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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경순왕 !
    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08. 5. 30. 13:16



    신라 56대 마지막 왕인 경순왕릉(敬順王陵)은 오랫동안 잊혀져오다가 조선 영조 때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신라의 왕도인 경주 지역을 벗어나 타지역에 있는 유일한 신라왕릉임을 알게 되었다. 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산18-2번지. 망국 후에 조성된 때문인지 왕릉으로서는 매우 소박하다. 패자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외롭다.

     



     

    포천서 군복무하는 아들덕에 알고 알게된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 . .사적 제244

    신라경순왕지묘(新羅敬順王之陵)라 새겨진 묘표에는 한국동란시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927년 후백제의 침공으로 경애왕(景哀王)이 죽은 뒤 견훤에 의해 경순왕이 즉위했다. 국가의 기능이 마비되었으며 국토는 날로 줄어들고 견훤이 죽자 민심은 고려로 기울었다. 이에 군신회의(君臣會議)를 소집하여 고려에 귀부하기로 결정하고, 935년 개경으로 올라가 김봉휴(金封休)로 하여금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이때 따라간 군신과 백성이 30리 길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뒤 왕건의 딸 낙랑공주(樂浪公主)를 아내로 맞고 태자보다 위인 정승(正承)에 봉해졌으며신라를 대신한 새로운 지명인 경주를 식읍으로 받아 사심관(事審官)에 임명되었다. 개경에 거주하면서 90세를 넘기면서 승하하여 경주로 모시려 하였으나 고려왕실에서 개경지역의 인구감소를 빌미로 왕릉은 개경 백리 밖을 벗어날 수 없다 불허하여 멈추게 된 곳이 연천 고랑포라고 전한다. 그리하여 신라의 왕릉이면서 유일하게 경주 밖 외지에 위치하게 되었다. 경순왕릉 - 나무위키 (namu.wiki) 연천문화원 경순왕릉 https://youtu.be/NKqsqsGQIwE

    경순왕 어진(敬天廟 敬順王 御眞)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74호로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산 107. 현재 경천묘(敬天廟)에 모셔져 있으며. www.gn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960

    어진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아래 사이트에서 학습할 수 있다.

     

    신라 경순왕 영정

    0신라 경순왕영정의 제작과 그 의의(정병모).pdf경순왕 어진 초본현재 국립경주박물관 '고려시대 경주' 특별전에서 전시중에 있다.(사) 신라 숭혜전릉 보존회, '경순왕 영정 4점' 국립경주박물관

    cafe.daum.net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의 네째 아들인 김은열(金殷說) 영단비,

    경순왕에게는 3명의 부인과 12명의 자녀가 있다. 1비인 소원왕후(昭元王后) 박씨 소생에 1남 김일,  2남 김굉(범공),  3남 김명종이 있다. 2비인 왕씨(낙랑공주) 소생에 4남 김은열,  5남 김석,  6남 김건,  7남 김선, 8남 김추가 있다. 3비인 순흥안씨 소생에 9남 김덕지가 있다. 딸은 셋이다. 

    경순왕의 후손

    첫째아들 金鎰(김일)은 마의태자를 가리키는데 입산 전에 낳은 金較(김교)라는 아들이 있어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김씨는 부령(부안)김씨, 부여김씨, 통천김씨이다. 차남 金(김굉)은 중이 되어 梵空(범공)이라는 법명을 썼으며 중이 되기 전에 낳은 아들이 金雲發(김운발)이고, 차남의 이름은 金雨發(김우발)이었다. 김굉이나 그 후손을 시조로 하는 교하, 울산, 나주, 안로, 해주김씨가 있다. 3남 金鳴鍾(김명종)의 永芬公(영분공)이고 경주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경주김씨의 시조는 3남 김명종과 4남 김은열 두 명인데, 김명종은 소원왕후 박씨 소생이며 김은열은 왕건의 장녀인 낙랑공주 소생이었기 때문이다. 강화, 경주, 계림, 낙안김씨 등이다, 4남 金殷說(김은열)은 大安君에 봉해졌으며 첫째아들 김태화는 김은열의 경주김씨를 이어받으나, 둘째아들 김숙승은 안동김씨(구안동)의 시조가 되고, 셋째아들 김염은 김해김씨(후김)의 시조가 되었다. 김염의 첫째아들 김품언은 수원김씨의 시조가 되고, 둘째아들 김심언은 영광김씨의 시조가 된다. 안동김씨에서 대구, 사천김씨가 나오고, 수원김씨에서 용담, 용성, 인동, 한남김씨가 나온다. 5남 金錫(김석)은 金重錫이라고도 불리며 의성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의성김씨의 시조가 되고 개성씨, 고령, 광주씨, 설성씨, 의성씨, 적성씨가 나온다. 6남 金鍵(김건)은 강릉군에 봉해져 강릉김씨의 시조가 되고 강릉(후), 강서, 청주, 홍주김씨가 있다. 7남 金繕(김선)은 언양군에 봉해져 언양김씨의 시조가 되고 담양, 언양, 예천김씨가 나온다. 8남 金錘(김추)은 삼척군(三陟君)에 봉해져 삼척김씨의 시조조가 되었고 진주(晋州), 영월(寧越), 경산(慶山 ), 남원(南原), 길안(吉安), 옹진(甕津), 진위(振威), 춘양김씨(春陽金氏) 등 8개 분파(分派)가 있다. 9남 金德摯(김덕지)는 순흥안씨 소생으로 학성(울산의 고명)부원군에 봉해져 울산김씨의 시조가 되었는데 분파되지 않았다.  참조 https://youtu.be/mGoDtePsqxc

     

     

    경순 왕릉 - 제산 김대식

     

     

    경주도 아닌 임진강 고랑포

    휴전선 민통선, 비무장지대

    왕릉으로 보기엔

    너무도 초라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 누워 있다.

     

    생전에 그리든 신라의 도읍지를

    죽어서나마 가려 했건만

    그러나 나라를 넘긴 왕에겐

    그 무슨 비운인지 허락되지 않았다.

    망국의 임금은 임진강도 못 넘고

    가든 길 멈추어 초라하게 누워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

    야망을 버렸든가 욕심을 버렸든가

    천 년 사직을 보전하지 못한 무능한 왕이었나?

    무고한 백성들의 희생을 막아낸 현명한 군주였나?

     

    천 년을 이어온 용상의 자리

    세상의 이치란 흥망성쇠가 있는 법

    화랑의 정신은 아직 숨 쉬고 있지만

     

    나라의 운명도 천 년 사직의 운명도

    이제는 꺼져가는 바람 앞에 등불

    이제는 수명 다한 늙어버린 용

     

    백제도 고려도 한 백성 한 민족

    백성을 위해, 한 민족을 위해

    피 흘리지 않는 삼국의 재통일을 위해

    다시는 형제끼리 칼 겨누는 일 없어야겠기에

    왕좌를 내어놓은 지고도 이기는 현명한 그 결단

    남북이 갈라진 휴전선 지역

    비석마저 총탄으로 얼룩진 왕의 무덤

     

    경순왕은 무덤 속에서 말한다.

    돌팔매는 나 하나면 족하리

    이제는 남도 북도 모두 하나가 되라

    그만 총질하고 통일로 함께하라.

    경순왕릉.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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