신라시대. 감은사지 석탑과 비슷하다. 외동읍 말방리에 있던 숭복사터(崇福寺址) 쌍거북비석받침(雙龜趺). 원성왕의 명복을 빌어주던 사찰로 최치원이 지은 비문이 있었다. 경주 배리 창림사터와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터에도 쌍거북받침이 있는데 모두 왕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봉덕사종,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렀다. 국보 제29호, 경주국립박물관 내. 성덕대왕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은 봉덕사에 있다가 폐허로 변하자 영묘사, 경주읍성 남문밖, 동부동 구 경주박물관에에서 지금의 자리로 옴겼다. 신라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왕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하여 동(銅) 12만 근으로 주조를 시작했으나 완성을 못하고 죽자 아들인 혜공왕이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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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 感恩寺址三層石塔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1. 7. 22. 21:29
금년에도 작년과 같은 일정 같은 코스를 다른 목적 즉 직원 연수로 가게 되었다.지난해 2월엔 국립중앙과학관 자연사연구협회 탐사활동으로 찾아갔다. 그때도 감은사도 감포도 먹구름이 두텁게 덮었었다. 겨울에든 여름에든 좀처럼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이 불심에 의지하여 왜적을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짓는데 신문왕 때 완성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감은사의 금당 아래에 문무왕의 화신인 용이 출입할 수 있도록 용혈을 팠다. 감포 앞바다에는 용왕이 된 문무왕이 대왕암에 누워 왜적의 침입을막고 있다. 대왕암을 바라보는 감은사 터에는 국보 제112호인 동서 3층 석탑만이 우뚝하게 서 있다. 감은사가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가 없다. 이한상의 발굴이야기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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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암 문무대왕릉 (慶州 文武大王陵)풍경 landscape 2010. 3. 2. 21:33
호국 영령이시여! 경주 문무대왕릉 (慶州 文武大王陵) 사적 제158호. 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무덤이다. 동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또한 병부, 창부 등 중앙관청을 창설하였고, 지방통치를 위한 5소경제도와 9서당 10정의 군사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국가 체제 완성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바닷물은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게 만들어 항상 잔잔하게 하였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