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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 건봉사(乾鳳寺)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2. 11. 24. 00:03

    건봉사 불이문. 한국전쟁으로 모두 소실된 건봉사 터에 유일하게 남은 건축물이다. 불이란 진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으로 이곳을 통과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보통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세 문을 지나는데 건봉사는 천왕문을 따로 세우지 않고 불이문 돌기둥에 금강저(金剛智杵)국립청주박물관 :: 시사랑꽃사랑 (tistory.com)를 새겨서 사찰수호의 기능까지 더하였다. 원통형으로 다듬은 4개의 돌기둥 위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렸다. 각 돌에 새겨진 문양은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도구인 금강저를 나타낸다. 금강저는 고대 인도에서 쓰던 무기로 부처를 수호하고 번뇌를 없애는 깨달음의 지혜를 상징한다. 현판은 해강 김규진(金圭鎭)의 글씨다. 오른쪽에 수령 5백년의 팽나무 보호수가 벌써 잎을 다 떨군채 서 있다. 지정번호 강원-고성-10, 지정일자 2008년, 수고15m. 둘레2.2m의 거목인데 왕소나무와 함께 건봉사가 자랑하는 명물 중의 하나다. 건봉사는 한국전쟁시 전소되었으나 불이문만 화를 입지 않았는데 이 팽나무가 지켜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1920년에 중수하였다.

     

    건봉사 불이문 / 이덕완

     

    두 개인 듯 하나로 보이는 구름 한 조각 금강산과 향로봉에 걸쳐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건봉사 불이문에 들어선다

    부처님 치아사리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에는 불상이 없고 계곡 건너 금강산 대웅전엔 부처가 환하다 만해(卍海)의 뜨거운 발자국이 보일 듯 돌다리를 경계로 금강산과 향로봉이 포개진다

    같고 다름이 하나인데 이 곳에는 모두가 둘이라니 민통선 철조망이 반세기동안 녹슨 풀섶에서 가람을 두르고 있다 반야심경(般若心經) 독경 소리가 풀 향기에 섞인다 깨진 기왓장에 뒹구는 낡은 이념들 초병들의 군홧발 자국 절마당에 가득한데 목 백일홍 나무에서 떨어지는 자미꽃의 핏빛 절규는 나무아미타불탑 위의 돌봉황에 실려 북으로 가는가, 갔는가

    적멸보궁 터진 벽 뒤로 날아가는 하얀 미소를 보며, 아내와 난 보살님이 준 콩 인절미를 반으로 나누어 먹는다

    * 2000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목교인 연화교가 참 인상적이다 이거 영화의 한 장면에 삽입될만한데 하면서 출렁다리 지나듯 지난 까닭은 이미 점심이 약속되어 있는 공양간으로 가기 위해서다. 나물 20여 가지가 뷔페식으로 진열되어 있다. 오랜만에 접하는 사찰음식이 머리를 맑게 하고 몸을 경건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뒤꼍엔 마지막 단풍이 골바람에 몸을 맡겼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글자가 새겨진 석주가 서 있는 범종각. 대방광불화엄경은 화엄경의 본래 이름이며 불교천태중앙박물관에 보관된 목판본이 보물 제1017호로 지정되어 있다.

    범종(梵鐘) / 조지훈

    무르익은 과실(果實)/ 가지에서 절로 떨어지듯이 종소리는/ 허공(虛空)에서 떨어진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종소리는 터져서 빛이 되고 향기가 되고/ 다시 엉기고 맴돌아/ 귓가에 가슴 속에 메아리치며 종소리는/ 웅 웅 웅 웅 웅....../ 삼십삼천(三十三天)을 날아오른다 아득한 것.// 종소리 우에 꽃방석을/ 깔고 앉아 웃음 짓는 사람아/ 죽은 자()가 깨어서 말하는 시간(時間)/ 산 자()는 죽음의 신비(神秘)에 젖은/ 이 텡하니 비인 새벽의/ 공간(空間)/ 조용히 흔드는/ 종소리/ 너 향기로운/ 과실(果實)이여!

