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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악산 금산사(金山寺)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2. 11. 8. 11:53

    금산사 개화문(開化門). 금산사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석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성벽은 사라지고 성문만 남아 있다. 견훤성문이라고도 한다.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一柱門)과 갈참나무. 일주문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며,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로부터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세계로 향하게 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현판은 일중(一中)김충현(金忠顯)의 글씨.

    금산사 해탈교(解脫橋), 보물400호인 선암사 승선교(順天 仙岩寺 昇仙橋)가 설핏 지나간다. 순천 선암사 승선교(仙巖寺昇仙橋)는 보물 400호 :: 시사랑꽃사랑 (tistory.com)

    금산사 금강문(金剛門). 1994년 건축. 전각 오른쪽에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와 함께, 그리고 왼쪽에 사자를 탄 문수동자는 밀적금강(密迹金剛)과 함께 한다. 손에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가지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인 금강역사는 인왕이라고도 한다.

    금산사 천왕문(天王門). 1994년 건축. 전각 안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모셔져 있다. 현판 글씨는 고창 선운사 천왕문에 걸린 원교 이광사의 현판 글씨를 모각한 것이다. 비파를 들고 있는 동방(東方) 지국천왕(持國天王), 칼을 들고 있는 남방(南方) 증장천왕(增長天王)이다.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서방(西方) 광목천왕(廣目天王). 보탑과 당(幢)을 들고 있는 북방(北方) 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

    금산사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28호. 높이 3.5m. 깃발을 당, 깃발을 매는 긴 장대를 간이라 한다. 당간을 지탱해주는 두 개의 돌기둥이 지주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당간지주다. 당간지주는 사찰에서 대형 불화를 설치하는 법회나 신성한 영역을 나타내는 깃발을 걸 때 주로 사용한다. 금산사의 보존 문화재 가운데 가장 오래된 8세기 후반 경에 제작되었다.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은 각각 지주의 위·중간·아래의 3곳에 뚫었다. 이처럼 구멍을 3곳에 두는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적 특징으로, 경주 보문사지 당간지주(보물),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보물)에서도 볼 수 있다.

    금산사 성보박물관

    금산사 보제루(普濟樓). 보제루는 법요식(法要式) 때 승려나 불교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불전 앞에 지어진 강당건물이다. 만세루(萬歲樓)·구광루(九光樓)라고도 한다. 이 누각이 있는 절은 대부분 불이문(不二門)이 없으며 불이문의 기능을 함께 하고 있다. 보제루(普濟樓) 현판 강암 송성룡의 글씨.

     

    나무 물고기 / 차창룡

     

    물고기는 죽은 후 나무의 몸을 입어

    영원히 물고기 되고

    나무는 죽은 후 물고기의 몸을 입어

    여의주 입에 물고

    창자를 꺼내고 허공을 넣으니

    물고기는 하늘을 날고

    입에 문 여의주 때문에 나무는

    날마다 두들겨 맞는다

    여의주 뱉으라는 스님의 몽둥이는 꼭

    새벽 위통처럼 찾아와 세상을 파괴한다

    파괴된 세상은 언제나처럼 멀쩡하다

    오늘도 이빨 하나가 부러지고 비늘 하나가

    떨어져나갔지만

    - 차창룡 시집,나무 물고기,문학과지성사, 2002

    금산사 범종각의 목어, 운판, 범종, 법고

    금산사 대장전 보물827호. 가섭상은 노숙한 스님, 아난상은 젊은 스님을 표현하고, 있다. 불상의 뒤에는 부처님의 몸 전체에서 발산되는 밝은 빛을 화려하고 정교한 형태의 광배로 제작하였다. 세 불상과 광배는 모두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보존 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장식이 뛰어난 광배는 불교 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대장전 목조삼존불상과 광배(大藏殿 木造三尊佛像과 光背) 유형문화재253호. 김제 금산사 대장전의 목조 삼존불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부처님의 제자인 가섭 존자와 아난 존자의 입상이 놓여 있다. 발원문이 없어 불상의 정확한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불상의 바닥 판에 적힌 내용으로 보아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사 석등(石燈) 보물828호. 석등은 부처님과 조사 스님께 등불을 공양하기 위해 금당이나 부도전 앞에 세워진다.  김제 금산사 석등은 조각이나 지붕돌에 새겨진 꽃 조각 양식으로 미루어 고려 전기의 양식으로 추정된다. 원래 미륵전 앞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1922년에 대장전을 이전할 때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 등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 받침돌, 중간 기둥, 위 받침돌로 3단을 쌓고, 지붕돌과 머리 장식을 얹어 놓았다.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받침돌부터 머리 부분까지 온전히 남아 있다.

