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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화순 운주사(雲柱寺)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7. 11. 12. 21:45
9년 만에 다시 찾은 화순 운주사(雲柱寺)구층석탑(九層石塔). 신라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근거해 비보사찰로 세웠다는 설이 있다. 광주대학 교수인 친구 이은봉 시인이 안내한 운주사의 일주문을 지나 첫번째 마주하는 거칠지만 미끈한 석탑이다. 보물 제796호.
윗층 기단의 가운데돌은 4장의 널돌로 짜였으며, 네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긴 후 다시 면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굵게 새겨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 또한 기단의 맨윗돌은 탑신의 1층 지붕돌로 대신하고 있는 점이 특이한데, 운주사의 모든 탑이 이러하여 고려시대로 오면서 나타난 특징으로 보인다. 탑신의 각 몸돌에는 면마다 2중으로 마름모꼴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두었는데, 이러한 수법은 운주사의 석탑에서만 볼 수 있다. 각 지붕돌은 밑면이 약간 치켜올려져 있고, 여러 겹의 빗살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꼭대기에는 원기둥모양으로 다듬은 돌과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이 올려져 머리장식을 이루고 있다.
탑의 면이 사각형인 것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탑들과 같으나, 지붕돌 밑면에 받침을 생략한 모습이나 각 면에 새긴 장식이 일반형에서 벗어난 모습들은 보기 드문 예이다. 이는 지방적인 색채가 뚜렷했던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기단 없이 돌위에 세운 특징을 가진 고려 후기의 운주사 9층석탑은 경천사지 구층석탑을 연상시킨다.
석불군과 층상 응회암 위의 오층석탑, 오다 가다 밟히는 돌을 얹어놓은 듯한 일명 거지탑. 운주사 천불천탑 전설은 황석영의 '장길산', 송기숙의 '녹두장군' 소재가 되면서 많이 알려졌다. <장길산> 마지막 장에 전라도 섬에 숨어있던 후백제 유민들이 10세기 초, 어느 날 전라도 화순으로 모여들어 하룻밤 만에 999개의 불상과 탑을 만들었다. 원래는 첫닭이 울기 전까지 천불천탑을 세우려고 했으나 밤일이 힘에 겨웠던 한 사내가 거짓으로 새벽닭이 울었다고 소리친 까닭에 999개의 미륵상과 석탑을 세우고 중단되었다. <녹두장군>에서도 같은 설화로 소개되고 있다. 시인 임동확은 <몸체가 달아난 佛頭에 -운주사 가는 길 2> 에서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한 열망들이 드디어 찾아낸 스스로들의 유배지 …. 임시 망명정부”라고 꼬집었다.
발굴 조사 때 ‘雲住寺’가 새겨진 암막새 기와가 출토되었다. 천불천탑 설화가 간직하고 있는 민중의 염원을 중시한 이들은 ‘運舟寺’를 선호한다. 雲住寺를 직역하면 구름이 머무는 절이고 의역하면 꿈(雲)이 주저앉은(住) 절이다. 運舟寺를 직역하면 배(舟)를 부리는(運) 절이고 의역하면 꿈(舟)을 항해하는(運) 절이다. 구름과 배는 꿈을 은유한다. 공통점은 꿈을 담은 절이다. 雲住寺는 완료형이고, 運舟寺는 진행형이다.
왼쪽 첫번째가 광배를 갖춘 광배석불좌상이다. 마애여래좌상과 함께 광배가 있다. 유형문화재 제274호.
