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가야산 해인사 伽倻山 海印寺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0. 8. 19. 17:17

    성철스님 사리탑, “내가 삼십 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았다가 나중에 선지식(善知識)을 친견(親見)하여 깨침에 들어서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보았다. 지금 휴식처를 얻고 나니 옛날과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그대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으냐 다르냐 이것을 가려내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같은 경지에 있다고 인정하겠노라.”

    성철스님은 대구 동화사에서 28세때 하안거중 대오했다. 대한불교 6,7대 조계종종정을 역임하였다. 태어나기는 산청군 단성면 겁외사이지만 열반은 해인사 백련암에서였다. 2010년의 구름처럼 모인 군중이 둘러싼 다비식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책을 보지 말라는 말로도 유명하다.  대한민국 선불교의 수행 전통으로 여겨온 지눌의 돈오점수(頓悟漸修)에 반대하여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창했다. 성철은 지행합일(知行合一) 단계의 지()만이 진정한 지()이고 지눌의 돈오점수는 관념과 표상(表象)에 경도(傾倒)되어 실증성이 희박(稀薄)한 지()일 뿐 참 지()가 아니라고 주장(主張)하였다. 그러나 지눌은 일반인에게 불교 교의를 풀어서 밝혔고 성철은 수행하는 승려에게 설법하였으므로 단순비교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석가모니도 깨닫기 전에 6년간 수행했고, 깨닫고 난 후에도 45년간 수행했다. 선종의 대표적 인물이다. 

     

    김영환장군 팔만대장경수호공적비. 한국동란 당시 가야산에 숨어든 인민군을 소탕하기 위해 공군편대장으로 출격하였으나, 인민군 수백 명을 살려 보내더라도 민족의 소중한 문화재인 팔만대장경은 폭격할 수 없다며 공격을 포기하여 팔만대장경과 해인사를 지켜냈다. 공군의 상징인 빨간마후라를 창안하였으며 영화 빨간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강원도 상원사와 문화재를 지킨 한암스님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해인사묘길상사탑(吉祥塔). 보물 1242호. 지석 앞면에는 고운 최치원이 진성여왕9년(895) 전란에서 사망한 원혼들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의 해인사묘길상탑기가 기록되어 있다.

     

    최치원이 머문 고운암이 있고, 천기541호 전나무(2019년 벼락맞아 해제)가 있는 가야금을 연주 할 때 수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는 한림학사(翰林學士)를 딴 학사대가 주변에 있다. 이곳에 들를 시간이 없어 사진은 성주 애지리문화농원에서 빌려왔음을 밝힌다. 최치원이 지은 석순응전(釋順應傳)에  “그 서쪽 산 두 시냇물이 합치는 곳에 거덕사(擧德寺)라는 절이 있는데, 옛 대가야국(大伽倻國) 태자 월광(月光)이 결연(結緣)한 곳이다.”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제 30권 합천군(陜川郡). 여기서 순응은 해인사와 선림원양양 선림원지(襄陽 禪林院址) :: 시사랑꽃사랑 (tistory.com)을 창설한 분이다. 거덕사는 해인사 주차장 부근으로 판명되었다. 월광태자는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導說智)와 동일인물인데 해인사 입구 10km 지점인 월광리에 월광사를 창건하기도 하였다. 월광사지엔 동서삼층석탑(보물 129호)가 남아 있다. 한편, 국립중앙박물관 현관에 우뚝한 보물 제360호 월광사(月光寺) 원랑선사탑비(圓朗禪師, 816~883)제천 월광사를 이른다.