    금산사 노주(露柱) 보물22호. 김제 금산사 노주는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돌로 조성한 좌대 위에 보주 형태의 돌기둥이 놓여 있어 명칭을 노주라고 하였다. 미륵전 앞에서 미륵부처님을 광명으로 공양했던 광명대 역할을 하였으나, 1922년 대장전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할 당시 같이 옮겨 놓았다고 한다. 조각이나 양식을 고려해보면 고려 전기의 유물로 추정된다. 몸체가 없이 바닥돌, 받침돌, 상륜부로 구성되었으며, 아래 받침돌과 상부 받침돌은 연꽃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어서 불상을 올려놓는 좌대로 추정된다. 보주(寶珠)는 탑이나 석등의 맨 꼭대기에 얹은 구슬 모양의 장식이다.

    금산사 명부전(冥府殿)은 지장보살을 모시는 전각으로 시왕(十王),판관(判官),녹사(錄事), 동자를 봉안한다. 지장보살은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는 바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 '지옥이 텅 비지 않는다면 결코 성불을 서두르지 않고 육도의 중생을 다 제도한후 깨달음을 이루리라'고 맹세하였다. 내부 중앙에 지장보살과 좌우는 중생들의 약한 마음을 없애준다는 무독귀왕과 사후세계를 세상에 알려준다는 도명존자가 서 있다. 재판관인 10명의 시왕과 이를 보조하는 판관, 실무관리자인 녹사와 불법을 보호하는 인왕이 서 있다. 명부전은 철종8년(1857)에 대적광전과 마주보는 자리에 건립하였으나 1972년 현위치로 옮겼다.

    복원된 금산사 대적광전(大寂光殿). 본래 대적광전은 보물 제476호였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1987년 해제. 열반종은 무열왕 때 보덕이 경복사를, 계율종은 선덕여왕 때 자장이 통도사를, 법성종은 문무왕 때 원효가 분황사를, 화엄종은 문무왕 때 의상이 부석사를 중심으로, 법상종은 경덕왕 때 진표가 금산사를 근본도량으로 하였다. 금산사의 본전은 미륵전이 아니라 대적광전이며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므로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아미타불,석가모니불,노사나불,약사불 등 6개의 불상이 있다. 화엄경에서 비로자나불은 큰 고요함(大寂)과 지혜의 빛(光)을 지닌 부처라고 설명된다. 현판은 악필법으로 유명한 석전(石田) 황욱(黃旭, 1898~1993)의 글씨이며, 남고산인(南固山人), 칠봉거사(七峰居士), 백련산인(白蓮山人)으로도 불린다. 황욱의 글씨는 구례 화엄사 일주문 현판에도 남아 있다. 중풍으로 오른손에 마비가 와서 좌수서예가로 유명했던 유희강(柳熙綱)과 쌍벽을 이룬다. 국립전주박물관에 석전기념실이 마련되어 있다.

    금산사 나한전(羅漢殿).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阿羅漢=응진전)을 모신 전각. 스행의 가장 높은 단계인 아라한과(果)를 이루어 부처말씀을 계승하는 역할을 한다. 중앙에 현세불인 석가불, 양쪽에 과거불 제화갈라보살, 미래불 미륵보살을 모셨다. 삼존상 양옆으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있다. 불단 양옆에 16나한상과 뒤편에 오백나한상을 모셨다.

