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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논개사당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1. 9. 17. 21:32
문화해설사의 자상한 해설을 더한 논개사당 의암사
의암사에서 내려다 보는 의암호의 풍경이 곱다. 멀리 팔공산이 높다.
논개성장향수명비
논개는 기생이라는 이유로 임진왜란중 충신,효자,열녀를 뽑아 편찬한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에도 이름이 오르지 못하고 오랜세월동안 목격자와 주변사람들 그리고 진주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알려져왔다. 경종1년 (1721) 공식적으로 비변사에서 그녀의 순국사실을 국가가 인정하고 영조16년(174)년 사당이 의암부근에 세워지고 지금까지 매년 논개의 추모제가 열린다.
이 비는 헌종12년(1846) 논개의 출생지를 기념하기 위해 장수현에서 세운 비석이다. 당시 장수현감 정주석이 비문을 지었으며 비문은 <호남절의록>의 내용과 설화에 근거허여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파괴될 위기에 있었으나 장수군의 젊은 청년들이 밭에 묻은 후 곡식을 심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였다. 광복 후 비석을 찾아내어 비각을 건립하고 비를 세웠는데 1974년 의암사 이전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일본 나고야성 게이무라 로쿠스케의 신사에 논개의 영정이 걸려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1970년대 은퇴한 일본인 건축설계사 우에쓰카 하쿠유는 후쿠오카현 다가와시 근처 히꼬산 자기 소유의 밭을 갈다가 오래된 묘비를 발견한다. 그 비석에는 임진왜란 때 이름을 떨친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이야기가 써 있었다. 신의 칼' 이란 별명을 가진 쇼군으로 승승장구한 전설적인 사무라이였다. 우에쓰카는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일간 역사적 화회와 교류, 영혼들의 원풀이라는 주장으로 진주에서 논개와 게야무라의 넋을 건져 이를 일본으로 모셔가는 의식을 치뤘다. 히코산에 게야무라와 함께 논개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뒤 그는 논개를 게야무라와 영혼결혼식을 시키고 그의 부인과 처제의 영정 옆에 첩으로 세워놓았다. - sns에 도는 이야기다. 철저히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논개가 가토 기요마사의 부장인 게야무로 로쿠스케(본명 기다 마고베이)를 끓어안고 남강에 투신하는 모습의 기념관 부조.
의기 논개의 비석 앞에서[義妓論介碑] / 황현(黃玹 1855~1910) 무술년(1898)
楓川渡口水猶香(풍천도구수유향) 풍천 나루 어귀 냇물은 지금도 향기로워
濯我須眉拜義娘(탁아수미배의랑) 깨끗이 세수하고 의낭(義娘)에게 절을 하네.
蕙質何由能殺賊(혜질하유능살적) 향초 같은 몸으로 어찌 적장을 죽였을까
藁砧已自使編行(고침이자사편행) 낭군이 이미 항오에 들게 했기 때문이라
長溪父老誇鄕産(장계부노과향산) 장계의 노인들은 제 고향 출신임을 자랑하고
矗石丹靑祭國殤(촉석단청제국상) 촉석루 단청에는 나라 위한 죽음을 제사하네.
追想穆陵人物盛(추상목능인물성) 생각해 보면 선조 때에는 인물이 많았는지라
千秋妓籍一輝光(천추기적일휘광) 기적에도 한 줄기 빛이 천추에 발하였네.
*砧;다듬잇돌 침,
*고침(藁砧)은 짚자리와 작두 받침대이다. 고대 중국에서 죄수를 사형할 때에 죄수를 침판(砧板)에 엎드리게 하고 작두〔鈇〕로 참형을 시행했다. 부(鈇)는 부(夫)와 발음이 같으므로, 후세에는 남편을 가리키는 은어로 쓰였다. 여기서는 논개의 남편인 최경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편항(編行)은 항오(行伍)에 편입시켰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 전국 시대의 제(齊)나라 장군 전단(田單)이 연(燕)나라와 전쟁을 할 때에 몸소 판삽(板揷)을 잡고 병사들과 함께 일을 하였고 처첩(妻妾)들을 항오에 편입시켜 함께 고생하게 하여,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 연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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