     

    원경왕사비 보물 제128호. 고려 1125년(인종 3)에 반야사에 건립 해인사로 옮겼다. 높이2.3m. 원경왕사의 속성은 신씨고 예종 14년(1119)에 입적하자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김부식이 짓고 글씨는 이원부가 썼다. 이 비는 신라의 기본형태에서 벗어난 형태로 귀부의 중곽갑문과 아울러 생경한 문양표현, 옥개형으로 변한 개석 등 고려 중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해인사 다녀온지가 하도 오래되어 가물가물하다. 둘째 내외가 코로나19를 핑계삼아 풀빌라를 휴가지로 선정해서 간만에 손녀도 볼겸 가는 길에 더불어 탐방기회를 잡았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해인(海印)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비롯되었는데 일심법계(一心法界)의 세계, 부처님 정각(正覺)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곧 있는 그대로의 세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객관적인 사상의 세계이니 바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중생의 본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가르침인 것이다. - 해인사 홈페이지 

     

    1945년에 수명을 다한 고사목(枯死木) - 이 나무는 신라 제 40대 애장왕3년(802년)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왕이 감사하여 두 스님이 수행하던 자리에  해인사를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해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다. .

     

    해인사는 불보사찰 통도사(通道寺), 승보사찰 송광사(松廣寺)와 더불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모시는 법보사찰(法寶寺刹)로 한국의 불교를 대표하는 3대사찰의 하나이다.  해동원종대가람(海東圓宗大伽藍, 우리나라 화엄종의 큰 절)과 해탈문(解脫門), 만파(萬波)스님께서 고종 2년에 쓴 친필이다. 계단은 33개인데 도리천 곧 33천의 궁을 상징한다. 중문에 속하는 문으로써 일반 사찰의 불이문(不二門)에 해당한다. 해탈문을 지나면 완전한 불법의 세계는 주·객, 세간과 출세간, 선과 악, 옳고 그름, 나고 죽음 등 대립하는 상대적인 것들을 초탈한 불이법문의 세계로써 삼존불을 모신 건물 앞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봉황문(천왕문)에 탱화로 그려진 사천왕상 - 동방지국천왕과 남방증장천왕, 여느 절과 달리 사천왕 모두가 탱화로 되어 있다.

     

    봉황문(천왕문)에 탱화로 그려진 사천왕상 - 서방광목천왕과 북방다문천왕, 여느 절과 달리 사천왕 모두가 탱화로 되어 있다.

     

    대적광전(海印寺大寂光殿). 경남유형문화재 제256호.정면 5칸, 측면 4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을 한 조선말기건축물이다. 법당에 들어서면 일곱 불상이 모셔져 있다.  주불로 비로자나불(산스크리트 Vairocana는 영원한 법 곧 진리를 상징), 협시불로 아미타와 석가를 모셨다. 왼쪽부터 철조관음보살, 목조 문수보살, 목조 비로자나불이 있고, 그리고 맨 가운데에 본존 비로자나불이 있고 다시 그 옆으로 목조 지장보살, 목조 보현보살, 철조 법기보살이다. 화면상으로는 좌우2불이 안보이고 5불만 보인다.

     

    추가 -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 국보339호. 9세기말에 조성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이다.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당당하고 균형잡힌 신체, 몸에 밀착된 편단우견의 법의, 자연스럽고 탄력 있는 옷주름,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지권인의 수인(手印)을 한 것이 특징이다. 불상의 재료는 향나무로서, 우리나라 목조불상의 대다수가 소나무, 은행나무인 것과 차별되는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우리나라 불상 중 향나무로 만든 불상으로는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2구와 고려시대의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알려져 있다. 제작기법을 보면, 불신은 하나의 원통형 나무로 처리하였고 머리와 팔은 따로 만들어 접목하였다. 나발(螺髮) 역시 흙 등으로 별도로 만들어 촘촘하게 부착했다는 점에서 고려시대 이후 등장하는 접목기술의 시원적인 방법을 보여 준다. 사진은 문화재청.

     

    정면에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서쪽 벽엔 법보단(法寶壇) 글씨는 행서, 반대편의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초서, 북쪽 벽의 대방광전(大方廣殿)은 예서체로 저마다 달리 썼다.

