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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띠기타 etcetera 2009. 3. 20. 14:59
독일의 수학자 ·천문학자. 사영기하학(射影幾何學)의 기초를 굳혔으며, 직선기하학 연구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면(面)의 표리(表裏)의 구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대한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과천 국립중앙과학관.
뫼비우스가 사라진 뫼비우스 맵 / 이민하
등 뒤에서 누군가 칼금을 긋는다.
갈라진 틈으로 차가운 액체가 흐르는 순간. 눈을 떠
창 밖을 본다. 검붉은 암벽이 뒷짐을 지고 M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릴 적에도 거대한 암벽은 늘
그의 이마를 짚어 주며 요람을 흔들어 주었다.
문드러진 귀. 꽉 다문 입술은 왁스를 바른 듯 번질거렸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그 앞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연주자가
눈을 뜬 채 죽었다. 란제리처럼 나부끼던
M의 귀에 바이올린 소린지 비명 소린지 구분이 안 가는
연주자의 마지막 발음이 새겨졌다.
그 후로 바이올린 활에 꿰인 사람들이 줄줄이
암벽 너머로 사라졌다. 네 발로 오르는 그들의
뒷모습. 그는 태연하게 때론 뭉클한 향수에 젖어 그걸 지켜봤다.
간헐적으로.
그들이 두고 간 낡은 악보들이 핏물이 새는
벽을 타고 넘어왔다. 그 때마다 벽쪽으로 기운
그의 귀에 돋아나는 뽀얀 속잎을 뜯어냈다.
속잎은 자꾸 생겨났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자꾸 사라졌고
그 때마다 바이올린 소린지 비명 소린지 모를 그들의
마지막 발음. 그는 여린 속잎에 받아 적었다. 익숙해진
짧고 둔탁하고 비릿한 발음으로.
이웃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쉴 새 없이 연주를 들려줬다. K는 창문을 닫고.
손뼉을 치던 S는 모자로 코를 막고.
친절한 L은 그에게 권총을 내밀었다.
음표들이 뛰쳐나간 악보처럼 그의 속잎들은
귀를 덮기도 전에 뜯겨졌다.
왼쪽 서랍.
권총으로 뜯어낸 속잎을 차곡차곡.
왼쪽 서랍에 넣어두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뜯어낸
속잎에는 고물거리는 실지렁이들이 뒤엉켜 있다.
실지렁이들은 서로 엉겨붙어 주름진 이마의 아기로 변신했다. Opus. 1.
뱃속에 고래를 품은 여자, Opus. 29.
악보의 흔적은 진화의 알리바이.
두 눈의 용광로에서 끝없이 사슬을 뽑아내는 노인, Opus. 73. 이윽고
네 개의 벽이 원형극장처럼 빙 둘러 앉았다.
오른쪽 서랍.
M은 오른쪽 서랍에 남은 탄알을 세어 본다.
아침마다 오른쪽 서랍을 물에 비추어 보면
맑은 날과 비오는 날 셈이 맞지 않는 탄알들을 한데 뭉쳐
관자놀이를 향해 레퀴엠을 장전한다. 기억의 정육점에 매달려 있는
사랑스런 육체들이여 안녕. 탕.
M의 앞다리 두 개가 밀폐된 영사막을 뚫고 반사적으로.
창 밖으로 이어진 사다리를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암벽의 귀를 향한 마지막 발걸음.
경쾌하고 느슨하다. 수억만 개의
태양이 천천히 핥고 지나간 끈적한 귀.
끝없이 올라가.
온몸으로. 문드러진 암벽의 귓구멍을 쑤셔댄다.
지상에서 배운 최초의 발성법으로. 아―
두개골이 파열되듯
그는 급속하고 부드럽게 절벽 끝으로 밀린다. 캄캄한 절벽
아래로 붉고 따뜻한 안개가 낭자하다. 골짜기마다
바이올린 소리가 실지렁이처럼 뒤엉켜 있다. 발을
헛딛는다.
끝없는 추락.
M은 따뜻한 골짜기에 웅크리고 있다. 입을 오물거린다.
그의 몸 한 부위에 길다란 줄이 꽂혀 있다. 그 줄을 타고 내려온
바이올린 선율이 비닐랩처럼 온몸을 감싼다.
그는 거꾸로 태아처럼 매달려 있다.
손 대신 두 개의 서랍이 팔 끝에 붙어 있다.
귀에서 여린 속잎이 돋아난다. 긴 여행이 시작된다.
수록시집 환상수족 ( 열림원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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