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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가산 내소사(楞伽山 來蘇寺)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2. 11. 7. 12:52

    채석강 일몰

    능가산 내소사 일주문, 능가산(楞伽山)은 부처가 대혜보살을 상대로 가르침을 설파했던 곳이고, 그 가르침을 모은 능가경(楞伽經)은 대승불교의 중요한 경전의 하나가 되었다.

    내소사의 자랑 600m 전나무 숲길은 오대산 월정사, 광릉 국립수목원과 함께 3대 전나무 숲의 하나다. 전나무는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고나 건물인 수다라장, 양산 통도사, 강진 무위사 등 사찰전각의 목재기둥으로 쓰이는 우리나라 대표건축재다. 내소사 전나무숲도 400여년전 사찰중건 당시 우수한 목재를 사용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내소사 지장암 입구 단풍. 지장암은 통일신라 초기부터 있던 절로 신라 고승 진표율사가 창건하였으며 이곳에서 3년을 기도하여 지장보살의 현신수기와 간자 12매를 얻었다 그 후 각해선사의 중건과 우암거사의 삼건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지는 않고 겨우 흔적만 남은 은적암 옛터에 1941년 해안선사가 다시 복원하여 지장암이라고 현판을 달았다.

    내소사 피안교부터  천왕문 가는길은 단풍터널이다

    .

    비파를 들고 있는 동방(東方) 지국천왕(持國天王), 칼을 들고 있는 남방(南方) 증장천왕(增長天王).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서방(西方) 광목천왕(廣目天王). 보탑과 당(幢)을 들고 있는 북방(北方) 다문천왕(多聞天王)

    내소사 사천왕문. 사천왕상을 봉안하기 위한 건물로서 사찰 경내 출입문의 역할도 겸하고 있으며, 17평의 목조 한와 맞배지붕으로 1986년에 우암 혜산선사가 신축하였다. 편액은 일중 김충현의 글씨이고 주련의 글귀는 해안선사의 오도송(悟道頌)이다.

    일주문 앞에 할아버지 당산느티나무와

    천왕문 지나 할머니 당산느티나무 보호수, 고유번호 9-15-2, 수령 1천년, 수고 20m. 둘레 7.5m. 지정년도 1982년. 내소사 할아버지 할머니 당산나무는 긴 시간을 지나온 성스러운 느티나무로 마을지킴이 역할을 해왔다. 매년 1월14일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위해 주민들과 스님들이 제를 올린다.

    단청 없는 단청 내소사 봉래루(蓬萊樓). 조선 태종12년(1414)에 건립한 전면 5칸, 측면 3칸, 2층 누각의 맞배지붕의 건축물. 자연석을 초석으로 사용하였는데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아 2층 누각을 받치는 기둥의 높낮이를 조절하여 수평을 취하게 하였다. 이들 초석의 배치는 중앙의 칸으로 갈수록 넒어진다. 내소사 봉래루 현판은 1821년에 기록된 “내소사 만세루 상량문”, 1823년에 걸어 놓은 “내소사 만세루 중건기”현판과 특히 1926년 최남선의 심춘순례의 “변산의 사대사”에 유래한다. 정지상의 시와 그 주위로 정지상의 원운을 차운한 시가 여러 수 있으며 중창기, 송덕기.시주질 등 36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변산소래사 / 정지상

    古徑寂寞榮松根 (고경적막영송근) 옛길은 적막해라 솔뿌리 얽혀

    天近斗牛聊可捫 (천근두우료가문) 낮은 하늘 북두 견우 손 뻗으면 닿겠네

    浮雲流水客到寺 (부운류수객도사) 뜬 구름 흐르는 물, 절 찾은 나그네

    紅葉蒼苔僧閉門 (홍엽창태승폐문) 붉은 잎 푸른 이끼 스님은 문을 닫네

    秋風微凉吹落日 (추풍미량취락일) 가을 바람 싸늘히 지는 해 불어가자

    山月漸白啼淸猿 (산월점백제청원) 산속 달은 희어지고 잔나비 맑게 울음 우네

    奇哉尨眉一老衲 (기재방미일노납) 기이하구나, 흰 눈썹의 늙은 중이여

    長年不夢人間喧 (장년부몽인간훤) 긴 세월 시끄러운 세상 꿈 꾼 일 없네

     