    금산사 삼성각

    금산사 방등계단(方等戒壇, 문화재청에는 金剛戒壇)은 통일신라 경덕왕 21년(762)에 진표율사가 최초로 설치하였고, 고려 혜덕 왕사 소현이 고쳐 다시 지었다. 단 중앙에 종 모양의 탑이 있고, 그 안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이곳에서 출가자와 재가사의 수계(受戒)의식이 행해졌으며, 미륵 십선계(十善戒)를 주었다. 방등(方等)은 사방으로 평등하다는 뜻이다. 보물26호. 

    금산사 오층석탑 안내문 보물25호. 고려 경종 4년(979)부터 성종 원년(982)에 걸쳐 세워졌다. 본래는 9층이었으나, 현재는 5층 석탑으로 남아있다. 당시 윗 기단 사리공에 석탑의 정광여래 사리 2과, 석가여래 진신사리 5과, 청동 불상 등을 모셨으나, 이후 정광여래 사리는 분실하여 총 3과가 되었고, 사리를 제외한 유물들은 금산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사리공(舍利孔)은 탑에서 사리 등을 모시는 공간을 이르는 말. 노반(露盤)은 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 스투파는 산스크리트어로 부처나 고승의 사리, 유품 등을 안치하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2018년 음력 4월 24일 보수정비 준공식 때 사리 내함은 금, 중함은 은, 외함은 방자유기로 제작하여 다시 봉안하였다. 탑의 맨 위층 네모난 지붕 모양의 노반이 크고 넓으며, 석탑의 상륜부는 대장전 용마루 한가운데도 설치되었다. 대장전은 본래 경전을 모신 짜이띠야인데, 경전이 소실되자 불상을 안치하였고, 오층석탑은 부처의 진신사리 모셨다.

    금산사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석가불의 진신사리에 직접 예불을 하기위해 지은 전각. 따라서 불화나 불상은 없으며 전각(殿閣)보다 높은 궁(宮)이라 한다. 적멸보궁 뒤편에 방등계단이 있고 중앙에 진신사리를 모신 종모양 탑이 있다. 사리탑에 직접 예불을 드릴수 있도록 벽에 통유리를 끼워 밖에 보이도록 하였다. 나한전이 이곳에 있었으나 방등계단을 정비하면서 옮겼고 적멸보궁을 새로 지었다. 

    금산사 적멸보궁에서 보는 미륵전(金堤 金山寺 彌勒殿) 측면. 전형적인 3층 목탑 양식을 갖추고 있다. 내부는 통층으로 미래불인 미륵부처님, 좌측에 법화림보살, 우측에 대묘상보살의 미륵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다. 대좌는 청동 연화대로써 연꽃 문형이 탈락하여 솥 형태로 변형되었다. 손으로 최대를 만지고, 업장(業障)소멸과 소원성취를 지극정성으로 발원하면 가피(加被)를 내려준다고 전한다.

    외부에는 3층에 미륵전(彌勒殿), 2층에 용화지회(龍華之會), 1층에 대자보전(大慈寶殿)의 현판이 부착되어 있다. 미륵전(彌勒殿)은 낙관이 없어 서자(書者)를 알 수 없으나 안진경 필획의 대자(大字) 해서에서 웅건한 필세를 느끼게 한다. 용화지회(龍華之會)는 근대 명필 성당 김돈희의 글씨이고 그 아래층의 대자보전(大慈寶殿)은 김돈희의 제자이며 정읍 출신의 천재 여성서예가 몽연 김진민의 글씨이다. 

    금산사 석고미륵여래입상石膏彌勒如來立像) 국가등록문화재619호. 대형불상을 조성하던 전통적 방식이 사라진 이후 근대기에 새롭게 등장한 석고를 재료로 제작 역사적 가치가 크다. 새로운 기법과 조형의지를 담아 낸 김복진(金復鎭, 1901~1940)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미륵불 본존의 높이가 11.82m, 협시의 높이가 8.79m에 달하는 웅장한 작품이다. 미래불인 미륵부처님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좌측에는 법화림보살(法華林菩薩), 우측에는 대묘상보살(大妙相菩薩)이 봉안되어 있다. 대좌는 청동 연화대로써 많은 세월이 흘러 연꽃 문형이 탈락하여 솥 형태로 변형되어 있으나 이를 손으로 만지면서 업장소멸과 소원 성취를 지극정성으로 발원하면, 미륵부처님께서 가피(加被)를 내려주신다고 전한다.

