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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12. 3. 20:38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80, 병마절도사가 있던 영문(營門)으로 지금의 육군본부 정도일까.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하멜보고서』의 저자 헨드릭 하멜(Hendric Hamel)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강진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와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위해 2007년 개관하였다. 네델란드 호르쿰 출생의 헨드릭 하멜, 동인도회사원으로 무역을 위해 16653년 일본 나가사끼로 향하던 중 제주에 표류되고 효종을 만났으나 강진과 여수로 유배를 당하고 13년간을 조선에서 생활한다. 48명의 ‘스페르베르 호’ 선원은 일본을 통해 탈출하여 귀향하지만 그 사이 선원은 16명으로 줄었다. 하멜표류기로 알려진 하멜보고서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타원형의 목조건축으로 지어진 왼쪽의 전시관은 하멜이 표착한 남도의 섬을 상징한다.
하멜 일행의 강진생활은 부임하는 관리가 누구인지에 따라 갈렸다. 인품이 좋은 관리가 오면 생활이 편했지만 그렇지 않을때는 노역에 시달리거나 하루종일 밖에 서 있어야 했다. 추위나 그근이 심한 때에는 생계를 위해 그들의 모험담을 들려주고 돈을 받거나 동냥을 하기도 했다.
전시실은 『하멜보고서』를 비롯하여 하멜의 생애, 17세기 조선과 네덜란드의 사회·문화·역사적 상황, 그리고 강진군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의 자매결연 등 각 주제별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하멜기념관은 1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70여 점의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하멜보고서, 원본복제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선 선원 헨드릭 하멜이 1653년 스페르베르 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중 난파되어 제주도에 표류한 후 조선에서 13년간 억류되어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탈출, 1668년 네덜란드로 귀국하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책. 귀국한 하멜은 회사에 13년간 받지 못한 임금 청구 증거자료서이다.
조선시대 나막신
필자가 네델란드여행시 방문했던 잔세스칸스 풍차마을의 나막신공장
하멜 일행이 착용하던 복장
상업발전으로 금융자본이 발달하고 부유층은 문화예술에 청화백자의 유행기를 맞는다.
병영의 문화
강진군 병영면 한골목길의 하멜식담장. 골목이 크고 길다 하여 부른 이름이다. 등록문화재 264호. 담 쌓기 방식은 ‘빗살무늬 방식’인데 이 방식은 타 지방과 다른 독특한 방식이다. 빗살무늬 방식은 아래쪽은 큰 화강석으로 쌓고, 중간 위쪽부터는 얇은 돌을 약 15° 정도 눕혀서 촘촘하게 쌓으며, 다음 층에는 다시 엇갈려 쌓는 방식이다.
전라병영성(康津 全羅兵營城) 서문.
전라병영성(康津 全羅兵營城) 성벽.
전라병영성(康津 全羅兵營城) 동문, 사적397호. 조선 1417년(태종 17년)에 초대 병마도절제사 마천목 장군이 축조하여 1895년(고종 32년) 갑오경장까지 조선왕조 500년간 전라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였다. 수많은 역사와 일화 속에 민족저항 정신의 산 증거로 존속되어 왔으며, 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불타고 갑오경장으로 폐영되었다. 성곽 전체 길이는 1,060m이며, 높이는 3.5m, 면적은 93.139㎡이다. 지정 당시 성곽 내 육군 지휘부 시절의 건물이나 유적은 소실되어 없었으며, 성곽만 일부 남아 있는 상태였다. 1997년 사적 지정 이후 1998년부터 성곽, 남문, 동문 등을 복원하였다.
전라병영성 남문 진남루(鎭南樓)는 중층누각이다.
전라병영성 배전각(拜箋閣). 2007년 복원. 병영면 하고마을의 동북 배진강 아래쪽에 홍교가 있고 그 옆 도로와 도로밑 논 근처 옛 병영과 관련된 건물의 명칭이며 정월과 동지, 그리고 임금의 탄신일이면 이 건물의 마당에 붉은색의 의장기를 세워놓고 형식을 갖춘예로 절을 올리던 즉 존경의식을 실행하던 장소이다. 병와가곡집을 편찬한 병와 이형상(1653-1733)이 제주목사 재임때인 1703년 11월 11일에 엮은 탐라순력도에 대정을 순회하던 의식인 배전 그림이 있다. 배진강의 유래도 이 배전각 건물에서 유래되었으므로 배전각홍교라 불러야 한다. 강진신문 양광식기자
전라병영성 홍교. 시도유형문화재 제129호. 1865년에 간행된 대동지지(大東地志)의 교량(橋梁)편에 석교, 작천교, 배전각홍교 가 등제 되었고, 두번째 안내판에는 107세가 된 유한계(劉漢啓1688-1794)가 1790년에 오래 살았다는 뜻으로 숭록대부의 직위를 받자 그 기념으로 자금을 대고 양한조가 감독을 맡아 건립하게된 무지개 다리라고 적혀 있었다. 이맛돌(키스톤)에는 무늬가 없으며 여의주를 물고 상류를 향한 용두(龍頭)가 보인다.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더라도 물의 신인 용이 이를 통제하여 홍수가 나지 않기를 소원했을 것이다.