     

    고사(古寺) 1 / 조지훈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西域萬里)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내소사 범종각 13평의 팔작 한와지붕으로 1995년 당시 주지였던 철산스님이 대범종, 대법고, 목어. 운판등 4물(四物)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용일까 속을 말끔히 비우고 여의주를 물었는데 단청 없는 단청을 하였다.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來蘇寺 設禪堂과 寮舍). 설선당은 인조 18년(1640)에 청영대사가 지은 것으로 앞면 6칸·옆면 3칸의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오른쪽 1칸은 마루이고, 앞면에서 남쪽 2칸은 난방을 위한 부엌으로 큰 아궁이 설치.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유형문화재 제125호

    내소사 동종(扶安 來蘇寺 銅鍾) 보물277호. 고려 고종9년(1222)에 만든 종으로 높이 103cm, 입지름 67cm. 종의 아랫부분과 윗부분에는 덩굴무늬 띠를 둘렀고, 어깨부분에는 꽃무늬 장식을 하였다. 종의 어깨 밑에는 사각형의 유곽이 4개 있고, 그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유두가 있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는 연꽃으로 장식했고, 종의 몸통에는 구름 위에 삼존상이 새겨 있다.

    이 동종은 2024년1월 국보로 승격되었다. 농부가 밭메다 발견한 보물 고려 동종, 국보 됐다 (daum.net)

     

    내소사 동종 / 장승규

     

    동종은 매달아야 종이다

    그래야 소리가 난다. 독경 소리가

    스님보다 낭랑하다

    널리 사바에까지 무명을 깨운다

    풍경도 경을 읽기는 한다. 동자승처럼

    탁설을 때도 없이 흔들어

    산문에 나한송은 늘 푸르게 깨어 있다

    풍경도 노스님도 내소사 동종도

    나도 모른다 너도 모른다

    속에선 맴돌면서

    바깥은 한 소리로 깨운다

    동종은

    죽비를 맞아야 경을 읽는다

    오늘도 졸다가 죽비 맞고

    반성하듯 반야심경 읽고 있다

    봉래루에 이어 단청 없는 단청의 내소사 대웅전, 내소사는 놉래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세운 소래사였다고 한다. 임란 때 소정방이 다녀갔다 해서 이름이 그렇다고 하는 말들은 전형적인 가짜뉴스인 모양이다. 내소사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셨다. 인조11년(1633)에 청민대사가 건립하였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우리 옛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불상 뒤쪽 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상이 그려져 있으며, 단청은 관세음보살이 오색찬란한 새의 모습을 하고 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새는 대호(大虎)스님인 바 내생(來生)에나 소생(蘇生)하라고 소래사가 되었다는 미당 서정주의 시 구절이 참 어울린다. 대웅전은 쇠못을 쓰지 않고 목재로만 지었는데 우물 정(井)자 천장과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보머리와 문살조각이 뛰어나다. 보물291호

    삼층석탑. 신라 탑의 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탑으로 높이는 3.4m이다. 맨 아래의 받침대는 하나의 돌을 이용한 것이다. 몸체도 층마다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으며, 각 면마다 기둥을 새겼다. 몸체와 지붕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크기와 높이가 급격하게 줄었으며, 지붕돌의 경사도 심한 편으로 날렵한 느낌을 주는 탑이다. 유형문화재124호.