    금산사 미륵전(金堤 金山寺 彌勒殿) 국보62호. 미륵전은 진표(眞表)율사가 통신 경덕왕 23년(764)에 거대 미륵불을 만든 후 혜공왕 2년(766)에 연못을 참숯으로 메우고 세웠다.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3개월 동안 감금되었다.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어 인조13년(1635)에 수문대사(守文)가 복원하였고. 일명 용화전·산호전(山呼殿)·장륙전(丈六殿)이라고도 부른다. 탱화나 벽화는 내부에는 남아 있지 않고, 1층 외벽에만 관음보살, 사천왕, 금강신장 등 30개의 벽화가 남아 있으며, 안팎의 포벽 각각 36개소에는 전면에 여래좌상, 남북측면에 관음보살입상, 미륵보살입상, 동측면에 나한상이 그려져 있다. 2층 포벽에는 28개소에 인물화, 3층 포벽에는 18개소에 여래좌상과 존자상 등이 그려져 있다. 

     진표율사(眞表律師)는 성은 정씨(井氏)이고, 12세에 출가하여 금산사(金山寺) 순제(順濟)에게 사미계법(沙彌戒法)을 받았다.금산사에 머물면서 해마다 개단(開壇)하고 교화를 폈고, 금산사를 떠나서는 속리산·강릉·금강산 등에서 중생을 교화하였다.금강산에 들어가 발연사를 창건하고 7년간 점찰법회(占察法會)를 열었으며, 흉년에 굶주린 사람들을 많이 구제하였다.

    금산사 석련대(石蓮臺) 보물23호. 석련대는 불상을 올려놓는 연꽃 모양의 받침대이다. 본래의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시대의 화려한 양식을 띄고 있어서 통일신라와 고려 초기 사이에 제작된 좌대로 추정된다.  마치 여러 개의 돌로 구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상, 중, 하의 3단으로 하대석은 10각형으로 면마다 세밀한 안상을 조각하였다. 중대석은 6각으로 하대석처럼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문양을 새겨놓았다. 상대석에는 연꽃잎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으며, 윗면 중앙의 네모난 구멍 두 곳에 석조불상을 세웠던 연화좌대로 추정된다. 그 규모나 조형미로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안상(眼象)은 코끼리의 정면 모습을 단순화한 문양이다.

    금산사 육각다층석탑(六角 多層石塔) 보물27호. 통일신라대 일반적 도양에서 장식이 화려한 고려대의 양식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세워졌다. 본래 봉천원 터에 있었으나, 정유재란 이후 수문대사가 전각을 복원하면서 현 위치로 이전되었다. 대다수의 탑은 밝은 회색의 화강암으로 조성되지만, 벼루를 만드는 점판암으로 만든 것이 이색적이고 특징이다. 옥개석은 기단부의 연화대 위에 겹겹이 쌓았고, 밑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있다. 상하에는 탑신을 끼우는 홈이 새겨져 있는 데, 하나의 부재로 탑신을 올리지 않고, 각 면을 한 개 한 개의 판석으로 맞춰 끼웠던 흔적이 보인다.각 층마다 체감 비례가 적절하고, 몸돌과 지붕돌 각 면의 조각이 섬세하며, 뛰어난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봉천원(奉天院)에 있던 것을 현위치로 옮겨왔다.

    위성류(渭城柳). Tamarix chinensis. 제비꽃목 위성류과의 소교목. 중국 원산. 높이 5m. 가지가 많이 갈라져서 밑으로 처진다. 잎은 어긋나고 바늘같이 가늘며 길이 3mm로 작다. 끝이 뾰족하고 가지를 둘러싸며 잿빛을 띤 녹색이다. 꽃은 연분홍으로 1년에 두 번 피고 열매는 10월에 익는다. 이명 에셀나무, 적경류(赤徑柳), 수사류(垂絲柳). 檉柳花(성류화)는 중풍을 다스리고 淸熱(청열), 痲疹(마진)을 透發(투발)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유사종 향성류(Tamarix juniperina Bunge)는 꽃차례가 겨드랑이나기하며 수술대 기부가 비대해져 밀선반의 선과 같은 위치이다.

