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보은 법주사法住寺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17. 1. 1. 23:03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에 걸맞게 국보 3점, 보물 12점, 지방유형문화재 22점, 문화재자료 2점, 천연기념물 2점을 간직한 사적 503호. 명승 61호, 의 사찰이다 

    호서는 제천 의림호의 서쪽에 위치한 충청지방, 가람은 산스크리트 saṃghārāma를 음역한 승가람마, 승가람의 준말인데 우리말로는 절이다.

    산스크리트어 가람 말고 우리말 가람 은 한자어 강(江) 에 밀려 사라졌다. 뫼 가 산(山) 으로 변신한 것처럼.

     

    앞에 비석 두 개는 팔상전을 중건한 백암대사비이며, 뒤에 전각은 유형문화재 제167호인 속리산사실기비로 속리산의 내력과 관련 사실을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쓴 비석이다.

     

    금강문. 안에는 물론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상이 있다.

     

    사천왕문.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다. 위 소조사천왕상(塑造四天王像)은 2023년 보물2226호로 지정되었다.

     

    국보64호인 석연지(石蓮池)는 신라 성덕왕 때 극락정토에 있는 연지를 상징하여 만들었다. 연지문양이 왜이리 화려할까.

     

    유형문화재 제232호인 능인전(能仁殿).  중생을 교화하여 널리 이로움을 주는 석가와 그의 제자를 모신 전각이다. 법주사의 적멸보궁이다.

     

    유형문화재 제16호인 세존사리탑이 능인전 뒤켠에 있다.

    홍건적의 난을 평정한 공민왕이 양산 통도사에 있던 부처 진신사리 1기를 봉납하기 위해 세웠다.

     

    물을 담아 두던 유형문화재 제70호인 석조(石槽)

     

    보물 216호인 마애여래의좌상(磨崖如來倚坐像)의 가장 큰 특징은 의자에 앉아 있는 의좌상과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비사실적(非寫實的, Non-photorealistic rendering) 수법이다.

     

     

    현존 유일의 목탑(木塔)인 팔상전(捌相殿)은 국보 55호이다.

    팔상전(八相殿)이란 부처님 일대기의 대표적인 여덟 가지 장면을 담은 탱화인 팔상도와 불상을 봉안한 전각이란 뜻이다. 팔상도란 1)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2)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에게 태어나는 장면, 3)궁궐의 네 문밖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 4)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5)설산에서 고행하는 장면, 6)보리수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 시키는 장면, 7)성불 후 녹야원에서 설법하는 장면, 8)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는 장면 등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1602년부터 사명대사(송운 유정)과 벽암대사에 의해 조선 인조 2년(1624)에 다시 복원되었다.

     

    팔상전 2층 네 귀퉁이에 하나씩 네 개의 난쟁이상이 있다. 난쟁이상은 공포를 구성하는 수서 위에 있는 두 개의 연꽃봉오리 대좌에 쭈그리고 앉아 두 팔과 머리로 추녀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눈은 왕방울 눈이고, 나선형으로 표현된 눈썹과 수염은 짙은 색깔이다. 이 난쟁이 형상은 불교 외호신중의 하나로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양함과 동시에 불자와 불전을 수호한다.

     

    팔상전 지붕사이로 보이는 금동미륵대불. 25m 높이에 160톤의 청동으로 주조되었다.

     

    법주사 풍경소리 / 목필균

     

    어깨 누르는 짐을 메고

    법주사로 들어서는 길

    뎅그렁뎅그렁

    대웅보전 풍경소리 마중 나오고

    청동미륵불님 내려다보신다

    절에 자주 오지 못함을

    죄스럽게 말하지 마라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문은 늘 열려있느니라

    이승에 얼룩진 손과

    불국의 문고리 잡으려는 손이

    합장으로 마주 한다

    비우려 해서 비워지면

    버리려 해서 버려지면

    속세를 등질 일이 무엇이랴

    수만 개의 망상이

    소멸되기를 바란다면

    그도 욕심이라

    무릎 끓어 올리는 절마다

    비워지는 가슴앓이들

    잠시 세상이 평화롭다

    범종각의 목어

     

    신라 성덕왕 때 조성한 국보 5호인 쌍사자석등은 신라 석조예술의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뒷발은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 사자는 입을 벌리고 있어 역동성을 보이므로 수컷으로 해석을 하고, 오른쪽 사자는 입을 다물고 있어 안정적이므로 암컷으로 해석하고 있다. 쌍사자 기단부터 화반까지 통돌을 깍아 만들었으니 가히 돌을 나무다루듯 하였다는 석조예술의 진면목을 보는 듯하다.

     

    원통보전은 보물 916호이다. 보물 1361호인 목조관음보살상을 모신 전각이다.

     

    대웅보전은 보물 915호이고 무량사 극락전과 화엄사 각황전에 이은 3대 불전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인조 때 벽암대사가 중건하였고, 보물 1360호인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상대의 각 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는 사천왕석등은  보물 15호이다.

     

    지장보살과 명부세계의 10대왕을 모신 전걱인 명부전(좌)과 산신, 칠성, 독성 세 분을 탱화로 모셔 놓은 삼성각(우).

    다사다난했던 2016년 마지막날 세속을 멀리하고파 뜻깊은 촬영일로 잡았더니 하늘이 하루종일 찌뿌둥하여 스산하다.

    주요 문화재

    현존하는 건물은 1624년에 중건된 대웅전, 1605년에 재건된 국내 유일의 5층 목탑인 팔상전, 1624년에 중창된 능인전(能仁殿)과 원통보전(圓通寶殿)이 있고 이밖에 일주문·금강문·천왕문·조사각·사리각, 선원(禪院)에 부속된 대향각·염화실·응향각이 있다. 또한 법주사의 중심법당이었으며 장육상(丈六像)을 안치했었다는 용화보전(龍華寶殿)은 그 터만 남아 있고, 이곳에 근대조각가인 김복진이 조성 도중 요절했다는 시멘트로 된 미륵불상이 1964년에 세워졌다.

    1986년 이를 다시 헐고 1989년 초파일에 높이 33m의 청동미륵불상이 점안(點眼)되었다. 이밖에 국가지정문화재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석련지(石蓮池:국보 제64호)·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신법천문도병풍(新法天文圖屛風:보물 제848호)·괘불탱(보물 제1259호)과 지방지정문화재인 세존사리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석조(石槽: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0호)·벽암대사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9호)·괘불(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9호)·철확(鐵鑊: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등이 있다. -다음백과

     

    마애여래의좌상(磨崖如來倚坐像)을 지나가면 극락보전을 품은 수정암이 나타난다.

     

     

    쌍사자 석등 - 장은수  

     

     

    이 안주할 수 있는

    脫俗의 절 法住寺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천하 호령하던 사자 한 쌍이

    연꽃으로 감싼 石燈 높이 들었다

     

    하늘엔 이요

    땅에 百獸獅子

    몸통과 다리에 저 근육을 보라

    가슴 맞대고 힘 모아

    갈기 날리며

    두 눈은 창공을 날듯 기세가 등등하다

     

    신라의 숨결이 살아

    맥박이 뛰고

    승리와 희망의 불 밝히고

    한마디 불평도 없이

    그렇게 일천삼백 년을 살아오지 않았는가

     

    이 땅에 사자의 호통이

    천지를 진동한 지 오래건만

    俗離에서 여울져 간 메아리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석등에 불 밝히고 한 쌍의 사자가

    무리들을 이끌고 달려간다.

    지구 저편까지

    새로운 실크로드를 향해서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