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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주 고달사지(驪州 高達寺址)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2. 11. 3. 10:43

    여주 고달사지(驪州 高達寺址) 전경. 사적 제382호. 고달사지는 혜목산우두산 기슭에 있는 절터로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이곳은 신라 말기 대표적인 선승(선종의 승려)이었던 원감국사 현욱(玄昱), 진경대사 심희(審希)를 비롯하여 고려 시대의 원종대사 찬유(璨幽) 등 당시 불교계를 선도했던 유력한 승려들이 머무르면서 중심적인 사찰이 되었다. 

    특히 고려 광종 때에는 왕실과 중앙 정부의 후원을 받아 3대 선원선종의 절중에 하나로 위상이 높았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발굴 조사 결과 고달사는 조선 시대에 서서히 쇠락하다가 임진왜란 직후에 폐하여진 것으로 확인되었다.현재 이곳에는 국보 제4호 고달사지 승탑을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원종대사탑과 탑비, 석조대좌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석조 유물들이 남아 있다.

    고달사에는 남아있는 많은 석조 문화재들은 '고달'이라는 석공(石工)이 만들었다고 전하는데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 데에 혼을 바쳤으며 절을 다 이루고 나서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고, 훗날 깨달아 큰스님이 되니 사람들이 이곳을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 고달사에 세워졌던 쌍사자석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원종대사 탑비의 비신(비문을 새긴 비석의 몸체)은 여주박물관에서 소장 및 전시하고 있다. 이들은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우수한 기법의 석조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고달사에서 멀지 않은 혜목산 기슭에는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의 저자 백운화상 경한(景閑)이 머물렀던 취암사(鷲巖寺)가 있었다고 한다.

    여주 고달사지 석조. 유형문화재 247호. 석조(石槽)란 돌의 외부를 장방형으로 다듬고, 내부를 완만한 곡선으로 파서 물을 담을 수 있도록 만든 거대한 돌그릇이다. 물을 저장하는 역할을 했으므로 승려들이 거주했던 사찰에서는 필수적인 생활용품이었다. 고달사지 석조는 보원사지 석조와 비슷한 시기인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강암 통돌을 장방형으로 다듬고 내부를 완만한 곡선으로 파내어 만든 것으로 중앙부 바닥 한쪽에 마련된 원형 구멍은 물을 뺄 때 사용했던 배수공으로 추정된다.  표면을 매끄럽게 잘 다듬었으며, 각 모서리의 모를 죽이면서 세로줄의 홈을 내서 장식했는데, 석조에 장식을 가한 보기 드문 예에 속한다. 무당거미 한 마리가 석조를 지키고 있다.

    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高達寺址 石造臺座). 보물8호. 불상(佛像)은 없어진 채 대좌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다. 받침돌은 위·중간·아래의 3단으로, 각기 다른 돌을 다듬어 구성하였는데, 윗면은 불상이 놓여져 있던 곳으로 잘 다듬어져 있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을 서로 대칭되게 돌려 새겼다. 이 대좌가 사각형으로 거대한 규모이면서도 유연한 느낌을 주는 것은 율동적이면서 팽창감이 느껴지는 연꽃잎의 묘사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꽃잎의 표현 수법은 여주 고달사지 승탑(국보) 아래받침돌과 매우 비슷하며, 가운데 꽃잎을 중심으로 좌우로 퍼져나가는 모양으로 배열하는 방법은 고려시대의 양식상 공통된 특징이다. 사각형 대좌의 걸작으로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달사(高達寺)쌍사자석등, 보물 제282호. 국립중앙박물관 석탑공원과 용산가족공원 :: 시사랑꽃사랑 (tistory.com)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元宗大師塔碑) 보물6호. 원종대사 찬유(璨幽)는 신라 경문왕 9년(869)에 태어나, 고려 광종 9년(958)에 90세로 입적하였다. 광종은 신하를 보내어 그의 시호를 원종이라 하고, 탑이름을 혜진이라 내리었다. 비는 일찍이 무너져 비신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으며, 이곳 절터에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이수 전액(篆額)에 '慧目山高達禅院國師元宗大師之碑(혜목산고달선원국사원종대사지비)'라고 각자가 적혀 있다.