    내소사 대웅보전 목조아미타삼존불상(木造阿彌陀三尊佛像), 전북유형문화재 제255호.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내외부의 단청은 모두 금단청 형식으로 용 학, 봉황, 주악천인, 매화도 등이 그려진 계풍별화와 나한도가 그려진 판벽화, 불상이 표현된 포벽화 등 다양한 소재의 문양과 회화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내부단청은 古式으로 18세기 단청의 특징, 외부단청은 박락이 심해 파악이 어렵다. 가운데 본존불은 활짝 핀 연꽃 위에 앉아 있고, 좌·우 양쪽에 협시불이 서 있다. 종 정상부에는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과 큰 용머리를 가진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가 있다. 조선 철종 원년(1850)에 내소사로 옮겼다. 한국 종의 전통을 잘 계승하고 표현이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고려 후기 걸작으로 손꼽힌다 본존불은 석가보니불이고 협시불은 본존불을 모시는 부처이다.

    (좌)내소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 제1268호.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사진.

    (우상)내소사 대웅보전 삼존불을 모신 불단 후불벽면 백의관음보살좌상 국내최대 크기. 백의관음보살좌상의 눈을 보고 걸으면 눈이 따라오는데. 그 눈을 바라보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내소사 홈페이지 사진.

    (우하)내소사 대웅보전의 꽃문살, 우리나라 장식무늬의 최고 수준. 여섯 잎 보상화를 조각하며 기묘하게 맞추어 나간 연속문양 솜씨는 신기하다. 법당 안에서 문을 보면 꽃무늬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단정한 마름모꼴 살 그림자만 정갈하게 비쳐든다. 이 꽃살은 나뭇결이 그대로 도톰하게 살이 오른 것 같아 더욱 아름답다. 내소사 홈페이지 사진.

     

    내소사 꽃창살 / 박성우

     

    등푸른 햇살이 튀는 전나무 숲길 지나

    내소사 안뜰에 닿는다

    세 살배기나 되었을 법한 사내아이가

    대웅보전 디딤돌에 팔을 괴고 절을 하고 있다

    일배 이배 삼배 한 번 더,

    사진기를 들고 있던 아빠의 요구에

    사내아이는 몇 번이고 절을 올린다

    저 어린것이 무엇을 안다고,

    대웅보전의 꽃창살무늬 문이 환히 웃는다

    사방연속으로 새겨진

    꽃창살무늬의 나뭇결을 손끝으로 더듬다보니

    옛 목공의 부르튼 손등이 만져질 듯하다

    나무에서 빼낸 옹이들이

    고스란히 손바닥으로 들어앉았을 옛 목공의 손

    거친 숨소리조차 끌 끝으로 깎아냈을 것이다

    결을 살리려면 다른 결을 파내어야 하듯

    노모와 어린것들과 아내를 파내다가 이런!

    · · · ·

    옹이 박힌 손에 붉게 피우곤 했을 것이다

     

    - 박성우, 거미(창작과비평사, 2002)

     

     

    내소사 조사당 6평의 목조한와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 내소사에 주석하셨던 조사 스님들을 봉안한 전각.

    내소사 지장전. 21평의 목조한와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 지장보살과 명부10왕을 봉안한 전각. 2010년 건립하였다. 

    내소사 삼성각 1941년 능파스님이 건립하였다. 독성(獨聖), 칠성(七星), 산신(山神)을 봉안하기 위하여 6평의 목조 맞배지붕으로 86년과 93년 2차에 걸쳐 우암혜산선사가 보수, 해체 복원하였다.

    내소사 진화사(眞華舍)정면 3칸, 측면2칸의 17평 목조 팔작 한와건물로서 그 사료는 찾을 수 없으나 1988년 옛터에 우암 혜산선사가 건립하여 한주실 (閑主室)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촬영으로 지체되는 시간에 담소를 나누는 고마운 일행들

    형제

    아쉬움에 뒤돌아보는 전나무 숲길

    유난히 돋보였던 이나무를 대부분 모르고 궁금해 한다. 수목원에서 비들거리던 모습을 보다가 싱싱한 모습을 보니 생명력이 넘쳐나며 반갑고 기쁘다. 이나무 열매 Idesia polycarpa :: 시사랑꽃사랑 (tistory.com)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 하며 가을햇살에 익어가는 와송을 본다

    지나가던 중년부부가 감탄을 하면서 궁금해 하기에 피라칸다 열매라고 대꾸를 해주었다.

