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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운사 도솔암 마애여래불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3. 10. 4. 21:49

    오늘 단체촬영 목표는  꽃무릇이지만 일행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도솔암까지 다녀오겠습니다. 시간상으로는 넉넉하지만 촬영 나와서 여유로운 시간이란 없는 법이다. 도솔천을 끼고 천왕문이 가까와오자 요란한 음악과 악기 소리가 궁금증을 유발하여 경내로 들어서니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못보던 기둥부터 담았다. 선운사 대웅보전(보물290호) 기둥을 실제크기로 전북대 한옥건축과가 제작하여. 기증한 모양인데 부위병 명칭과 해설이 안내되어 있어 불교건축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청솔귀뚜라미 수컷도 밤새 공양에 지쳤는지 카케라를 디밀어도 기지개 켤 생각을 않는다..

    행사 명칭은 수륙무차평등재의(水陸無遮平等齋儀), 줄여서 수륙재라 하는데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영혼과 아귀(餓鬼)를 위로하기 위하여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의식을 말한다. 전북 무형문화재 18호 영산재 시연회가 21년 11월 18일 오후 1시 마이산 탑사 특별무대에서 개최되고 있다. 영산재는 어산, 작법, 지화 등 불교전통 문화를 담은 문화유산이다. 중국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명에 의하여 지공(誌公)이 수륙의문(水陸儀文)을 만들어 금산사(金山寺)에서 행한 것이 시초이다. 

    법보신문(21.11.6-7) 에서 가져온 선운사 수륙무차평등대재 모습.

    대웅보전(보물 제290호) 부처님께 인사는 드리고 가야지.,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여 좌우 협시불로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을 모셨다.

    영산전靈山殿, 불상이 봉안된 영산전은 원래 1713년 2층 건물 각황전으로 지어졌으나 100여 년이 지나 건물이 기울어짐에 따라 1821년 중수하여 정면5칸, 측면4칸의 단층 건물로 새로 지은 장육전(丈六殿) 건물이다. 장육전은 부처의 모습이 키가 1장6척(4.8m)에 색은 금빛이라는 장육금신(丈六金身)의 유래에 따라 만든 장육상을 모신 전각이다. 전북유형문화재 28호인 영산전목조삼존불상(靈山殿木造三尊佛像), 향나무를 조각하여 도금한 조선후기 작. 석가여래좌상을 주불로 좌우에는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입상이 위치하며 그 주위에 16나한상을 두었다. 석가여래좌상은 몸통에 비해 머리가 크고, 얼굴은 사각형에 가깝게 조각되었으며 오른손은 무릎에서 손등이 위를 향하고 가운뎃손가락은 무릎에 닿아 있다.

    명부전-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여 염라대왕과 시왕(十王)을 모신 법당

    팔상전

    조사전

    산신당

    천연기념물 184호인 동백숲 아래에도 불이 났다. 이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자, 도솔암으로 가보자!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 천기 354호 장사송은 이 지역 옛 지명인 장사현(長沙縣)에서 유래한다.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앞에 있다하여 진흥송이라고도 부른다. 높이 23m. 둘레 3m. 수령 6백년. 지상 40cm 쯤에 가지가 난 흔적이 있어 반송(盤松)으로 분류된다. 지상 2.2m에서 크게 갈라지고 그 위에서 여덟갈래로 갈라져 팔도를 상징하는 듯하다. 비석 뒷면에 장사녀(長沙女) 이야기는 백제가요 선운산곡(禪雲山曲)에 나오는인물이다. 그녀는 산운산에 올라가 정역(征役-조세(組稅)와 부역(賦役)에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노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소개되어 있으며 가사는 전하지 않는다.

    도솔암 보제루(普濟樓 전후면)

    도솔암 극락보전,, 도솔(兜率)이란 이름을 통해 미륵신앙 사찰임을 알 수 있다. 

    도솔암 나한전, 문화재자료110호. 나한전은 아라한을 모신 전각이다. 아라한은 공양 받을 자격인 응공(應供)과진리로 사람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인 응진(應眞)을 갖춘 사람이므로 나한전을 응진전이라 한다. 나한전 내부에는 흙으로 빚은 석가불과 16나한상이 안치되어 있다. 종교적 색채가 강한 보살상과 달리 나한상은 자유분방하게 표현된다.

    도솔암 나한전 애기단품, 가을 단풍이 그려진다.

    도솔천 내원궁, 문화재자료125호 통일신라때 창건하였으나 조선 중종6년(1511) 때부터 중건하였다.암반 위에 지은 팔작지붕집이다. 미륵보살이 산다는 도솔천이지만 지장보살을 모셨다. 미륵이 이미 마애상으로 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내원궁 밖에서는 미륵이, 안에서는 지장이 중생을 위하고 있는 형국이다. 