    금산사 원통전(圓通殿), 관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법당은 관음전이라고 부르지만 모든 곳에 두루 임하고 관여하는 원융통(圓融通)을 강조해 원통전이라고 하거나 대자대비한 존재라는 의미에서 대비전이라고도 부른다. 현핀은 정진용(鄭鎭龍)의 글씨다. 원통전 십일면천수관음상, 11개의 얼굴과 40-42개의 손을 가졌다. 관음보살상은 다양하여 연화관음, 버들가지를 든 양류관음, 해수관음, 백의관음, 용두관음, 천수관음이 있다. 보물 1891호 서울 흥천사 금동천수관음보살좌상 등 4개의 보물이 있다.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 / 신라 경덕왕 때 희명(希明)이 부른 향가(鄕歌)

    膝肹古 召旀 二 尸 掌音 毛乎 攴 内良 / 千手觀音 叱 前良 中 / 祈 以攴 白 屋尸 置 内 乎多 / 千隱 手 叱 / 千隱 目 肹 / 一 等 下叱 放 /  一 等 肹 除 惡攴 / 二 于 萬隱 吾羅 / 一 等沙 隱 賜 以 古 只内乎 叱等邪 / 阿 邪也 / 吾良 遺知 攴 / 賜 尸等焉 放 冬矣 / 用屋尸 慈悲 也 根 古

    무릎을 꿇고 천수관음 부르며 두 손바닥 치는 아낙이라.

    천수관음 앞이라.

    기도하나니, 밝음을 베풀어 달라는 아낙이다.

    천 개의 손이 아니나이다.

    천 개의 눈 다갖지 마시고

    하나는 아래 것(5세 아이)에게 내려 주시라

    가지고 계시는 눈 중 하나는 제외해 주시라.

    두 개도 많은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나이라.

    하나 쯤은 아이에게 주옵시이고.

    물가여야.

    나이라, 그대가 남길 것을 알려줄 사람이.

    눈을 베풀어 내리는 자비를 뿌리시고.

    갈참나무

    전각배치도

    자연보호헌장탑

    1.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일은 국가나 공공 단체를 비롯한 모든 국민의 의무이다.

    2.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문화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자연 자원은 인류를 위하여 보호되어야 한다.

    3. 자연보호는 가정, 학교, 사회의 각 분야에서 교육을 통하여 체질화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4.개발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신중히 추진되어야 하며, 자연의 보전이 우선되어야 한다. 

    5. 온갖 오물과 폐기물과 약물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한 자연의 오염과 파괴는 방지되어야 한다. 

    6. 오손되고 파괴된 자연은 즉시 복원하여야 한다. 

    7. 국민 각자가 생활 주변부터 깨끗이 하고 전 국토를 푸르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

     

     

    金山寺 밤뜨락에서 / 김지하

     

     

    어미산 아래는

    금산사

    제비산 앞에는 금평못,

    우주의 음부 곁에 우뚝 섰구나

    미륵이 섰다

    한밤

    뜨락에 나서

    달빛 속의 산

    저 꼭대기에 깊이 박힌

    쇠를 뽑으라 뽑으라

    기도할 때

    내 기도할 때

    댓잎은 우수수 바람에 지고

    어디서 여자 울음소리

    내내 들려라

    여기가

    진표와 진훤의 삼한 미륵땅

    여기가

    정여립의 대동계 미륵땅

    여기가

    갑오동학과

    강증산의 큰 율려

    큰 황극의 후천 미륵땅

    또한

    高首婦의 땅 母嶽이니

    신발을 벗고

    조심조심 마루 올라라

    금평물이

    원평으로 콸콸콸 쏟아져라

    미륵은 한순간,

    이윽고

    여자의 때가 되었으니

    내 이제

    다 마쳤구나

    달은 검은 숲속에 잦아들고

    내 넋은 이내 깊은 잠에 든다

    아아

    눈부신 황금이여

    빛나는 금산이여

    댓잎은 우수수 바람에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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