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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용선(般若龍船)을 상징하는 여수 흥국사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3. 7. 29. 23:10
영취산 흥국사(靈鷲山 興國寺), 화엄사의 말사(末寺)이며 전남문화재자료. 고려시대 1195년(명종 25)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창건하였다. 고려시대 불교 개혁 운동인 정혜 결사 (淨慧結社)의 중심 사찰이자 우리나라 호국 불교의 성지다. 조선시대인 1560년(명종 15)에 법수(法修)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의승군의 주둔지와 승병 훈련소로서 호남 지방 의병·승병 항쟁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법당과 요사가 소실되었다. 1624년(인조 2)에 계특대사가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팔상전·불조전·응진당 등 10여 동의 목조건물이 있고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보물), 여수 흥국사 홍교(보물), 괘불(掛佛), 경전(經典), 경서판각본(經書板刻本) 등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흥국사에는 옛날부터 ‘나라가 흥(興)하면 절도 흥하고 이 절이 흥하면 나라도 흥할 것이다’ 라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흥국사 승탑군興國寺 僧塔群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세워졌다. 경서당탑(敬西堂塔), 응운당탑(應雲堂塔), 우룡당탑(雨龍堂塔)이 왼편에 있고, 보조국사탑(普照國師塔), 호봉당탑(虎峰堂塔), 금계당탑(錦溪堂塔), 능하당대사탑(凌霞堂大師塔), 취해당탑(鷲海堂塔), 무명탑(無名塔), 중흥당법수대사탑(中興堂法修大師塔), 낭월당탑(朗月堂塔). 응암탑(應庵塔)이 오른쪽으로 늘어서 있다,
흥국사중수사적비(靈鷲山興國寺重修事蹟碑) 1703년, 전남 유형문화재312호
영취교 건너 흥국사 천왕문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는 서방(西方) 광목천왕(廣目天王). 보탑과 당(幢)을 들고 있는 북방(北方) 다문천왕(多聞天王), 비파를 들고 있는 동방(東方) 지국천왕(持國天王), 칼을 들고 있는 남방(南方) 증장천왕(增長天王), 여수 흥국사 소조사천왕상(麗水 興國寺 塑造四天王像)은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과 함께 202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보물 2225호.
흥국사 봉황루(강당)와 누각 밑의 원목의자에 포대화상이 조각되어 있다.
흥국사 법왕루
범종각 뒤편 현액엔 사물루(四物樓)인데 법고, 운판, 목어(木魚), 대종(大鐘)이 보관되어 있다. 피리, 징, 북, 목탁의 사물을 가르킬 때도 있다. 사물놀이의 사물은 꽹과리, 징, 장구, 북이다.
흥국사 대웅전, 보물396호, 석가삼존불을 모시는 곳으로 인조2년(1624)에 계특대사가 흥국사를 다시 세울때 지어졌다. 숙종16년(1690)에 내부를 확장하고 2017년에 수리하였다. 용 연꽃, 봉황 등이 그렺진 단청이 건물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으며, 석가불을 중심으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불단에 모셔져 있다. 삼존상 뒤로 석가의 설법 장면을 묘사한 탱화 가 그려져 있다. 뒷벽에는 관음보살을 그린 벽화(보물1862호)가 있다. 건물 외부 기단에는 거북과 꽃게를 새겼고, 중앙 계단 양소맷돌과 마당 괘불대에는 용을 새겼다.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 건물이며 전체적으로 웅장하지만 조각, 단청 등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대웅전 앞 용을 새긴 괘불대, 행사시 노사나불 괘불탱(興國寺 盧舍那佛 掛佛幀, 보물1131호)이 이곳에 걸렸을 것이다.
,대웅전 앞 석등.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북 모양 대좌를 갖춘 특이한 형태이다. 거북대좌 위에 기둥에 해당되는 직사각형 간주석(竿柱石)을 세우고, 그 위에 불을 밝히는 부분인 네모난 화사석(火舍石)을 올렸다. 화사석 네 면에 뚫린 화창(火窓)의 기둥에는 공양 인물상이 새겨져 있다. 옥개석(屋蓋石)은 기와골·용마루·서까래 등을 갖춘 목조기와집의 지붕 모양이 그대로 재현된 형태이다. 상륜부에는 연꽃 모양 장식인 앙화(仰花)와 구슬 모양 장식인 보주(寶珠)가 얹혀 있다. 간주석에 명문(銘文)이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글씨를 판독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전체 높이는 200㎝이다. 거북대좌는 길이 120㎝·높이 120㎝, 화사석은 가로·세로 각 46㎝, 화창은 가로 26.5㎝·세로 25㎝, 옥개석 폭은 75㎝ 흥국사 대웅전은 지혜의 배인 반야용선(般若龍船)을 상징화하였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대웅전 마당은 바다에 해당되어 석등의 대좌에 연꽃 대신 거북이 조각되었다. 또 배에 해당되는 대웅전의 축대 모서리와 면석에는 게·자라·용 등이 조각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현존하는 한국석등에서는 이와 같은 유례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흥국사 대웅전 벽면과 처마
흥국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1550호 석가불(현세불)을 중심으로, 제화갈라보살(과거불), 미륵보살(미래불)로 이루어진 삼존불이다. 인조6년()에서 22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석가불은 오른손이 땅을 향하고 왼손이 무릎 위에 올려진 자세로 부처가 모든 악마를 항복시키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한다. 석가불이 전체적으로 풍만하고 머리가 큰 반면 두 보살은 상대적으로 늘씬하고 훤칠하게 만들어졌다.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손에는 연꽃 가지를 들고 있으며, 석가불에 비해 옷주름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전라지역 목조불상은 대부분 17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으나 이 삼존불은 17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중요한 가치가 있다.