석조불감 앞 7층 석탑. 전남유형문화재 제278호.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 (和順 雲住寺 石造佛龕)의 앞면과 뒷면. 등을 맞댄 두 불상이므로 쌍대불(雙對佛)이라고 한다. 감실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양쪽 벽을 판돌로 막아두고 앞뒤를 통하게 하였다. 그 위는 목조 건축의 모양을 본떠 옆에서 보아 여덟팔(八)자모양인 팔작지붕처럼 다듬은 돌을 얹어놓았다. 감실 안에는 2구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등이 서로 맞붙은 모습으로 흔히 볼 수 없는 예이다. 불상을 새긴 수법은 그리 정교하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들어 나타난 지방적인 특징이 잘 묻어나온다. 보물 제797호.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보기 드문 원형다층석탑(圓形 多層石塔). 호떡탑이라는 별명이 있다. 기단(基壇)은 2단의 둥근 바닥돌에 높직한 10각의 돌을 짜올리고 그 위로 16장의 연꽃잎을 장식한 돌을 올려 마무리하였다. 탑신(塔身)은 몸돌과 지붕돌이 모두 원형이고, 층마다 몸돌 측면에 2줄의 선이 돌려져 있다. 기단의 맨윗돌이 윗면이 편평하고 옆면이 둥근데 비해, 탑신의 지붕돌은 정반대로 아래가 편평하고 윗면이 둥글다. 이는 상하의 조화와 안정감을 꾀하려 한 의도로 추측된다.현재 남아 있는 것은 6층 뿐이나 원래는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6층인데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전현충원의 섬잣나무를 연상시킨다. 보물 제798호.
운주사 서점인 원융당.
남매탑 아래 석불군.
와불에서 떠어낸 돌로 만든 시위불(侍衛佛). 머슴부처라고도 부른다.
동학사 남매탑을 연상시키는 거북바위 5층석탑과 교차문7층석탑(交叉紋七層石塔). 그래서 일명 남매탑이다. 전남유형문화재 제256호.
미래불인 와형석조여래불. 작은 불상인 입상의 수인(손모양)이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하였으나 어색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언제쯤 벌떡 일어나실까. 입석이 못되어 와불이 되었으나 민간은 미륵신앙으로 승화시켜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로운 세상이될 것이라 희망하였다.
*시무외인(施無畏印) 부처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베푸는 인상(印相)으로 팔을 들고 다섯 손가락을 펴서 손바닥 밖으로 향해 물건을 주는 시늉을 한다.
*여원인(與願印) 모든 중생의 소원을 이루어 줌을 보이는 결인(結印)으로 오른손의 다섯손가락을 펴서 밖으로 향하여 드리우는 형상이다.
북두칠성 자리를 그대로 옮긴 칠성바위와 칠층석탑. 운주사 창건의 비밀을 간직한 7개의 둥근 바위는 각기 두께 45cm 지름 250cm 내외의 크기가 다른 바위는 그 배치가 북두칠성 모양이다. 박종철 교수는 별자리와 동일한 천문도형 가람배치이며 크기가 다른 것은 별의 밝기와 비례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와불은 북극성에 해당하며 다른 다른 탑들은 각기 다른 별들의 위치와 동일하였다. 와불은 애초에 입상으로 만들었는데 아래부분은 갈라져 있어 떼어낼 수 있으나 머리부분은 통으로 되어 있어 떼어낼 수 없음으로 일으켜 세우질 못한 실패작임도 밝혀냈다. 각각 길이 12.7미터와 10.3미터로 국내 와불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와불 사진의 오른쪽 옆구리 떼어낸 부분은 머슴부처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는 칠성신앙이 있었으며 고대 천문학은 불교 경전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불교가 이를 흡수하였을 것이라 김일권교수가 해석하였다. 이는 많은 칠성탱화에서도 증명이 된다는 것이다.
칠성바위를 보고 되짚어 내려오면 보이는 대웅전. 입구로부터는 긴 계곡을 따라 한참만에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초에 창건하였고 12세기와 15세기에 중건하였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설은 어디까니자 설이지만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아배 한복판에 해당하는 호남 땅이 영남 땅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을 염려하여 1000개의 불상과 1000개의 탑을 하루낮 하루밤 사이에 도력으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또한 나종우교수는 중국 복건성 등에 흩어져 있던 백제 유민들이 나주를 통해 올라오다가 물길이 합쳐지는 이곳에 세웠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하였다. 17세기에 폐사되었다가 1980년대 이 지역 민간인들에 의해 복구되기 시작했다.
범종각.
대웅전과 다층석탑. 다층석탑은 전남유형문화재 제280호이다.
대웅전과 본존불.
지장전을 올라가다 뒤돌아보면 대웅전앞 다층석탑과 그 뒤로 범종각이 보인다.
지장전. 지장보살을 모셨다. 어둠의 세계인 명부 세계(冥府世界)의 왕인 염라대왕을 모신 곳이라 하여 명부전이라고도 한다.
