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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주 부석사 浮石寺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2. 10. 20. 22:49

    태백산 부석사 일주문의 앞면은 太白山浮石寺(태백산부석사),  뒷면은 海東華嚴宗刹(해동화엄종찰) 편액이 걸려 있으며 효남(曉南) 박병규(朴秉圭)의 글씨이다.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255호. 높이428cm. 행사가 있을 때 절의 입구에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뜻한다. 마주보는 안쪽 옆면과 바깥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양쪽 모서리의 모를 둥글게 다듬었다. 기둥 윗부분은 원을 2겹으로 경사지게 조각하였고, 옆면 3줄의 세로줄이 새겨져 있다.

     

    천왕문, 부석사는 9개 석축과 108개 석계가 있다. 9개 석축은 9품이며 9품은 9단계의 극락이다. 천왕문에서 범종루까지 3개석축은 하품경계이며, 범종루에서 안양루까지는 중품경계이며, 안양루에서 무량수전까지는 상품경계이다. 수미산(須彌山)의 중턱에 있는 사왕천(四王天)의 주신(主神)인 네 명의 외호신으로 사대천왕(四大天王)·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한다. 욕계육천(欲界六天)의 최하위를 차지한다. 수미산 정상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帝釋天)을 섬기며, 불법(佛法) 및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남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용을, 서 광목천왕(廣目天王) 탑을, 동 지국천왕(持國天王)은 검을, 북 다문천왕(多聞天王毘沙門天王)은 비파를 들었다. 일주문(一柱門)과 본당 사이에 위치하며  목조상(木造像)을 봉안(奉安)했다. 

     

    회전문(廻轉門), 1849년 안정구가 편찬한 향토지리지인 재향지 기록에 근거한다.

     

    부석사 동서삼층석탑. 유형문화재130호. 삼층석탑은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쌍탑이다. 약사골 절터에 있던 것을 1966년 이곳으로 옮겼다. 무량수전앞 삼층석탑과도 비슷하나지붕돌 받침이 4단이고 바닥돌 크기가 작다는 점에서 약간 늦은 제작연도일 것이다. 바닥돌은 각면의 모서리와 중앙에,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모양 장식을 하였다.

     

    범종루,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건물은 측면으로 앉아있고 건물 앞쪽은 팔작지붕 형태지만 뒤쪽은 맞배지붕 형태를 한 비대칭형 건물이다. 22년 10월 현재 범종각이란 이름으로 보물 지정 예고되어 있는데 사실은 범종루의 잘못이다. 범종각은 1980년에 신축하였기 때문이다. 22년 보물 2184호 지정.

    범종루의 목어(木魚) 나무를 깎아 잉어 모양으로 만들고 속을 비게 파 낸 불구(佛具)로서 목고(木鼓)또는 목판(木板)이라고도 하며 조,석 예불과 법의식때 수중(水中)중생(물고기등)을 구제한다는 뜻으로 두들기며 사찰내의 스님들을 소집할때에도 사용하는 도구이다.

    범종루의 법고, 홍고(弘鼓), 축생(畜生)과 땅위의 모든 중생(衆生)들을 구제한다는 뜻이 있다.  북통은 모두 나무를 잘라 만들었고 양쪽 북면에는 쇠가죽을 씌워 북채로 쳐서 소리낸다. 법고는 불교의식 외에 승무(僧舞)에서도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악기이며, 또 일부 지방에서는 농악에서 쓰이는 소고를 법고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一三五의 비밀을 간직한 범종루에서 겨울나기로 터를 잡은 남생이무당벌레

     

     1980년에 신축된 범종각. 봉황산(鳳凰山) 부석사 범종의 공양상비천상(供養飛天像), 비천상(飛天像)은 양각된 연화좌(蓮花座) 위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공양상(供養像)이다. 그 주위로 보상화(寶相華)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불국사의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국보 제29호(에밀레종)]보다 규모는 약간 적지만 아름답고 신비롭기 그지 없다.

     

    부석사 안양루 역시 범종루와 함께 보물 지정 예고되어 있다. 安養門(안양문)은 극락(무량수전)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앞쪽 편액은 안양문이고 이승만 전대통령의 글씨다. 위쪽 마당쪽에는 안양루 편액이 걸려 있는데 소남 김종호의 글씨다. 하나의 건물에 문과 누각의 이중기능을 갖춘 건물이다. 김삿갓의 안양루에 올라 시편이 유명하다. 22년 보물 2183호 지정.