     

    삼층석탑(대적광전 뜰에 자리잡아 정중탑(庭中塔)이라 한다)은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54호이다.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높이 6m로 큰 탑에 속하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3층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이 있고 정상에 상륜부(相輪部)가 있는데, 원래는 2층 기단이었으나 1926년 중수할 때 1층이 더해졌다.

     

    석등. 경남유형문화재 255호.

     

    화장원(華藏院) - 한국불교 최대 종합수도도량 

     

    응진전(應眞殿)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불리는 응진전은 1488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지금의 건물은 1817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2007년 11월 24일 정면 3칸, 측면 3칸 그리고 다포형식을 가진 대비로전을 낙성하고 대적광전과 법보전의 ‘동형쌍불(同形雙佛)’인 두 비로자나 부처님을 나란히 안치하였다. 이는 진성여왕과 그의 숙부 위홍의 사랑이야기가 담겨있다. 지난 2005년 대장경판전의 법보전에 모셨던 비로자나불의 개금불사를 위해 복장 유물을 개봉하는 과정에서 연기문이 발견되었다. 연기문에는 두 불상이 대각간과 비()의 부처님이며 중화3(883) 계묘년 여름 금칠을 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대각간은 숙부인 위홍이며 비는 진성여왕이었다. 진성여왕의 재위 기간이 887년부터 897년까지였으므로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사랑하는 사이였을 것이다. 진성여왕과 위홍의 사랑 이야기는 해인사의 암자인 원당암에도 뿌려져 있다. - 참조 : [성보유전] 11. 해인사 쌍비로불 / 이상근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판각. 국보 제32호. 1011년에 새긴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골 침입으로 소실되었고, 1236년 몽골이 재침하자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호국불교적인 대장도감 설치하여 1251년에 재조대장경 완성하였다. 강화도 대장경판당에 보관하다가 1398년 해인사로 이전하였다. 경판이 81,258개에 이르며 체제와 내용이 완벽함은 물론 목판인쇄술의 결정체로 손꼽힌다.

    추가 -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이라는 상징성과 더불어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도 매우 뛰어난 조각기법을 보여준다. 지권인(智拳印)수인(手印)을 하고 한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偏袒右肩)의 옷차림, 무릎 사이의 부채꼴 모양의 주름, 원만한 얼굴과 당당하고 건장한 신체표현 등은 9세기 석굴암 불상 양식과 유사성을 보여준다. 특히 팽팽한 근육과 자연스럽게 처리된 옷주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탄력감은 신라 전성기 미적 감각과 양식적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향나무가 재료인바 우리나라 목조불상의 대다수가 소나무나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차별되는 양상이다.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의 목조비로자나불좌상 2구와 고려시대의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유일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방식을 보면, 불신(佛身)은 하나의 원통형 나무로 만들고 뒷부분에 나무를 덧대었으며, 머리와 팔은 따로 만들어 접목하였다. 나발(螺髮)은 흙으로 별도로 만들어 붙인 점에서 고려시대 이후에 등장하는 접목기법의 시원적 방식을 보여 준다. 국보 338호로 지정. 사진은 문화재청.

     

    수다라전 입구 연화문(蓮花文) - 춘분과 추분때 바닥에 연꽃 모양의 그림자가 보인다.

     

    장경판전 수다라전의 연화문(蓮花文)을 이해하고자 연꽃 그림자가 비친 사진을 대장경세계문화축전에서 빌려왔다. 이런 장면을 만나야 찾아가야 기다려야 문화재 촬영의 맛과 멋이 날텐데...

     

    장경판전의 법보전(좌)과 수다라전(우) - 북쪽건물을 법보전,  남쪽건물을 수다라전이라 한다.

