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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심씨 송소고택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3. 5. 28. 13:47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지은 송소고택 안채. 만석 부잣집답게 안채 규모가 상당하다. 당시 건물은 7채에 총 99칸의 대저택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별채
송소고택(松韶古宅), 국가민속문화재250호. 조선 영조때 만석꾼인 심처대(沈處大)의 7세손인 송소 심호택(沈號宅)이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마을로 옮겨오면서 지은 99칸의 저택으로 1880년경에 건립되었다. 솟을대문에 홍살을 설치하였으며 큰사랑채는 정면5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이다. 큰사랑채는 주인이 거처하고 우측에 작은사랑채가 있다. 안채는 안주인이 거처하고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대청마루에는 세살문 위에 빗살무늬의 교창을 달았다. 건물마다 독립된 마당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있는 등 조선 후기 상류층 주택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송소고택은 경주 최부자와 함께 250여년간 부를 누리던 대부호의 고택이며 청송 삼부자가 살았던 집이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은 지난해 6월 25일 폴란드에서 열린 2011국제슬로시티총회에서 국내에선 9번째, 세계에선 143번째로 송소고택이 있는 덕천마을 전체를 슬로시티(Cittaslow)로 인증했다.
얕은 담장 하나와 쪽문 하나로 이웃해 있는 송정고택(松庭古宅)은 1914년 건축한 송정 심상광(沈相光)의 살림집이다 경북문화재자료631호. 심상광은 송소(松韶) 심호택(沈號澤)의 차남으로 도산서원장, 병산서원장, 청송향교 전교를 지낸 인물이다. 큰집인 송소고택과 연접해 있으며, 안채 사랑채 별채가 각각 독립되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ㅁ자 배치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바깥쪽에 큰 대문이 있고 대문 정면에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곳에 작은대문이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백방과 고방이 연결되어 있다. 조선후기 상류사회의 전통가옥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들어갈 때 안 보이던 SBS월화드라마 꽃선비열애사 촬영홍보물.
청송 심씨(靑松沈氏)는 세종대왕의 왕비인 소헌왕후를 비롯해 왕비가 넷, 부마가 넷, 정승이 열셋으로 전통적인 명문대가다. 청송 심씨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文林郞=고려시대 때 종9품 문관의 품계)으로 위위시승(衛尉寺丞)을 지낸 심홍부(沈洪孚)를 시조로 받들고, 그의 증손인 덕부(德符)와 원부(元符) 등 크게 두 가문으로 나뉜다. 덕부는 고려 말 왜구토벌의 공훈을 세우고 위화도회군을 도와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을 거쳐 청성충의백(靑城忠義伯)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을 청성(청송의 옛 지명)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부는 정몽주와 길재 등과 더불어 새 왕조의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에 들어가 유훈을 지키면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보였다. 현재 청송에 흩어져 사는 후대들은 대개 원부의 후손이 많다. 송소 심호택의 둘째 아들 송정(松庭) 심상광(沈相光)은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원장을 역임하고 청송향교의 전교를 2회에 걸쳐 맡은 학문이 뛰어난 유학자로 지금도 매년 유생들이 송정학계를 열고 있다. https://news.imaeil.com/page/view/2012070407570501438
[청송 덕천마을] “느림이 좋아”…전통테마마을 거듭난 청송 심씨 본향 - 대구신문 (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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