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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미륵원 남루 고지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1. 10. 26. 12:27
마산동 미륵원 입구 좌측능선에 자리한 1세조 회덕황씨(懷德黃氏) 황윤보의 묘
10년 전까지만 해도 종부할머니가 사셨었는데... https://daejeon-story.tistory.com/2762
회덕황씨 후손인 황대서씨가 들창을 열기 위해 남루로 향하고 있다.
미륵원 공간이 부족하여 더 지은 남루. 목은 이색(李穡), 하륜(河崙), 변계량(卞季良), 정인지(鄭麟趾), 우암 송시열(宋時烈) 등이 회덕황씨 일가를 찬(撰)한 제영기(題詠記)가 보인다.
미륵원남루기가 기록된 회덕황씨세보(상)와 미륵원남루기 제영시가 적힌 수우재 황식선생문집(하) -대전시립박물관
남루고지
미륵원(彌勒院)은 고려, 조선시대에 서울에서 영호남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인 이곳에 황윤보의 후손 3대 110년 동안 지나가는 길손에게 편의 제공하던 대전지역 최초의 사회복지시설이다. 회덕황씨(懷德黃氏) 시조 황락(黃洛)은 한나라 유신(儒臣)으로 서기28년(유리왕 5)에 교지국(현 베트남) 혹은 일본에 사신으로 가던 중 폭풍을 만나 평해에 표착하자 월송정에 상륙하여 우리나라에 귀화하고 평해에 정착 세거하였다고 한다. 그 후손인 황윤보(黃允寶)가 고려때 호부전서(戶部典書:정3품 장관)와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문하부의 종2품)를 지내고, 좌명공신으로 회천군(懷川君)에 봉해지자 그를 1세조로 받들고 본관을 회덕(懷德)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미륵원(대전시기념물 제41호)은 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 대청호변에 있는 원(院)으로 고려말 우왕의 폐위를 반대하고 낙향한 황윤보가 설립했으며 그의 아들 황연기(黃衍記), 손자 황수(黃粹), 증손자 황자후(黃子厚)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110년동안(1332~1440) 삼남(三南)과 서울을 오가는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했다.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으며 충청도 향풍의 근원이 되었다. 미륵원은 여말 조선초(麗末朝鮮初)에 대전을 본관으로 하는 유일한 성씨인 회덕황씨 집안의 선행으로 운영된 역참으로 남루(南樓)에 걸린 제영기(題詠記)는 목은 이색, 하륜, 변계량, 정인지, 우암 송시열 등이 회덕황씨 일가를 찬(撰)하고 있다. 16세기 초에 운영이 갑자기 중단되었는데 후손인 황호가 금성대군을 도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건으로 형제와 직계 후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결국 인근에 소유하고 있던 산지와 토지도 대부분 은진송씨 문중의 차지가 되었다고 한다. 1세조 황윤보의 묘는 대전광역시 대덕구 마산동에 있다.
문화재 유지보수 및 복원을 위한 대책과 노력은? https://cafe.daum.net/yetsaengdol/BB85/45?q=%EB%AF%B8%EB%A5%B5%EC%9B%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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