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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운조루 고택(雲鳥樓 古宅)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4. 6. 25. 16:01

    행랑채 지붕 너머 위성류가 거센 남녘바람에 한쪽으로 쏠리며 괴성을 지르고 있다. 위성류 渭城柳 Tamarix chinensis 제비꽃목 위성류과의 소교목, 중국 원산 높이 5m. 잎은 어긋나고 바늘같이 가늘며 길이 1∼3mm로서 작다. 끝이 뾰족하고 가지를 둘러싸며 잿빛을 띤 녹색이다. 가을에는 작은가지와 함께 진다. 꽃은 1년에 2번 연한 분홍빛으로 피는데 가지 끝에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맞아, 초여름을 뜨겁게 달구는 기생초는 어우동인지 계월향인지 

    호랭이 담뱃대 물던 옛날 얘기가 되어버린 천원지방(天圓地方)

    운조루雲鳥樓, 이름 참 멋지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머릿글자만 따온 말로 추정한다.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다. 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 오르고 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지로 돌아오네. 영조 52년(1776)에 삼수부사를 지낸 낙안군수 유이주(柳爾胄)가 지었으니 조선 중기의 양반집이다. 류이주는 무관으로서 성곽 건축과 궁궐공사를 담당해 수원화성, 남한산성, 상담산성, 낙원읍성 등을 건축한 사람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은 산과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어 금환락지(金環落地)라 하는 명당자리로 불려왔다. 금환락지(金環落地), "한반도를 절색 미녀로 치면 구례땅은 그녀가 무릎을 꿇고 앉으려는 자세에서 옥문에 해당하고,그녀가 신랑과 잠자리를 하기 직전에 풀어 놓은 금가락지가 바로 이곳 운조루 자리라 한다. 운조루는 해남의 녹우당 윤선도 고택, 진도의 운림산방과 함께 조선 땅 3대 명당 중 하나로 꼽는다. 

    집의 구성은 총 55칸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랑채는 '一'자형으로 2칸이 앞쪽으로 튀어나와 누형식을 취하고 있다. 1칸은 방이고 다른 1칸은 다락으로 되어있다. 누각아래 기둥 서쪽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층계로 하지 않고 경사진 길로 만들어 특이하다.

    이택상주(麗澤相注)를 보고 깜짝 놀랐다. 麗는 고구려 화려강산 할 때 려 자인 줄로만 알았지 짝 이, 마을 리의 뜻을 가진 것까지는 생각을 못하였기 때문이다. 아는 척 아니하여 천만다행, 그만 있으면 중간은 간단 말이 딱이다. 다른 사람을 돕던 운조루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학술적 행사를 갖는 모양이다. 좋다. 주역(周易) 태괘(兌卦)에 나오는 말이라는데 두 개의 연못이 맞닿아 서로 물을 댄다. 운조루의 연못은 하나였지만 남계서원의 연못은 동서 두 개였다. 한 쪽이 넘치면 다른 한 쪽으로,, 한 쪽이 모자라면 다른 한 쪽의 물이 서로를 보완하여 상생한다. 모서리 앞에 활주기둥이 보인다.

    운조루 사랑채의 디딤목

    안채와 장독과 우물. 안채는 사랑채의 오른쪽에 있는 건물로 사랑채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크며 평면이 트인 'ㅁ'자형이다. 중심부분은 대청이며, 좌우로는 큰방과 작은방이 자리잡고 있다. 띠살문이 단정하고 곱다.

     

    운조루 기념관에 있다는 뒤주에는 

    운조루의 주인 유이주(柳爾胄)는 굶주리는 사람들이 쌀을 퍼가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도록 쌀뒤주를 개방했다. 한 가마 반이나 들어갈만한 나무로 만든 큰 쌀통에 작은 손잡이를 만들고 거기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어두었다. 다른 사람도 누구나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뜻이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었던 이웃들에게 이 집의 뒤주는 단비 같은 것이었다. 쌍산재에도 이런 뒤주가 있다고 한다. 요즘 말로 아주 멋진 기부문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구례 3대 전통 가옥은 운조루와 같은 마을에 있는 곡전재 (穀田齊) , 그리고 쌍산재 (雙山齋)를 친다. 사진은 한국고문서자료관에서. https://archive.aks.ac.kr/family/main?fid=B02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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