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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령 성주사지의 보물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1. 4. 26. 18:32

    성주사지 사적307호,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법왕원년(599년) 창건된 오합사(烏合寺)로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성주산파(聖住山派)의 중심사찰이었다. 신라 문성왕때 무염(無染)국사가 중창하며 왕이 성주사로 하사하였다. 임진란때 전소되었으며, 최치원이 지은 낭헤화상백월보광탑비, 4기의 석탑, 석등, 석불입상, 석계단이 전하고 있다.

     

    성주사지 석등 충남유형문화재33호, 통일신라시대, 옥개석(지붕돌)에 비해 등불을 두는 화사석과 받침기둥(간석)이 가늘다. 팔각 지붕돌 위의 상륜부가 파손되어 있고 높이 2.2m이며 화강암 재질이다.

     

    성주사지 오층석탑 보물19호, 성주사의 불탑으로 2층 기단위에 세운 높이 634m의 5층 화강암 석탑이다. 기단부와 옥개석 찹신석이 완만하게 균형을 이루며 우아하고 경쾌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1층 몸돌에 사리공이 있으며 기단부와 몸돌사이에 괴임돌이 특징이다. 통일신라 석탑양식은 2층기단 위에 3층석탑인데 5층석탑이 올려져 있다. 백제탑과 신라탑의 혼합양식이다. 상륜부가 파괴되어 있다.

     

    성주사지 석계단 충남문화재자료140호, 성주사 금당을 오르는 석계단이다. 계단 양쪽에 사자상인데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1896년 도난당한 것을 아직 찾지 못하여 복원한 것이다.

     

    금당 초석과 오층석탑

     

    성주사지중앙삼층석탑 보물20호, 성주사지 금당지 뒤에 위치한 세개의 석탑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와서 2층기단 위에 3층석탑의 구조는 같으나  규모가 축소되었다. 재료는 반려암이며 높이 4.1m 상륜부는 소실되었다. 안정감이 있으나 지붕돌이 날카로운 것이 특징이다. 성주사사적기에 정광 가섭 약사여래사리탑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발굴조사 결과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성주사지서삼층석탑 보물47호, 2층기단 위에 3층석탑으로 면석과 탑신석에 우주와 탱주가, 지붕돌에는 4단의 층급받침이 있는 등 통일신라 말기의 양식이며 화강암 높이 443cm이다. 지붕돌에 작은구멍은 행사시 장식을 매달아 화려함을 보여줄 목적이었다. 상륜부는 소실되었고 성주사사적기에 정광 가섭 약사여래사리탑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성주사지 동삼층석탑 보물2021호, 2층 기단 위에 3층 석탑이며 면석과 몸돌에는 기둥이 새겨져있고, 지붕돌에는 4단의 층급받침이 있는 통신말기의 양식이다. 1층몸돌에 문 그림을 새기고 그 안에 부처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 상륜부가 없다. 중앙탑과 서탑은 일제때부터, 동탑은 2019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성주사사적기에 정광 가섭 약사여래사리탑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성주사지석불입상 충남문화재자료373호, 풍화가 심해 얼굴 귀 코 모두 일그러졌다. 오른손을 내리고 왼손을 배에 대고 있는 형태이며 손도 사라졌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었으며 어깨부터 배까지 U자 모양의 무늬를, 양팔에는 계단식무늬를 표현하였다. 소박한 모습으로 보아 고려후기 조선사이 민불(民佛)로 추정된다.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 국보8호, 통일신라 말기 진성여왕4년(891)에 선문9산 중 성주산문을 일으킨 무염(無染)대사(801~888) 낭혜화상을 기리기 위해 최치원이 왕명에 따라 지은 비석으로 10세기 초에 설립하였다. 5천120여 자의 비문은 최인연(崔仁渷)이 해서체로 무염의 성장, 출가, 중국유학, 성주사 중창 등이 기록되어 선종사와 신분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남포 오석이 재료이며 보존상태, 조각술, 크기 등 당대 최고의 탑비로 인정받고 있다.

     

     

    성주사지 돌담 밑에는 광대수염이 한창 무더기로 피어나고 밖으로는 낭혜화상탑비문을 작성한 문창후 고운 최치원의 신도비가 멀찍이 보인다. 박정희 서(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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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사지에서 / 이봉주

     

    부처가 떠난 자리는 석탑만 물음표처럼 남아 있다

    귀부 등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득히 목탁소리 들리는 듯한데

    천 년을, 이 땅에 새벽하늘을 연 것은

    당간지주 둥근 허공 속에서 바람이 읊는 독경 소리였을 것이다

    천 년을. 이 땅에 고요한 침묵을 깨운 것은

    풍경처럼 흔들리다가

    느티나무 옹이진 무릎 아래 떨어진 나뭇잎의 울음소리였을 것이다

    붓다는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설법 하였으니

    여기 절집 한 칸 없어도 있는 것이겠다

    그는 풀방석 위에 앉아 깨달음을 얻었으니

    불좌대 위에 풀방석 하나 얹어 놓으면 그만이겠다

    여기 천년을 피고 진 풀꽃들이

    다 경전이겠다

    옛 집이 나를 부르는 듯

    문득 옛 절터가 나를 부르면

    천 년 전 노승 발자국 아득한데

    부처는 귀에 걸었던 염주 알 같은 생각들을

    부도 속 깊게 묻어 놓고 적멸에 드셨는가

    발자국이 깊다

     

    2020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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