    건봉사 극락전. 역사상 최초로 염불만일회를 개최한 최고의 아미타 염불사찰로써, 불보사찰 통도사, 법보사찰 해인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4대사찰의 하나였다. 아미타불은 자기의 이상을 싷현한 극락정토에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는 극락전(=아미타전=무량수전)이 그 상징이다. 극락이 서쪽에 있으므로 참배하는 사람이 서쪽으로 보게끔 보통 동향으로 배치한다.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 봉안되어 있다. 관세음은 지혜로서 중생의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대세지보살은 광명을 비추어 중생을 제도케 한다. 후불탱으로는 극락회상도, 극락구품탱이 봉안되는데 건봉사는 아미타탱화를 봉안하였다. 법당의 불단은 연화문과 용,거북,원앙,붕어 등으로 장식하였다. 주불 위에는 천개(天蓋)를 만들고 용과 여의주와 극락으로 인도하는 봉황을 조각하였다. 극락전은 2020년(불기2564)  복원되었다. 

    극락전에서 적멸보궁을 오르다보면 왼편에 장대한 소나무 하나 서 있다. 그 기개가 엄청난데 건봉사가 자랑하는 왕소나무다. 솔보굿(소나무 줄기의 비늘 같은 껍질)이 2백년 묵은 거북의 등짝처럼 임란 때 장군의 갑옷처럼 장엄한 느낌임에도 아직 보호수로 지정받지는 못하였다. 여기서 건봉사 전경이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한 눈에 들어온다.  

    건봉사 보안원(普眼院) 부처의 진신치아사리친견장이다. 보안보살은 원각경 보안보살장에 부처님의 대고중(對告衆)의 대표로 등장하는 보살로 널리 일체중생을 관하는 자비로운 보살의 눈으로써 환(幻)을 여의고 행(行)을 닦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산중탱화 중앙에 배치되는 동진보살은 32천의 우두머리인 위태천신으로 유리광불이 출현하셨을때 도를 이루어 보안보살로도 불려 동진보안보살이라고 하며 팔만사천근이나 되는 금강보저를 들고 불법수호를 서원하였다. 부처열반시 속질귀(速疾鬼)라는 나찰이 부처의 치아를 훔쳐 달아나자 쫒아가 찾아오고 제석천과 더불어 불법의 수호신으로 불경간행시 동진보안보살상을 새겨넣어 수호의 상징이다. 건봉사는 철종13년(1862)에 조성되었다가 소실된 만일회장판 불설대목련경 경판복원과 함께 치아사리와 경판의 수호신인 동진보안보살을 조성하여 불기2566(2022)에 보안원으로 이운하여 봉안하는 법회를 봉행하였다. 보안원 앞에 '다섯개로 뻗은 줄기마다 용비늘 같은 파란 이파리들이 무성한 것이 마치 다섯 마리 용이 몸뚱이를 틀고 솟구쳐오르는 듯한(주지스님과 종두의 절 이야기, 122쪽, 최동훈) 오룡잣나무'가 왕소나무와 짝을 이루는 듯하다. 뜰 앞의 잣나무 즉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란 중국 당나라 조주 종심(趙州從諗, 778~897) 선사가 제시한 유명한 화두(話頭)이다. 재미나기는 한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원문은 다음과 같다.

    趙州因僧問如何是祖師西來意師曰庭前柏樹子曰和尚莫將境示人師曰我不將境示人曰如何是祖師西來意師曰庭前柏樹子

    해석 : "조주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뜰 앞에는 잣나무이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나는 경계를 가지고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에는 잣나무이다.”