     

    안양루(安養樓) / 김삿갓(金炳淵, 1807-1863)

    平生未暇踏名區(평생미가답명구)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白首今登安養樓(백수금등안양루)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江山似畵東南列(강산사화동남열)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天地如萍日夜浮(천지여평일야부)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風塵萬事忽忽馬(풍진만사홀홀마)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宇宙一身泛泛鳧(우주일신범범부)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歲月無情老丈夫(세월무정노장부)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무량수전(無量壽殿)은 1376년에 중수된 목조 건축물로 국보제18호.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고려 중후반기로 추측된다. 신라 문무왕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浮石 바위가 있는데, 삼국유사에 의상대사가 당 유학을 마치고 귀국시 선묘가 용으로 변해 따라와 보호해 주었다.  무량수전은 한국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에 이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극락정토의 교주인 무량수불(아미타불)을 모셨는데 탑이 없다. 그 연유를 원효는 무량수불은 석가불처럼 열반하는 일이 없고 지금도 시방에 계시니 탑을 세우지 않는다 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이 남아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신 특징이 있다. 현판은 공민왕친필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앞 석등(石燈). 국보17호. 높이 2.97m 8각을 기본형으로 하며 화강암으로 만든 것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워 신라시대의 석등 가운데 최고로 꼽는다. 하대석에 8엽 복판 연꽃잎의 끝마다 귀꽃이 달려 있다. 장흥 보림사 석등과 문경 축서사 석등에서만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상·하대석 모두 연꽃잎 사이에 마디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간주석 받침에 굽이 있다.

    무량수전 소조여래좌상 국보45호. 이 불상은 나무로 골격을 진흙으로 만든 소조불상인데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랜되어 작품가치가 높다.. 높이278cm이며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는 불상의 뒤편에 나무로 따로 만들어 놓았는데, 가장자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이다. 일반 사찰과는 달리 법당 중앙의 정면이 아닌 서쪽에 마련된 불단 위에 모셔져 있다.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으로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나 불신을 모신 법당이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을 모신 무량수전이라는 사실과 원융국사비문에 좌우에 다른 보처보살을 모시지 않고 아미타불 한분만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통신 불상 조형을 계승한 여초 작품으로 온몸에 금빛이 화려하고 정교한 수법을 보이는 걸작이다. 화엄경의 교주는 비로자나불이다. 그런데 화엄사상을 배경으로 조성된 부석사가 극락세계 주불인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구품세계를 펼친 것은 의문이다. 원효의 화엄사상이 외적으로 나타난 신앙형태가 아미타불이었다. 원래 바닥은 푸른 유약을 바른 녹유전(綠釉, 잔돌, 청자, 유리)이었다. 아미타경에 극락세계의 바닥이 유리였었다. 원주 법천사, 무위사 극락보전. 보경사 적광전서도 볼 수 있다.

     

    동방사 터에서 옮겨왔다는 삼층석탑. 보물249호이다. 이곳에서 부석사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선묘각(善妙閣). 무량수전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하며 의상조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선묘라는 인물을 모신 건물이다.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 규모의 맞배집이지만, 가구의 방식이나 부재를 다듬은 걸 보아 최근의 건물인 듯하다. 안에는 1975년에 그려진 선묘의 영정이 걸려 있다. 송고승전에, 의상이 당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선묘가 용으로 따라와 의상을 보호하면서 사찰건축을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쳤고 그것이 부석(浮石)이다.

     

    지장전(地藏殿=冥府殿) 저승세계인 유명계(幽冥界)를 상징하는 당우(堂宇)를 말한다. 지장전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 지옥의 심판관 시왕을 모시 곳이므로 시왕전[十王殿],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므로 쌍세전(雙世殿)이다. 지장보살은 도리천에 살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고 시왕은 128개 지옥을 다스리는 명계의 왕이다.

     

    안양루와 무량수전을 함께 담아보았다. 의상대사의 선비화(골담초) 전설이 깃든 국보 조사당을 못보고 내려오려니 아쉬워 문화재청에서 빌려온 사진을 게재하였다.  

     

    조사당(祖師堂). 2015년 국보19호.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고려 우왕 3년(1377)에 세웠고, 조선 성종때에 중수했다. 송고승전에, 의상이 당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선묘가 용으로 따라와 의상을 보호하면서 사찰건축을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쳤고 조사당 처마아래 가냘픈 선비화(=골담초)가 자라고 있는데 의상대사의 주장자(柱杖子,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고 전해온다. 문화재청

    조사당(祖師堂) 현판.부석사. 2015년. 

    조사당 석조여래좌상(1963-1). 보물220호, 북지리에 있던 것. 문화재청

    조사당 벽화 부석사, 국보46호. 건장한 모습이다. 훼손된 부분이 많고 후대에 덧칠하여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율동감 넘치는 유려한 선에서 고려시대 불화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조사당이 고려 우왕 3년(1377)에 건축되고 벽화도 같은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화재청

     

    회전문을 나서며...

     

     

    그리운 부석사 / 정호승

     

     

    사랑 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며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게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않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정호승 시선집 너를 사랑해서 미안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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