    도솔천 내원궁 금동지장보살좌상, 보물280호,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 지장보살은 명부전에 모시는 여느 지장과 달리 두건을 쓰고 있다. 양쪽 귀에는 활짝 핀 꽃무늬귀걸이를 착용했다. 갸름한 얼굴에 초승달 같은 누썹, 가늘고 긴 눈, 오뚝한 코, 오밀한 입, 섬세한 이목구비가 우아한 느낌을 준다. 화려한 목걸이 등 장신구는 고려의 귀족적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오른손은 설법하는 모양인데 아미타 구품인의 하나다. 왼손의 법륜은중생구제를 뜻한다.

    도솔암 산신각

    이 마애불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가파른 석경을 아픈 다리로 서둘렀다.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磨崖佛坐像), 보물1200호, 신체높이 15.7m. 무릎너비 8.5m. 연꽃무늬 받침돌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새겼다거나, 신라말, 고려초, 심지어는 조선시대에 조성했다는 설도 있다. 머리 위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는데 닫집의 흔적이다. 가슴 아래 새겨진 복장(금,은,칠보와 같은 보화나 서책을 넣음)에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으여, 비기가 알려지는 날 조선이 망한다고 것이다. 18세기 전라감사 이서구가 꺼내보려다 벼락이 떨어져 도로 넣었다고 한다. 1892년 동학접주 손화중이 현세를 구원해줄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선운산 마애불상 / 김백기

     

    동불암의 절벽에는/ 국내최대 마애불상

    마애불의 복장에는 / 비결서가 들어있어

     전라감사 감실열고 / 비결책을 보자마자

    천둥벼락 치는통에 / 다시넣고 닫았다네

     

    보국안민 척왜척양 / 동학혁명 농민군들

    복장속의 비결서를 / 개혁하려 꺼내갔네

     

    민중들의 마음속에 / 비결서가 있는데도

    세상사람 부질없이 / 비결서를 찾고있네

     

    선운산 진흥굴, 이 시대 최고의 미녀 이영애가 주인공을 맡았던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로 유명해졌다던가? 약8천만년전 중생대 백악기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졌다. 화산재로 만들어진 유문암질 응회암으로 되어 있다. 내부는 화산재가 식으며 생긴 틈(절리)와 이 틈이 풍화작용으로 생긴 낙석을 관찰할 수 있다. 갈라진 틈들이 층상으로 벗겨지는 현상을 박리현상이라 한다. 

    선운산 연리목(連理木 conjoined trees), 나무와 나무가 자라면서 맞닿아 한 나무가 된 소나무 연리목이다. 연리목은 상서로운 나무, 부부의 금슬, 남녀의 사랑, 자녀의 효성, 친구의 우정 등을 상징한다. 서로 손을 잡고 정성을 들여 소원을 빌면 사랑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희귀한 나무다.

    서둘러 다녀왔는데도 약속시간에 30분이나 늦었다. 마애불을 접견하겠다고 가파른 돌계단을 쉼없이 빠른 속도로 등하산을 하는 바람에 무릎연골이 망가져 내내 고생하고 있다. 선운사에는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79호),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 대웅전(보물 제290호), 참당암 대웅전(보물 제803호), 도솔암 마애불(보물 제1200호), 소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1752호) ,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 보물 제2031호) 등의 보물 7점과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84호),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 등 천연기념물 3점이 있으며, 추사가 쓴 백파율사비(전북 유형문화재 제122호)를 비롯한 19점의 유형문화재가 있다. 아직도 대면하지 못한 국가보물이 그득하다.

     

     

    선운사 상사화 / 김정웅

     

     

    도승의 도포자락으로

    선운절을 세우고

    상사화는 그 옆에 혼백으로 피어라

     

    백제 위덕왕 24(577)년에

    검단 선사는 절 짓기를 시작했고

    신라 진흥왕은 선운산에 잠시 들러

    꽃 같은 딸과 도솔왕비를 진흥굴에 머물게 했다

     

    도솔왕비와 딸은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동경의 넋이 되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지도 못하고 죽어 갔다

     

    아 사랑에 불타는 상사화

    잎이 지면 꽃이 피고

    꽃이 지면 잎이 피니

    이승과 저승길이 몇 만 리라고 만나지 못하는가

     

    하늘도 숲도 쪽빛 고운 초가을

    그 한이 상사화로 피어

    선운사 절간 앞에 영혼으로 남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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