    건봉사 적멸보궁 치아사리탑. 1724년(경종4). 건봉사 진신사리탑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불사리와 치아 사리를 약탈해 간 것을 사명대사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되찾아오고서 세웠다. 이때부터 석가의 치아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만들었다. 적멸보궁 뒤편에 사리탑이 있다. 석가여래진신사리탑 뒤편으로 1726년에 세워진 석가여래치상탑비 등 비석이 2개가 서있으며 왼쪽으로 3과의 치아사리가 봉안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강계단(불사리탑)이 있다. 좌로부터 주인을 모르는 부도,  석가여래치상입탑비 1726년(영조2), 석가여래 영아탑봉안비(1906년), 치아사리탑 1724년(경종4)이 설치되어 있다. 

    내일은 수능일, 적멸보궁 기원탑에 수능대박기원 촛불이 애틋하다. 

    건봉사 능파교(凌波橋. 보물 제1336호)는 불이문 옆에 1708년 축조되었다. 건봉사 5개의 홍예교중 가장 규모가 크다. 성상(聖上, 숙종)의 즉위31년 갑신년(1704)에 신계(信戒)가 시내를 건네주는 공덕을 닦기 위해 시주하면서 세웠다. 영여(令如)의 달에 시작하여 경상(景相)의 가을에 홍교가 완성되었다. 비문의 찬자와 서자는 청안(淸眼)이며 각자는 성징(性澄)이다. 대웅전(大雄殿) 구역과 극락전(極樂殿) 구역을 이어준다. 1747년에 복원할 때 산영교(山映橋)라 하였다. 능파교신창기비에 축조연대와 건립자가 전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석교의 조형미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보수중 훼손된 것을 2005년에 복원하였다.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는 일주문 밖 건봉사 입구에 1704-1707년에 걸쳐 축조. 비는 직육면체의 이수와 비신, 하대석으로 구성되었다.전면은 구름 사이를 헤엄치는 용 두 마리를 돋을새김하였으며, 후면은 구름 속에서 드러나는 용의 얼굴을 표현하였다. 양 측면에는 태극무늬를 조각. 윗면은 아래로 향한 연꽃 봉오리 모양의 복발(覆鉢)과 연봉오리 형태의 보주를 올렸다. 순천 선암사 승선교(仙巖寺昇仙橋)는 보물 400호 :: 시사랑꽃사랑 (tistory.com)

    봉서루 입구 좌우에 서 있는 십바라밀 석주(十波羅蜜石柱), 높이 1m58㎝의 사각형(四角形) 석주 2기다. 좌측석주 전면엔 원월(圓月), 신날, 구름, 좌우쌍정(左右雙晶), 고리두퇴의 형을 취한 것이 있으며 우측석주엔 반월(半月), 가위, 금강저(金剛杵), 전후쌍정(前後雙晶), 성중원월(星中圓月)형이 음각되어 있다. 십바라밀은 수행자가 열반에 이르기 위해 행하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6바라밀에다가 방편(方便)·원(願)·력(力)·지(知)의 4바라밀을 첨가한 것이다. 십바라밀은 이들 열가지 수행방법을 상징화하여 나타낸 것이다. 십바라밀석주는 고성문화원이사 역임한 이백규(李白圭)에 의해 국내 유일임이 밝혀졌다. 

    건봉사 봉서루에 전시되어 있는 옛사진. (상)좌로부터 건봉사 대웅전 처마. 내부 가교, 대웅전 2점. (하) 좌로부터 건봉사 주지스님 외. 건봉사 대중 사진.

    건봉사 봉서루에 전시되어 있는 옛사진. (상) 건봉사 전경 2점. (하) 좌로부터 사명대사기적비. 건봉사 송운대사 동제향완. 건봉사 건륭33년명 범종. 건봉사 낙서암 송운대사 원불 사진.

    건봉사 봉서루에 전시되어 있는 옛사진. (상)유점사 전경 2점, (하)좌로부터 유점사 능인보전, 유점사 산영루 사진.