    비문에는 원종대사의 가문·출생·행적 그리고 고승으로서의 학덕 및 교화·입적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한다.받침돌의 거북머리는 눈을 부릅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꼬리가 길게 치켜올라가 매우 험상궂은 모습이다. 다리는 마치 땅을 밀치고 나가려는 듯 격동적이고, 발톱의 사실적 표현은 땅을 꼭 누르고 있는 듯하다. 목은 길지 않아 머리가 등에 바짝 붙어 있는 듯하다.

    머릿돌은 모습이 직사각형에 가깝고, 입체감을 강조한 구름과 용무늬에서는 생동감이 넘친다. 밑면에는 연꽃을 두르고 1단의 층급을 두었다.이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은 탑비에 기록된 비문에 의해 975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북의 머리가 험상궂은 용의 머리에 가깝고, 목이 짧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점, 비머리의 표현이 격동적이며, 특히 소용돌이치는 구름무늬의 번잡한 장식 등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진전되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주 고달사지 일석비 귀부

    여주 고달사지 전경

    여주 고달사지승탑(高達寺址 僧塔) 국보4호. 고달사터에 남아 있는 높이 4.3m의 고려시대의 승탑이다. 고달사는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된 절로, 고려 광종 이후에는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사찰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기도 하였으나, 조선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이 탑은 바닥의 형태가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잘 남아있다.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상·중·하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의 각 면에는 내부에 꽃 형태의 무늬가 있는 안상(眼象)이 2구씩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16엽의 연판이 돌려졌다. 중대는 이 승탑에서 가장 조각수법이 뛰어난 부재로써 거의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용과 같은 얼굴의 거북은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사실감이 느껴진다. 가운데 거북을 중심으로 총 네 마리의 용이 보주를 쥐고 있으며, 나머지 공간은 구름무늬를 가득 채웠다. 상대석에는 큼지막한 8엽의 앙련이 조각되어 탑몸돌을 받치고 있다. 탑몸돌에는 문비와 자물쇠, 사천왕상(四天王像), 광창(光窓)이 표현되어 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꽤 두꺼운 편으로 아랫면에 비천과 구름을 표현하였다. 지붕돌 윗면 각 모서리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지면 그 끝마다 큼직한 귀꽃이 달려 있는데, 일부는 파손된 상태이다. 상륜부에는 둥글넓적한 복발 위로 보개(寶蓋)와 보주(寶珠)가 올려져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승탑의 기본형인 팔각원당형 구조를 잘 따르면서도 조각의 세부수법에서는 고려 특유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전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고달사지 승탑과 원종대사탑을 이어주는 돌계단 길의 꽈배기소나무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高達寺址 元宗大師塔). 보물7호. 이 탑은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과 지붕돌을 올린 형태로, 전체적으로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기단부에서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기단부는 네모난 바닥돌에 연꽃잎을 돌려 새겼다. 아래받침돌은 네모난 형태이며, 가운데받침돌 윗부분부터 8각의 평면이 보인다. 즉 윗부분에 1줄로 8각의 띠를 두르고, 밑은 아래·위로 피어오르는 구름무늬를 조각하였다. 그 사이에는 거북이가 몸을 앞으로 두고, 머리는 오른쪽을 향했으며 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4마리의 용이 구름 속에서 날고 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다.탑신은 4면에는 문(門)모양이, 다른 4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이 새겨져 있다. 지붕은 처마가 수평이나 귀퉁이 부분에서 위로 향하였고 꽃장식이 달려 있다. 꼭대기에는 지붕돌을 축소해 놓은 듯 한 머리장식이 올려져 있다.이 탑은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면서 아래받침돌을 네모반듯하게 짰음은 시대적인 특색이라 하겠다. 가운데 받침돌의 조각은 가장 두드러지게 고려시대의 수법을 나타내었고, 각 부의 조화도 우아하고 화려하다. 기단부가 약간 비대한 듯 하지만 좋은 비례를 보여준다.이 탑의 주인공인 원종대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9년(869)에 태어나 고려 광종 9년(958)에 입적한 고승이다. 건립연대는 원종대사탑비의 비문에 의하여 고려 경종 2년(977)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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