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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노산공원(魯山公園)과 박재삼(朴在森)문화 culture/문학 literature 2025. 3. 17. 12:43
꽃 피는 동백섬이라도 되는 양 동백이 흐드러졌다 근엄한 이순신장군도 미소를 짓는 듯하다. 노산(魯山)은 지금도 시조시인 노산(鷺山) 이은상이 떠올라 혼동되는 지명이다. 시의 중심부인 선구동과 동서금동의 경계에서 남쪽바다로 돌출한 갑(岬)의 독메로 해안일대를 매축하여 현 시가지가 되기 전의 노산(魯山)은 물이 들 때에는 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 노산에 서당인 호연재가 있었는데 여기에 다니기 위하여 큰 돌로 징검다리를 놓았던 바, 당시 사람들이 이 징검다리를 '노다리'라 부르고, 다리 이름을 따서 '노다리산'이라 하다가 노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호연재의 팔문장중에 '노(魯)'라는 호가 있는 분이 있어 노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이곳은 일제초기엔 현 백진학원의 전신인 보흥의숙(普興義塾)과 그 전신인 광명의숙(光明義塾)을 설립하여 신문화운동과 민족의식 배양의 요람지가 된 곳으로 시가지 일대와 한려수도를 굽어보는 풍경이 아름다워 시의 승격과 동시에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사천시종합관광안내센터)
삼천포 대표시인 최송량의 삼천포 아리랑을 음송하다가 사랑섬? 사랑도가 있었나? 아니면 사량도를 잘못 표기한건가 했더니, 그의 후배인 정삼조 시인 왈, (사량도)를 시의 맥락에 맞게 사람들이 부르는 발음으로 시적 허용을 한 것이라고...
2008년에 왔을 적엔 최송량 시비도 박재삼문학관도 물론 없었다. <천년의 바람>처럼 처음의 모습대로 변치 않고 바다를 향해 그리움의 목을 빼물고 있었다. 교과서 작가 박재삼이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시판
동네 형같은 친근한 미소
<과일가게 앞에서>의 부분
박재삼과 김동리와 임진수
<내고향 바다 치수(數)>
호연재(浩然齋)는 조선 영조46년(1770년) 때 노산(魯山園)에 건립된 이 고장의 대표적인 학당(서당)으로 이 지역의 인재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시문을 짓던 곳이다. 있던 서당 이름이다. 호연재를 다니기 위하여 큰 돌로 징검다리를 놓았던 바 당시 '노다리'라 부르고, 다리 이름을 따서 '노다리산'이라 하다가 노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호연재의 팔문장 중에 노(魯)라는 호가 있는 분이 있어 노산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망국의 울분을 터트리자 강제철거되었으며, 보흥의숙의 전신인 광명의숙을 설립하여 신문화운동과 민족의식을 배양하였다. 2008년 복원.
노산공원에서 보는 삼천포대교
삼천포항 목섬 서방파제와 등대. 목섬 서쪽끝 방파제 끝부분에 위치한 초점면 12m 빨간색 플래시매 6의. 9m 랜턴과 갤러리 원형 콘크리트 타워이다.
국가무형유산인 해녀(海女)의 물질. 해녀에 관한 기록은 17세기 제주도 관련 기록에서 보이듯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해녀들의 ‘물질’은 원초적인 어로 형태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어로법이다. 또한, 물질경험에서 축적된 생태환경에 대한 민속지식이 상당하고 동료해녀에 대한 배려와 협업, 해녀들의 신앙과 의례 등 해녀만의 독특한 공동체적 생활문화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해녀와 관련된 문화는 무형유산으로서 역사성, 예술성, 고유성 등의 가치가 탁월하므로 종목을 보존·전승하고자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하였고, 2016년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되었다(제주해녀문화)
참돔,볼락, 전어의 모습을 형상화 한 물고기상과 노산정(魯山亭, 팔각전망대)
삼천포 용궁수산시장
추억(追憶)에서 31 / 박재삼(朴在森, 1933~1997)
해방된 다음해
魯山노산 언덕에 가서
눈아래 貿易무역회사 자리
홀로 三千浦中學校삼천포중학교 입학식을 보았다.
기부금 三천원이 없어서
그 학교에 못 간 나는
여기에 쫓겨오듯 와서
빛나는 모표와 모자와 새 교복을
눈물 속에서 보았다.
그러나 저 먼 바다
섬가에 부딪히는 물보라를
또는 하늘하늘 뜬 작은 배가
햇빛 속에서 길을 내며 가는 것을
눈여겨 뚫어지게 보았다.
학교에 가는 대신
이 눈물 범벅을 씻고
세상을 멋지게 훌륭하게
헤쳐 가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오늘토록 밀려서
내 주위에 너무 많은 것에 지쳐
이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 어렴풋이 배웠다.
삼천포2 -박재삼문학관 / 장만호
노산 공원 황금빛 벤치에 앉아 그는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였다
세상은 늦은 나무 같아서
아주는 아니고,
조금 바다처럼
생각난 듯 느리게 차오르는
저녁의 물색을
그는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묽다,
말갛다
끝내 글썽이는 그의 눈 속으로
동백이 떨어지고 있었다
남해의 너머로 남은 해가 지고 있었다
ㅡ『시산맥』(2020,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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