     

     

    내소사 대웅전 단청 / 서정주

     

    내소사 대웅보전 단청은 사람의 힘으로도 새의 힘으로도 호랑이의 힘으로도 칠하다가 칠하다가 아무래도 힘이 모자라 다 못 칠하고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다.

    내벽 서쪽의 맨 위쯤 앉아 참선하고 있는 선사, 선사 옆 아무것도 칠하지 못하고 너무나 휑하니 비어둔 미완성의 공백을 가 보아라.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웅보전을 지어놓고 마지막으로 단청사(丹靑師)를 찾고 있을 때, 어떤 해어스럼제 성명도 모르는 한 나그네가 서(西)로부터 와서 이 단청을 맡아 겉을 다 칠하고 보전(寶殿)안으로 들어갔는데, 문고리를 안으로 단단히 걸어 잠그며 말했었다.

    "내가 다 칠해 끝내고 나올 때까지는 누구도 절대로 들여다보지 마라."

    그런데 일에 폐는 속()에서나 절간에서나 언제나 방정맞은 사람이 끼치는 것이라, 어느 방정맞은 중 하나가 그만 못 참아 어느 때 슬그머니 다가가서 뚫어진 창구멍 사이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나그네는 안 보이고 이쁜 새 한 마리가 천정(天井)을 파닥거리고 날아다니면서 부리에 문 붓으로 제몸에서 나는 물감을 묻혀 곱게 곱게 단청해 나가고 있었는데, 들여다보는 사람 기척에

    "아앙!"

    소리치며 떨여져 내려 마루 바닥에 납작 사지를 뻗고 늘어지는 걸 보니, 그건 커어다란 한 마리 불호랑이었다.

    "대호(大虎)스님! 대호스님! 어서 일어나시겨라우!"

    중들은 이곳 사투리로 그 호랑이를 동문(同門) 대우를 해서 불러댔지만 영 그만이어서, 할 수 없이 그럼 내생(來生)에나 소생(蘇生)하라고 그 절 이름을 내소사(來蘇寺)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 단청하다가 미처 다 못한 그 빈 공백을 향해 벌써 여러 백년의 아침과 저녁마다 절하고 또 절하고 내려오고만 있는 것이다.

     

     

    겨울 내소사 / 김문주

     

    세상에 수런거리는 것들은

    이곳에 와서 소리를 낮추는구나, 변산

    변방으로 밀려가다 잠적하는 지도들이

    일몰의 광경 앞에 정처 없는 때

    눈 내린 오전의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아름답다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도 풍경이 되고 어느새

    동행이 되는 길의 지혜

    작은 꺾임들로 인해 그윽해지고 틀어 앉아

    더 깊어진 일은

    안과 밖을 나누지 않고도 길이 된다

    나무들은 때때로 가지 들어 눈 뭉치를 털어 놓는다

    숲의 한쪽 끝에 가지런히 모여 앉은 장광 같은 부도탑들

    부드러운 육체들이 햇빛의 소란함을 안치고 있다.

    봉래루 설선당 해우소 산사의 마당에는

    천년의 할아버지 당산과 요사까지

    저마다의 높낮이로 중심을 나누어 가진 집채들

    부푸는 고요

    몸으로 스며드는 시간의 숨들

    숨길이 되고 집채 사이를 오가다,

    바람의 꽃밭, 열림과 닫힘의 자리에

    바래고 문드러진 수척한 얼굴들

    슬픔도 연민도 모두 비워낸 소슬무늬꽃문

    난만한 열망들이 마른꽃으로 넘는 저, 장엄한 경계

     

    대웅보전 앞마당에 발자국들 질척거리고

    진창을 매만지는 부지런한 햇빛의 손들이여

    내소사 환한 고요 속에 오래도록 읽는다

    서해 바람의 이 메마른 문장을

     

    -2007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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