    건봉사 봉서루에 전시되어 있는 옛사진. (상)좌로부터 장안사 전경, 대웅보전, 대웅보전삼존불. (하)좌로부터 장안사 전경, 사성지전, 범종 사진.

    장안사(長安寺) / 이은상 (1903-1882)

    장하던 금전벽우(金殿碧宇)

    찬 재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건봉사 대웅전. 

    건봉사 명부전. 한국전쟁 때 전사한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영령을 모신 의미있는 전각이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실천한 호국 도량이기도 하다.

    등공대(騰空臺). 건봉사 북쪽 1.5km 지점에 있다는 등공대도 유명하다. 염불만일회의 시작은 신라 경덕왕 17년(758년, 무술년)에 발징화상께서 원각사를 중수하고 염불만일회를 베푸니, 이것이 한국불교 염불만일회의 효시이다. 이 때 발징화상이 정신, 양순 등 스님 31명과 염불을 드렸는데, 뜻을 같이하는 신도 1,820명이 환희심이 일어 자원을 하였다. 그 가운데 120명은 의복을, 1,700명은 음식을 시주하여 주야로 쉬지 않고 기도를 하였는데, 신라 원성왕 3년(787년) 염불만일회에서 선행을 닦던 스님 31명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났으며, 시주를 하던 신도들도 모두 극락왕생을 하였다. 탑에 새겨진 글씨 (三十一人謄高 遺蹟紀念之塔)가 보인다. 육신의 허물은 그대로 땅에 떨어트리고, 맑고 밝은 정신만 등공을 한 것이다. 한국 불교판 휴거(携擧)라고 해야 하나? 그 후 세월이 흘러 1900년인 광무4년에 들어, 스님들의 다비식을 거행한 곳을, 몸을 살랐다고 하여 소신대(燒身臺)라고 하였다. 사진은 고성군청에서 차용함.

    건봉사 이름의 유래가 흥미를 끈다. 건봉사 서쪽으로 접경지역이라 학술조사로 군에 허락을 득한 후에나 갈 수 있다는 접근 불가한 곳에 날개 접은 봉황새 모양의 봉암(鳳巖)이 있다. 건봉사의 서쪽에 있으므로 방위상 서쪽을 뜻하는 건(乾)과 봉(鳳)을 합쳐 건봉사가 되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만해한용운기념관, 사명당의 승병기념관. 사명대사(四溟大師) 유정(惟政·1544~1610년)의 본관은 풍천(豊川), 속명은 임응규(任應圭)이며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이다.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으로 1593년 평양성 탈환에 참가해 공을 세웠으며 1604년 임금의 친서를 갖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과 진신사리를 되찾아 귀국한다. 이 진신사리는 자장(慈藏)율사가 당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아 통도사에 봉안하였던 것을 임란 때 왜병이 훔쳐간 것이었다. 사명대사는 만약을 대비해 석가모니의 사리를 건봉사에 보관했다. 건봉사 대웅전 뒤편에는 장군샘이라 하는 샘물이 있는데 부상 승병들을 이 물로 치료했다고 전한다.

    사랑하는 까닭 / 만해당대선사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독립운동가인 한용운 시비 옆에 흥미롭게도 조영출의 '칡넝쿨' 시와 노래비가 있다. 조선인 징병까지 촉구한 친일파로 기록된 충남 아산 출신인 그는 건봉사로 출가하였다. 1948년 36세에 월북하여 김일성상 계관시인까지 지낸 조명암의 본명이 조영출이다.  

    칡넝쿨 / 조영출(1913-1993)

    하늘도 하도 높아 땅으로만 기는

    강안두 칡넝쿨이

    절간 종소리 숙성히도 자라났다.

    맷뚝이 뱃쨍이 들이 처삿집

    문지방처럼 자조 넘는 칡넝쿨

    넝쿨진 속에 季節

    무릎을 꿇고 있다

    여름의 한나절 꿈이 향그럽다

    줄줄이 벋어간 끝엔

    뽀족 뽀족 연한 순이 돋고

    어린 소녀의 사랑처럼 온 칡

    물으게 물으게 茂盛해 간다.