목조불 유명하기로는 해인사 대저광전과 법보전의 그것인바 여수 흥국사의 목조불을 보니 생각나는 단하소불(丹霞燒佛). 법보신문에서 따온 대목을 소개한다.
단하천연(丹霞天然, 736~824) 선사가 낙경 용문의 향산에 있는 혜림사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몹시 추웠다. 그래서 법당에 안치했던 목나한상을 장작으로 삼아 군불을 지폈다. 그 모습을 본 원주는 어이가 없어서 꾸짖었다. “어떻게 목상을 불태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단하는 천연덕스럽게 주장자로 재를 뒤적이면서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사리가 서 말 여덟 되나 나왔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지 확인해보려고 지금 목상을 불태워서 사리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목상에 무슨 사리가 있겠는가.” “이 목상에서 사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다른 두 목상마저 마저 태워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출처 : 불교언론 법보신문(http://www.beopbo.com)대웅전 후불탱 보물578호- 삼존상 뒤편에 모셔진 불화로 숙종19년(1693)에 의천과 천신 두 승려화가가 왕의 만수무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며 그린 것이다. 후불탱은 불상 뒤에 봉안하는 불화이며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를 따라 흥국사 뒷산을 영취산이라 하였다. 그림 한 가운데가 석가불이고 양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있다. 양옆으로 여섯명의 보살이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사천왕상이 있다. 석가불 옆과 뒤에는 10대 제자와 불자들이 조화를 이루며 서 있다. 채색은 주로 붉은색과 녹청색을 사용하였으며, 꽃무늬와 옷주름선에 부분적으로 금색을 사용하여 격을 높였다. 그림 아래에는 제작시기, 제작자, 시주자 이름, 발원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대웅전 동종(銅鍾)
대웅전의 화려한 천장
대웅전 관음보살벽화-위는 측벽에 걸린 모사본이고 아래는 보물1862호인 후불벽화 진본이다. 관음보살의 오른편에는 그의 상징인 감로병이 연꽃 위에 올려져 있고 오른쪽 무릎 옆에는 합장을 한 선재동자가 그려져 있다. 불전 뒷벽에 불화를 그리는 경우는 대부분 벽에 직접 그리는데 이 작품은 17장의 한지 위에 채색하여 그린 그림을 벽 위에 붙이는(유일한 첩부벽화)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을 그린 것으로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크기는 가로289cm, 세로393cm이다. 관음보살은 흰옷을 입고 아미타불이 장식된 보관을 머리에 쓴 모습이며 머리 뒤에는 초록색의 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바다에서 솟아난 연꽃 대좌에 왼발을 올리고 왼쪽 허벅지에 오른발을 올린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양식적으로 관음보살 상호와 어깨에 늘어진 보발, 의습에 시문된 문양 등이 수화승 天信이 조성한 흥국사 대웅전 영산회상도(1693년)와 유사하며, 특히 어깨의 보발 표현 및 선재동자의 착의방식, 정병의 기형 등에서는 17세기 불화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바다 가운데 피어 오른 연꽃을 좌대로 하여 관음보살과 선재동자, 정병을 표현한 독특한 구성이다.
흥국사 대웅전 불탱 영산회상도
흥국사 무사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시왕상 일괄 및 복장유물, 보물1566호. 1648년(인조 26) 수조각승 인균(印均)을 비롯한 12명의 조각승들이 참여하여 조성한 작품이다. 지장보살상은 동그란 얼굴에 살이 적당히 올랐으며, 부푼 눈두덩 사이로 짧게 치켜 올린 눈이 인상적이다. 단정한 신체에 표현된 옷 주름은 강직한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을 잘 조화시켜 신체의 굴곡과 양감을 잘 살려내었다. 시왕과 권속상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개성적인 특징과 역할을 다양한 표현력과 연출력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다. 흥국사 무사전 조각들은 17세기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장보살삼존을 비롯한 권속들이 모두 존속하고, 조성주체와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발원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장보살을 모시는 불전으로 보통 지장전, 명부전이라 부른다.