또한 염라대왕 한 분만 아니라 지옥에 있어서 죄의 경중(輕重)을 정하는 열 분의 왕(十王)을 모신 곳이라 하여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운주사에서만 볼 수 있는 발형(鉢形)다층석탑. 항아리탑이라고도 부른다. 주판알을 닮기도 했다. 전남유형문화재 제282호.
석불군. 현재 돌부처 70구와 석탑 18기만이 남아 있으나, 조선 초기까지는 천 여 구의 불상과 탑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산과 들에 흩어져 있는 70여 구의 돌부처들은, 수 십 ㎝에서 10m 이상의 거대한 돌부처까지 그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평면적이면서 토속적인 생김새에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신체 구조는 고려시대 지방적인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새로 지은 미륵전. 미륵불 혹은 도솔천에서 설법하고 있는 미륵보살을 모신 곳이 미륵전이다.
미륵불에 의해 정화되고 펼쳐지는 새로운 불국토 용화세계를 상징한다고 하여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하고, 자씨전(慈氏殿)·대자보전(大慈寶殿)이라도 한다. 금산사미륵전(金山寺彌勒殿:국보 제62호) 이 가장 유명하다.
원반형석탑. 명당탑. 석탑 또한 그 모양이나 무늬의 표현방식이 매우 독특하여, 3층·5층·7층 등 층수도 다양하다. 둥근 공모양의 원형탑이나 호떡 모양의 돌을 올려놓은 듯한 원판형탑 등 특이한 모양의 탑도 있다. 또한 탑의 표면에 ‘X’, ‘◇’, ‘川’과 같은 기하학 무늬들이 새겨 있어 특이하다.
마애여래좌상. 전남문화재자료 제275호.
신비하고 아름다운 절 운주사. 공사바위에서 내려다 보는 운주사 전경. 울긋불긋 꽃대궐이다.
운주사 일주문은 털북숭이 흰둥이가 지키고 있다.
운주사 http://ktk84378837.tistory.com/2474 http://ktk84378837.tistory.com/8380
왼쪽 1번이 이은봉 시인 2번이 박영진 수필가 3번이 오승조 사진작가이며 6번이 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이다.
운주사 초입에 천불천탑 사진문화원 개관기념전이 열리고 있는데 고맙게도 광주대 교수인 오승조 관장이 손수 내린 커피를 마시며 그의 당산나무 사진전을 관람하는 호사를 누렸다.
운주사 운(雲住寺 韻) / 송수권
눈감아도 들리네 千佛山 골짜기 쩌렁쩌렁
아직도 천 년 세월 살아서 골풀무 치는 소리
쇠창날은 돌 속으로 돌 속으로 스미어들어
뜨거운 혼 形象을 지으면서 한 송이 꽃으로 피고
불꽃을 문 돌가루 비산비야에 자욱하도록 떠서
망치와 정, 쇠좆메를 들고 쫓겨온 사람들
아 通姓도 없이 通姓도 없이
李서방이나 金서방 한물댁이나 여산댁들
한밤내 모닥불 지피고 내게 이르는 말
오금 펴 앉고 못하고 서도 못하는 세월
明火賊떼나 되라 하네 활빈당이나 되라 하네
저 들머리 나자빠진 시무룩한 돌미륵들
너는 떨거지떼 말고 구름에 가 살지도 말라 하네
이 세상 끝을 지켜선 산꼭대기 와불을 세우라 하네
눈 감아도 보이네 피울음 산울음 쩌렁쩌렁
벌거벗은 채 뜨거운 불 가슴에 품고
아직도 살아서 퍼드러지는 골풀무 치는 소리
나루 불빛 노를 젓지도 말고 구름 뒤에 숨은 배처럼 살라하네
운주사에서 / 정호승
꽃피는 아침에는 절을 하여라
피는 꽃을 보고 절을 하여라
걸어가던 모든 길을 멈추고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서서
부처님께 절을 하듯 절을 하여라
꽃지는 저녁에도 절을 하여라
지는 꽃을 보고 절을 하여라
돌아가던 모든 길을 멈추고
헤어졌던 사람과 나란히 서서
와불님께 절을 하듯 절을 하여라
정호승 시선집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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