     

    장경판전의 담장

     

    장경판전-국보 52호.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부처님께서 법보인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상.  대장경이 해인사로 옮겨진 때가 1397년이고 건물건축은 조선초 1488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국보32호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다. 이 외에도 고려목판 국보206호를 소유하고 있다. 해인사권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관음전(觀音殿)과 심검당(尋劍堂) - 현재 강원(승가대학)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약 100여명의 스님들이 경전을 연마하고 있다. 심검당이다 . 심검이라는 말은 모든 번뇌를 베어 버릴 수 있는 지혜의 칼을 찾는다는 뜻으로 수행의 목적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말이다. 

     

    범종루-사물이라고 불리는 법기(法器)가 설치되어 있다. 사물은 범종 · 법고 · 목어 · 운판을 말하는데 이 범종각은 사찰의 경내에서 마당을 내려다 보았을 때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어 왼쪽을 체로 오른쪽을 용으로 말하는 화엄의 사상에 따라 설치 된 것이다. 범종은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친다.

     

    보경당- 근래에 지은 불교회관으로 불사 때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소원나무에 소원지지 넘친다. 저 많은 소원을 어찌 다 들어주실꼬....!

     

    석당간지주

     

    소원석탑

     

    비석군

     

    해인사 성보박물관 - 목조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 홍치 4년명 동종(보물 제1253호), 영산회상도(보물 제1273호), 감로왕도(보물 제1697호),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777호),  법보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보물 제1778호--국보 338호로 승격),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779호-국보 339호로 승격),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복장전적(보물 제1780호), 지장시왕도(보물 제1799호), 광해군 내외 및 상궁 옷(중요민속자료 제3호)등의 수많은 유형문화재를 보존하고 있다.

    홍제암은 1608년 선조가 하사하여 사명대사가 창건하였다. 임란 후 사명대사는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陜川 海印寺 弘濟庵 四溟大師塔 및 石藏碑), 보물1301호. - 문화재청

    해인사 홈페이지 안내도

     

     

    海印寺(해인사)  /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 ~ 1409)

     

     

    巖壑盤回一路通(암학반회일로통) : 바위와 계곡이 둘러있고 한 길이 트여있고

    萬重山擁梵王宮(만중산옹범왕궁) : 일만 겹 산이 법왕궁을 에웠네

    天慳地秘寰區奧(천간지비환구오) : 하늘이 아끼고 땅이 감추듯이 들어 앉아 깊숙하고

    殿古廊回結構雄(전고랑회결구웅) : 오래된 궁전에 회랑이 둘려져 구조가 웅장하네

    突兀書巖流瀑外(돌올서암류폭외) : 솟아오른 서암은 흘러내리는 폭포 밖에 있네

    荒涼碁閣夕陽中(황량기각석양중) : 황량한 기각은 석양 가운데 보이네

    孤雲遐躅無人繼(고운하촉무인계) : 고운 최치원의 먼 자취를 이을 사람이 없으니

    千載悠悠鳥沒空(천재유유조몰공) : 천년동안 아득하게 새들만 공중에 날고 있네

     

     

    해인사에 제하다題海印寺/ 성현

     

     

    인적 고요한 뜰 가엔 녹음이 반쯤 덮였는데 / 人靜庭際半綠陰

    동선은 말이 없고 그림자만 침침하여라 / 銅仙無語影沈沈

    분재한 아름다운 나무는 주망에 가려 있고 / 盆栽琪樹遮珠網

    부처 떠받든 연꽃은 보림을 호위하누나 / 擎出靑蓮護寶林

    등불은 일천 행랑에 비쳐 백옥을 떠받친 듯 / 燈照千廊擎白玉

    물은 사면을 둘러싸라 황금이 잠긴 듯하네 / 水包四面蘸黃金

    누각에 올라 봉래산 경계를 한번 바라보니 / 登樓一覽蓬萊境

    만세토록 푸른 산봉이 하늘 높이 솟아 있네 / 萬歲高峯揷翠岑

     

    *동선(銅仙) : 불상

    *주망(珠網) : 그물 모양의 휘장*

    *보림(寶林) : 칠보수림(七寶樹林)의 약칭으로 절을 뜻함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