(좌)흥국사 노사나불 괘불탱(興國寺 盧舍那佛 掛佛幀), 보물1131호,
(우)흥국사수월관음도 보물 1332호. 수월관음도 가로 165cm, 세로 224.5cm. 1723년(조선 경종3년). 관음보살 옆 버들가지 정병, 좌측 하단에 선재동자가 등장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등장한다. 또한, 관음보살이 몸을 틀지 않고 정면을 보고 있다는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크게 달라진 점으로 꼽힌다.사진은 국가문화유산포털
흥국사 십육나한도 (興國寺 十六羅漢圖) 보물 1333호. 나한은 아라한이라고도 하는데 수행을 거쳐 깨달은 성자를 말하는데 흥국사십육나한도는 응진당(應眞堂)에 보관되어 있다. 응진당 사진은 미리내님 블로그에서, 16나한도는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빌려왔다.
흥국사 적묵당
흥국사 심검당
흥국사는 임진왜란때 의승 수군 300여명이 훈련했던 곳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의승 수군이 있던 곳이다. 흥국사가 의승 수군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임진왜란때 피해가 매우 심해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많은 성보가 진열되어 있다는데 굳게 잠겨 있어 둘러보지 못하였다.
흥국사 동종, 보물 1556호. 조선시대 주종장 가운데 김용암(金龍岩)·김성원(金成元) 등과 더불어 사장계(私匠系)를 대표하는 김애립(金愛立)이 순천 동리산의 대흥사 종으로 1665년에 주성했다. 높이 121㎝의 크기로서 당시로서는 대종에 해당한다. 종의 외형은 상부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약간씩 벌어져 마치 포탄과 같은 모습이다. 간단하면서도 힘이 있는 쌍룡 종 고리로 삼고 천판에는 큼직한 연화문대를 돌렸다. 천판과 만나는 종의 어깨부분에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 둘러져 있으며, 몸체에는 연곽대와 보살상 및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패(殿牌)가 마련되어 있다. 종신에 새겨진 문양은 전반적으로 섬세하고 화려하며 잘 정돈된 느낌이다. 이 종은 사인비구(思印比丘)와 버금가는 기술적 역량을 지녔던 김애립 범종의 특징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인 동시에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강희 4년'이라는 명문(銘文)이 있어 1665년(현종 6) 주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동종의 위치도 파악하지 못하고 왔다. 동종 사진은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가져왔다.
해우소나 뒷간인줄 짐작했는데 모처럼 厠所(측소)라는 글씨를 접한다.
빗방울이 후두둑 마음을 바쁘게 다그치는데 멋드러진 팽나무가 발길을 늦춘다. 영취산 진달래에 혹해 오래전에 한 번 왔었고, 산단의 화려한 야경에 취해 왔다간 기억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흥국사를 듣도 보도 못하다가 작년에 여수 사는 고향 친구를 만나는 바람에 알게 되고 이번 아들 내외 손주와 함께 풀빌라펜션을 얻어놓고 휴가를 왔다가 들러 글을 남긴다. 사진을 정리하다가 흥국사 입구에 홍교가 있었는지 조차도 모르고는 땅을 친다. 어느 기회에 그 멋진 홍교를 볼 것인가!
흥국사 홍교(興國寺 虹橋) 보물563호, 개울 양 기슭의 바위에 기대어 쌓았는데, 부채꼴 모양의 돌을 서로 맞추어 틀어 올린 다리밑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이루고 있다. 양옆으로는 둥근 돌로 쌓아올린 벽이 학이 날개를 펼친 듯 길게 뻗쳐 조화를 이룬다. 홍예의 한복판에는 양쪽으로 마룻돌이 튀어 나와, 그 끝에 용머리를 장식하여 마치 용이 다리밑을 굽어보고 있는듯하다. 전체 높이가 5.5m, 너비가 11.3m, 길이가 40m이며, 현재 남아 있는 무지개다리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 조선 인조 17년(1639)에 흥국사 주지인 계특대사가 세운 다리로, 지금까지 알려진 무지개형 돌다리로서는 가장 높고 길며, 주변 경치와도 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다리이다. 사진은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가져왔다.
보물
여수 흥국사 대웅전 - 보물 제396호
여수 흥국사 대웅전 후불탱 - 보물 제578호
여수 흥국사 홍교 - 보물 제563호
여수 흥국사 노사나불괘불탱 - 보물 제1331호
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 - 보물 제1332호
여수 흥국사 십육나한도 - 보물 제1333호
여수 흥국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 보물 제1550호
여수 흥국사 동종 - 보물 제1556호
여수 흥국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시왕상 일괄 및 복장유물 - 보물 제1566호
여수 흥국사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 - 보물 제1862호
시도 유형문화재
여수 흥국사 원통전 -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45호
여수 흥국사 삼장보살도 -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299호
여수 흥국사 제석도 -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300호
여수 흥국사 중수사적비 -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312호
시도 문화재자료
여수 흥국사 - 전라남도의 문화재자료 제38호
여수 흥국사 팔상전 - 전라남도의 문화재자료 제2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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