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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공원 & 출판기념회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0. 12. 8. 21:13
효문화진흥원 앞에는 정철의 훈민가(訓民歌) 시비가 버티고 있다. 16수 연시조 중 2수에 해당한다.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던 봉건시대의 삼강오륜(三綱五倫)을 현대적 해석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부위자강(父爲子綱)과 부자유친(父子有親)의 테두리가 어느만큼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가. ktk84378837.tistory.com/4449
숙박시설인 효문화마을은 3층에 단체용 11평짜리(6만8천원)와 2층에 가족용 7평짜리(4만2천원) 객실이 있다. 한 번 이용한 경험이 있는데 소박하고 정겹고 깨끗하고 전망이 있어 가성비가 좋다. 강당이며 세미나실도 갖추고 있다. 식사 한끼는 4천원이다. 행정구역이 중구인이면 5천원 할인이 있다. www.djjunggu.go.kr/html/hyo/jangsu/jangsu_020101.html
건물 아래쪽에는 효(孝) 문자도가 조성되어 있다. 잉어와 대나무가 놓여 있다. 진나라 왕상의 계모는 겨울에 잉어를 구헤오라고 억지를 부렸다. 왕상은 두말 않고 꽁꽁 얼어붙은 강에 옷을 벗은 맨몸으로 얼음을 녹였다. 왕상의 효성에 감동한 물속의 잉어가 튀어올라 오므로 잡아다 바쳤다. 오나라 맹종은 엄마가 좋아하는 죽순을 캐러 대나무밭으로 나갔다. 꽁꽁 언 겨울이라 죽순이 있을 리 없어 슬피 울므로 죽순이 돋아나 캐다 바쳤다. 맹종읍죽(孟宗泣竹) 성어가 여기서 비롯되었다. 조선 세종때 발간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효와 오늘날의 효에 대해서도 비교 생각해 봄직하다. ktk84378837.tistory.com/897
유등천에 살얼음이 살짝 지폈다.
출렁거리는 만성교(萬姓橋)를 지나면
한국족보박물관.
족보의 유래는 중국 한나라 시대 왕실의 제왕년표(帝王年表) 기술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는 고려 중기 의종 때 김관의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이 효시로 기록돼 있다. 왕실을 제외할 경우 최초로 간행된 민간족보는 1423년(세종 5년) 나온 문화(文化)류씨의 영락보인데 기록으로만 전한다. 현존 최고족보는 조선 명종 17년에 제작된 문화 류씨의 가정보(嘉靖譜)다. 이 보다 앞서 제작된 안동(安東) 권씨의 성화보(成化譜)는 서문만 남아 있다. 중국에서는 대문장가 소동파(蘇東坡)가 만든 소보(蘇譜)를 민간족보의 효시로 삼는다.
한국의 성씨는 중국문화를 수용하면서 형성됐다. 삼국시대의 대표적 성씨를 보면 고구려는 고(高) 해(解) 을(乙) 송(松) 주(周) 마(馬) 창(倉) 동(董) 연(淵) 을지(乙支), 백제는 사(沙) 연(燕) 협(協) 진(眞) 국(國) 목(木), 신라는 박(朴) 석(昔) 김(金) 이(李) 최(崔) 정(鄭) 손(孫) 설(薛) 배(裵) 등이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우리나라 성씨의 본격적인 보급시기를 고려 초로 잡고 있다. 이 때부터 지배계층은 중국식의 성과 이름을 사용했는데 특히 태조 왕건은 개국공신 등에게 사성(賜姓)을 내렸다. 성씨 체계는 조선시대 더욱 다양해졌으며 중국식의 한자성은 왕실 귀족 관료 양민 천민의 순으로 보급됐다. 조선 전기만 해도 성씨를 갖지 못한 평민과 노비는 전인구의 90%나 됐다.
무성(無姓) 계층으로 남아 있던 공사노비, 화척, 향ㆍ소ㆍ부곡민과 역민 중 일부는 개별적인 신분해방과 신분상승을 통해 성씨를 획득했다. 하지만 천민계층에게 성씨가 본격 보급된 시기는 조선후기였다. 1894년 갑오경장은 종래의 신분ㆍ계급 질서를 타파, 성씨의 대중화를 촉진했다. 이어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1910년 민적법의 시행과 더불어 누구나 성과 본을 갖게 됐다. 지배계층의 인명이 중국식 한자로 바뀐 시기는 신라 경덕왕 때이다. 신라의 김춘추 김유신 등은 당시 지배계급의 이름이다. 궁예 삼능산 복사귀 등 순 우리말 이름도 신라 말까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삼능산과 복사귀는 태조 왕건을 추대한 공으로 신숭겸(申崇謙)과 복지겸(卜智謙)이라는 성과 이름을 하사 받는다. 신숭겸은 평산 신씨, 복지겸은 면천 복씨의 시조다. cafe.daum.net/gunhwan21/RDyP/81?q=%ED%9A%8C%EC%83%81%EC%82%AC
국내 족보 출판의 80%를 담당하고 있는 회상사(回想社)의 1954년 창업자는 박홍구(朴泓九)씨이며 첫째 병호(炳浩)씨가 대표로 있고, 둘째 병석(炳錫)씨는 현직 국회의장이다. 대전 동구 선화로에 위치한 회상사 www.hsangsa.com/default/00/01.php
유등천 건너 절벽엔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서식지가 보이고 ktk84378837.tistory.com/8307
오리배선착장에는 진짜 오리가 바글바글, 이곳엔 수달도 서식하고 있다.
뿌리공원유래비
우리나라 성씨, 뿌리공원에 등록된 성씨는 244개인데, 2013년 인구센서스 기준이라는데 333개 성씨가 나온다. <나무위키>에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전수부문에 따르면 5,582개의 성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지난 통계에 비해 급증하였는데, 이는 한자가 없는 성씨 4,075개까지 통계에 넣어 귀화성까지 추가된 것 때문이다.
뿌리공원의 자산정(慈山亭)
연안김씨(延安金氏) 조형. 조선 영조때 기행가사인 동명일기(東溟日記) 한편으로 심금을 울렸던 작자 의유당 연안김씨가 생각나.
의성김씨 조형, 건립기념식에 참석한 이후 3년만에 찾아 ktk84378837.tistory.com/8375
경순왕릉 ktk84378837.tistory.com/3104
강릉김씨 조형. 마르고 닳도록 강의하던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작자가 강릉김씨였어? 최초의 한문소설집이었거든.단편 다섯작품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이 들어있어. 기회 닿는대로 경주에 금오산을 그리도 가고자 했는데 아직 기회가. 김시습 ktk84378837.tistory.com/4451 김시습 부도 ktk84378837.tistory.com/3207
곡부공씨 조형. 공자의 후손이란 얘긴데 고려 충정왕때 공소가 창원군으로 중시조가 되었다가 조선 정조때 시조의 본관을 달리 할 수 없다하여 창원을 곡부로 고친 이후 곡부공씨가 되었다. 곡부 공묘를 답사한 사진 몇 장이 ktk84378837.tistory.com/6717 에 실려 있다.
청송심씨 조형. 조선왕조 역사드라마 유행하던 시절 왕비에 심씨가 많았던 기억. 세종비 소헌왕후, 명종비 인순왕후, 경종비 단의왕후,
전국문중협의회
뿌리공원에서 본 효문화마을 전경
유등천에 얼비친 수변무대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놀과 놀다. 목원대학교.
옛숨결을 찾아서 출판기념회, 12월5일, 백제문화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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