안내문에 "다리 부근에 살던 머슴 유(劉)씨 총각과 부유한 주인의 딸 김(金)씨 사이에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인연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 아들 유한계(劉漢啓)가 있었는데, 그가 숭록대부(崇祿大夫)가 되어 돌아왔다. 홍교는 그의 금의환향을 기념하기 위해 양한조(梁漢祖)란 인물이 감독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유한계는 실존인물이며 그의 부친은 유신방(劉信芳)이며 장흥 출신의 학자 유호인(劉好仁)의 후손이다. 유한계는 과거에 급제하여 정승에 오른 것이 아니라 107세까지 장수하여 1698년 수직(守職)으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종2품)가 되었고, 1730년 숭록대부가 되었던 인물이다. 병영(兵營)은 1417년(태종 17)에 설치한 군사 요충지이고, 그 관문인 배진천(背津川)에 건축된 홍교는 일명 ‘배진강 다리’라고도 한다. 직사각형 화강석재 74개를 26열로 정교하게 무지개형으로 서로 짜 맞추고 잡석을 채워 보강한 후 점토로 다리 위를 다졌다. 상단 중앙의 용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돌출된 용두(龍頭) 조각의 모습은 매우 해학적이다. 이러한 다리들은 전남 지역에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데, 이 중에서 특히 병영성 홍교는 그 자태가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보여 주고 있으며 조선후기 다리 중에서 수작으로 꼽을 만하다."
※ 숭록대부(崇祿大夫); 조선시대 宗一品의 上階로서 東西班 문무관에게 주던 品階
※ 수직(守職); 품계는 낮으나 직위는 높은 벼슬을 통틀어 이르는 말
전라병영성 벅수(法首). 전라병영성 벅수(法首). 장승과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다. 황준구는 장승은 큰길을 안내하는 기능을 하고, 벅수(法首)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구분하였다. 그래서 한하운의 '장승'이란 시를 '법수'로 바꾸어 재탄생시킨 시는 아래와 같다. 화엄경(華嚴經)에도 벅수는 법수보살(法首菩薩)이라고 하였다. 병영성을 지키고 보호하던 수문신(守門神)으로 병영성을 쌓을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을 1984년 분실하었고 1988년에 복제품을 만들어 세웠다. 벅수에 대한 별도의 제사의식은 없었고 다만 마을 사람들에 의해 벅수에 입맞춤을 하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전설과 아들 낳기를 위한 기자(祈子信仰) 풍속이 전해진다.
벅수法首 / 한하운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이
동구 밖에 서서,
'벅수'의 직절 조각直截彫刻이
무엇 때문에 눈알을 부라리나,
무엇 때문에 무시무시한 이빨을 내세우나
이 형形의 의미는
주력呪力인가
이 위대한 미분화未分化는
조상들의 지성과 행동이런가
원시가 현대 문명을 넘어선
오늘의 '쉬르레알리슴'
시원의 미美 원시의 생명력
이 괴위魁偉한 조형 언어造形言語는
그것은 노怒,
그것은 공恐,
그것은 이異,
그것은 기奇,
그것은 혁嚇,
그것은 경駑,
그것은 탄歎,
그것은 허虛,
그것은 포怖,
그것은 응凝,
그것은 의疑,
그것은 매呆,
그것은 살殺,
그것은 사死,
그리고 원願,
그리고 기析,
그리고 도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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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눌린 백성들이,
생존의
길흉화복의
액막이 살煞풀이를,
하늘과 땅을 믿고,
하늘과 땅만을 믿고 살수 없어,
천하대장군 매달려.
마음의 수호신이라 믿던,
이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도
이제 동구洞口에서 볼 수 없는
원시의 '알리바이',
오늘의 후예는 오늘은 오늘,
오늘을 살아가는 오늘만의 오늘은,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의 조형 언어造形言語가,
눈망울 가슴으로 불이 당겨져,
그 마음 노怒,
그 마음 공恐,
그 마음 이異,
그 마음 기奇,
그 마음 혁嚇,
그 마음 경駑,
그 마음 탄歎,
그 마음 허虛,
그 마음 포怖,
그 마음 응凝,
그 마음 의疑,
그 마음 매呆,
그 마음 살殺,
그 마음 사死.
그리고 원願,
그리고 기析,
그리고 도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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