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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암 김정(金淨)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1. 10. 2. 12:10
종택
산해당(山海堂)-우암 송시열이 충암(冲菴) 김정(金淨, 1486~1520)의 성품을 “산고해활(山高海活) 즉 높은 산과 같고 넓은 바다와 같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충암 김정(경주김씨 충암공파 派始祖) 선생의 불천위 종가(不遷位 宗家)인 것이다. 고향인 보은에서는 김정문화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1978년 대청댐 수몰로 물에 잠긴 대덕군 동면 내탑리에서 이곳으로 묘를 옮기면서 신도비(神道碑), 충암선생의 위패(位牌)를 봉안한 별묘(別廟), 산해당(山海堂) 그리고 그의 부인의 정려각(旌閭閣) 등도 함께 옮겼다. 대청댐 수몰지구에 들어가게 되어 국비로 선생의 묘소 등 유적이 동구 신하동 묘골로 옮겨지게 되었다.
김성발과 부인 유씨의 묘-김성발은 김정의 증손자이며 김철보의 손자이다.
김철보와 부인 연안김씨의 묘-김철보는 형 김광의 둘째 아들인데 김정이 아들이 없어 후사로 삼은 인물이다.
문간공 김정과 부인 송씨의 묘-기묘사화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충암 김정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14세에 별시 초시에 1등으로 합격하였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사양한다. 18세인 1503년 회덕의 계족산 아래 법천사에 들어가 공부하여 중종2년 1507년 22세에 증광문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관직에 진출한 후에는 사림파의 성장과 함께 승승장구했다. 부제학, 동부승지, 좌승지, 이조참판. 도승지, 대사헌 등을 거처, 34세의 젊은 나이로 형조판서 겸 예문관대제학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14개월 만에 사약을 받는다.
중종반정의 공신들이 조정의 요직을 차지하게 되는데, 아무런 공도 없는 이들 또한 자리를 탐하는 일이 발생하며 조정의 질서가 어지러워졌다. 이에 중종은 공신이 아닌 새로운 인물, 즉 조광조를 통해 개혁 정치를 시행하게 된다. 하지만 위훈 삭제, 소격서 폐지 등 조광조의 급격한 개혁 정치로 인해 중종과의 틈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 틈을 이용해 훈구세력이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을 모의하게 된다.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씨를 써서 곤충이 파먹게 하고 '조씨가 왕이 된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훈구파가 조광조를 몰아내기 위해 꾸민 모함이었다.
백비(白碑)-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기에 비석을 세울 수도 글자를 새겨 넣을 수도 없었다.
김정부인 송씨정려-1521년도에 제주도에서 선생이 사사된 후, 부인 또한 선생을 따라 자결하려 했으나 시어머니가 생존하시기에 봉양한다. 송씨는 시어머니가 별세하자 8일 동안 음식을 끊고 세상을 떠났다. 이를 가상히 여겨 조정은 열녀문을 세워 그의 넋을 기렸다.
신도비 https://cafe.daum.net/gyeonkim.co.kr/80KK/93?q=%EA%B9%80%EC%A0%95%20%EC%A0%88%EB%AA%85%EC%8B%9C
김정 https://ktk84378837.tistory.com/7854
모란 / 충암 김정(沖菴 金淨)
洛陽多甲第 낙양엔 뛰어난 집안이 많은데
姚魏鬪芳菲 요씨와 위씨가 미색을 다투었지
色借楊妃貌 미색은 양귀비의 모습을 빌려온 듯하고
香分韓壽衣 향취는 한수의 옷 향기를 나눈 듯하구나!
翠凝煙乍暖 비취 제(크림)가 엉기니 안개가 막 데워진 듯하고
紅潤露初稀 붉은 분이 윤기 나니 이슬이 막 마른 듯하구나!
莫倚春長在 언제까지나 봄일 거라고 믿지를 마라!
明朝事已非 내일 아침이면 벌써 처지가 달라지리니
*6세 때 마당에 핀 목단을 보고 지은 시
渡碧波口號(도벽파구호) / 충암 김정(沖菴 金淨)
- 푸른 파도를 건너며 읊다
宇宙由來遠(우주유래원) 우주는 예로부터 심원하나
人生本自浮(인생본부침) 인생은 원래부터 떠다니는 삶이라네.
扁舟從此去(편주종차거) 작은 배 한 척에 기대어 이제 떠나면
回首政悠悠(회수정유유) 고개를 돌려 보아도 아득할 뿐이네.
-1519년 기묘사화 때 금산에 이어 진도를 거쳐 제주로 유배를 간다. 진도에서 제주로 가는 배는 벽파진에서 출발한다.
임절사(臨絶辭) / 충암 김정(沖菴 金淨)
投絶國兮作孤魂 외딴 섬에 버려져 외로운 넋이 되려하니
遺慈母兮隔天倫 어머님 두고 감히 천륜을 어겼구나
遺斯世兮損余身 이 같은 세상 만나 이 몸이 죽게 되었구나
乘雲氣兮歷帝阍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 옥황상제의 문에 이르리라
從屈原兮高逍遙 굴원을 따라 높이 떠돌고 싶구나
長夜冥兮何時朝 기나긴 어두운 밤은 언제나 날이 새리
炯丹衷兮埋草菜 빛나던 일편단심 쑥밭에 묻게 되니
堂堂壯志兮中途摧 당당하고 장하던 뜻 중도에 꺽었구나
嗚呼千秋萬歲兮應我哀 아! 천추만세에 나의 슬픔을 알리라
*노모봉양 부탁 글을 써서 동생에게 주고 절명시를 써서 제주목사에게 바치고 사약을 마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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