    袈娑를 수한 젊은 女僧

    혼자 단이는 호젓한 길몫에도

    살금살금 기어가는 칡넝쿨이언만

    해마두 오는 가을을 넘지 못해

    목을 움츠리고 뒷걸음을 치는 植物

    칡넝쿨이 안보히면 먼뎃절엔

    불이 한개 두개 열닌다.

    더 흥미로운 것은 금강산 비로봉 아래 출생한 조영암은 같은 해에 월남하여 종군기자를 지내기도 하고, 전쟁터로 나가는 절은이들을 향해  출정사(出征詞) 시를 썼다는 것이다.  [문인에세이] 건봉사의 슬픈 가을  < 분류안됨 < 기사본문 - 불교신문 (ibulgyo.com)

    출정사(出征詞) / 조영암

    복사꽃 붉은 볼이

    너무도 젊어

    사랑도 하나 없이

    싸움터로 달린다.

    나라와 겨레 위해

    몸이 슬어도

    천년후(千年後)

    백골(白骨)

    웃어 주리니

    흐려오는

    안정(眼精)

    얼비치는 사람아

    흰눈벌 촉루 우에

    입맞춰 달라

    시산(屍山)을 넘고 혈해(血海)를 건너, 정음사, 1951

    금강갑계 발상지(金剛甲契 發祥地), 금강갑계는 구한말 의병으로 활약하다 수행승이 된 이금암이 정토불교의 진면목을 세우고 구국개화운동과 이웃사랑을 실천하고자 마을마다 세운 상두계 세찬계 혼수계 장학계 등을 통합하여 만든 상부상조 모임이다.

    고성 육송정 홍교(六松亭 虹橋). 일명 백운교. 보물 제1337호.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성 건봉사 능파교(보물 1336호)와 함께  1745년(영조 21)의 대홍수로 붕괴되었는데 1704(숙종30)에 축조된 능파교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748년에 편찬된 《간성군읍지(杆城郡邑誌)》에 육송정 홍교가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천의 폭이 12m 정도 되는 곳에 석축을 쌓고, 길이 10.6m의 다리를 놓았다. 홍예의 기초는 자연지형을 활용하였는데, 동쪽은 높이 1.7m 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여 그 위에 홍예돌과 비슷한 크기의 장대석으로 높이 30㎝인 1단의 지대석을 두었다. 서쪽에서는 3단의 지대석을 쌓은 뒤 그 위에 홍예를 올렸는데, 1단에 2개씩의 장대석을 이어서 만들었다. 

    홍(虹)은 무지개를 뜻한다. 옛날 사람들은 무지개를, 뿔이 달린 두 개의 머리로 땅속을 뒤져 큰 입으로 물을 빨아마시는 천신(天神)이라고 생각했다. 보성 벌교 홍교(보물 제304호), 여수 흥국사 홍교(보물 제563호, 고성 건봉사 능파교(高城 乾鳳寺 凌波橋,  보물 제133호), 고성 육송정 홍교 (보물 제1337호), 고흥옥하리홍교(전남도 유형문화재 제73호, 병영성홍교(전남도 유형문화재 제129호), 영광도동리홍교(전남도 문화재자료 제190호)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순천 선암사 승선교(仙巖寺昇仙橋)는 보물 400호 :: 시사랑꽃사랑 (tistory.com)

    카타르 월드컵, 어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우승후보인 아르헨티나를 침몰시켜 이변을 일으키더니 오늘은 일본이 독일을 격파하여 파란을 이어갔다. 내일은 대한민국이 우루과이를 만나 또 한 번의 이변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는데 자신감의 불은 지펴오르는 분위기다. 20년전 서울월드컵 4강 신화의 드라마가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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