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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2. 9. 25. 13:42

    원주 법천사지 사적466호. 원주 법천사지는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위치한 법천사의 옛터이다. 법천사는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법상종(法相宗)사찰이다. 고려 문종때 당대의 제일가는 고승이었던 지광국사가 젊은시절 승려의 길로 들어선 곳이자 말년에 입적한 곳이다. 법천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져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다. 

    고려시대에는 무신정권 이전까지 법상종의 대표적인사찰로 문벌 귀족의 후원을 받아 번성하였으며,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관운, 지광국사, 정현, 덕겸, 관오, 각관 등 유명한 승려가 계셨다고 한다. 조선초기에는 학자 유방선이 이곳에 머물며 제자를 가르쳤는데, 한명회, 서거정, 권람 등이 그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홍길종전의 저자 허균은 이곳을 방문한뒤 유원주법천사기를 썼는데 그 책에 따르면 법천사는 임란때 불에 타서 없어졌다고 한다. 법천사는 고려시대의 뛰어난 석조미술양식을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유적지로 현재 법천사지에서 전하는 유물로는 지광국사탑비(국보59호), 지광국사탑(국보101호), 당간지주(강원도문화재자료20호), 그 밖에 석탑재 일부 등이 있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국보59호. 지광국사는 원주 출신으로 여러 왕을 거치면서 최고의 승려로 활약하였다. 역대 왕들은 자주 지광국사를 왕실로 초청해 말씀을 들었고, 임금과 함께 국왕의 수레인 어가를 타고 다녔다. 특히 문종은 지광국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극진하게 대접하였다. 지광국사는 문종24년(1070)에 87세의 나이로 법천사에서 입적하였다. 특히 몸돌 양옆에 구름과 어우러지지게 새겨진 용 두 마리가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이다.

    지광국사탑비는 거북모양의 받침돌 위에 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전체높이는 4.55m이다. 받침돌에 있는 거북의 얼굴은 용의 얼굴과 비슷하다. 특히 등껍질에 사각형을 여러개 그리고 그 안에 王자를 새겨 장식한 점이 독특하다. 받침동이나 몸돌과 달리 석비는 가만 보니 딱딱하기로 유명한 오석(烏石)이다. 오석에 섬세하고 화려하게 새겨진 연꽃,구름,용 등은 당시 조각예술의 최고 경지를 보여준다. 

    탑비란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는 고려 선종2년(1085)에 지광국사의 삶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지광국사탑-사진은 문화재청,국보101호. 이 탑은 고려시대의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67)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원래 법천사터에 있던 것인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반환되었으며, 경복궁 경내에 있다가 보존처리를 위하여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졌으며, 기단 네 귀퉁이에 있던 사자상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해오다 탑과 함께 옮겨졌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 이후의 탑이 8각을 기본형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이 탑은 전체적으로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바닥돌은 네 귀퉁이마다 용의 발톱같은 조각을 두어 땅에 밀착된 듯한 안정감이 느껴지며, 7단이나 되는 기단의 맨윗돌은 장막을 드리운 것처럼 돌을 깎아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탑신에는 앞뒤로 문짝을 본떠 새겼는데, 사리를 모시는 곳임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지붕돌은 네 모서리가 치켜올려져 있으며, 밑면에는 불상과 보살, 봉황 등을 조각해 놓았다. 머리장식 역시 여러 가지 모양을 층층이 쌓아올렸는데, 비교적 잘 남아있다. 법천사터에는 지광국사의 탑비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탑비를 세운 때가 고려 선종 2년(1085)이므로 묘탑의 조성시기는 국사의 입적 직후인 1070∼1085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탑 전체에 여러가지 꾸밈을 두고,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등 자유로운 양식에 따라 만들어졌는데도, 장식이 정교하며 혼란스럽지 않다. 화려하게 꾸민 장식으로 인해 엄숙한 멋을 줄어들게 하고 있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탑 가운데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한 작품이다. 국립박물관에 있던 것을 문화재연구원으로 옮겨서 5년간 복원작업을 거쳐 고향인 법첨사지로 이전할 계획이다. 제 자리인 탑비 앞에 세워지면 좋으련만...

     

    부부인듯한 설치미술가 남녀가 설치미술전을 준비하고 있다. 향교나 서원을 활용하여 유학사상을 펼치는 문화재사업이 곳곳에 한장인데 폐사지를 활용한 설치미술전이라니 반갑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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