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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성동 독락정(獨樂亭) 역사공원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3. 5. 11. 18:12

    독락정(獨樂亭). 2013년 겨울에 와서 일출촬영을 한 기억이 있다. 고려 후기 충신이자 부안임씨 전서공파 파조인 임난수(林蘭秀 1342~1407) 장군의 절개와 의리를 기리기 위하여 아들 임목이 조선 세종 19년(1437)에 지은 정자로 그 후 여러 차례 고쳤다. 임난수 장군은 고려 공민왕 때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여 큰 공을 세우고 전서(각부의 장관)의 벼슬에까지 올랐으나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한 하늘에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 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지금의 세종시 연기면 양화리로 낙향하여 생애를 마쳤다. 독락정은 생사축와형(生蛇逐蛙形,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고자 강가까지 쫓아 내려온 형국)으로 금강가 언덕 끝에 금강을 내려다보고 서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후열 가운데 칸에 창호를 달아 마룻바닥을 만들고 나머지 부분은 개방하였다. 기단은 화강석 장대석이며 8각 장초석에 원형 기둥을 세우고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조성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8호. 세종시 갈매로(나성동) 208.

     

    임씨가묘(林氏家廟) 및 임난수신도비. 세종특별시 향토문화유산 제42호.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世宗 林蘭秀 은행나무)가 세종시 기념물 제8호 연기세종리은행나무라는 이름으로 지정 보호 받다가 2022년  5월 12일 천연기념물로 승격되었다. 전월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는데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지적받고 있다. 단풍 들었을 때 찾아볼 요량이다.

     

    의병장 임대수(林大洙)공적비,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된 뒤 항일운동에 참여, 그 뒤 19개군에 걸쳐 충남 일대의 의병장으로 활약. 1907년 의병 50명을 인솔하여 일본군 은진헌병분견소를 습격하고 총기·탄약과 서류 등을 탈취, 구금중이던 애국지사 여러 명을 구출. 1911년 공주에서 일본군과 교전중 동지 6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본래 금강변에  덜렁 독락정만 있던 것을 역사공원으로 꾸며 지금도 공사 진행 중이다.

    독락정 이름을 가진 정자는 옥천 안남에도 있고, 독락당(獨樂堂) 이름으로는 회재 이언적(1491∼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경주에 돌아와 지은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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