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 운림고택(雲林古宅)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10. 24. 22:19
전세버스 창문을 통해서 내다본 청도 임당리. 문화재 안내판에는 박경신과 두 아들 박지남, 박철남 삼부자가 의병에 참가한 충절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임호서원과 김씨고택(내시 김일준 통정대부, 중요민속문화재245호)을 소개하고 있다. 내관(內官)은 조선 시대에, 내시부에 속하여 임금의 시중을 들거나 숙직 따위의 일을 맡아보던 남자로 모두 거세된 사람이었다. 부인을 들인 뒤 입양한 양자를 다시 궁중으로 들여보내 내시 생활을 하도록 하면서 대를 이은 것이다. 조선 후기에 궁중 내시(宮中 內侍)로 운림고택(雲林古宅)은 19세기 후반 15대 내시로 종2품 상선의 품계를 받은 운림 김병익(金秉翼, 1842~1925)이 건립했다. 하여 운림고택이라고 소개된 곳도 있으며, 혹은 정3품 통정대부에 올랐던 16대 내시 김일준..
-
청도 운강고택(雲岡故宅)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10. 24. 21:02
청도에 섶마리한옥마을(신지리한옥마을)을 찾은 연유는 운강고택(雲岡故宅)과 만화정을 보기 위해서다. 섶마리는 섶다리가 있던 마을에서 유래되었다. 逍遙堂(소요당) 朴河淡(박하담, 1479∼1560)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터인데 그 후손들이 번창하여 밀양박씨 집성촌이 된 것이다. 운강고택의 입구는 화방벽(火防壁)이다. 건물 안에 불이 났을 때 그 불길이 다른 곳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쌓은 흙돌담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와 어울려 가을 정취를 뿜어낸다. 운강고택은 순조 9년(1809)에 朴廷周(박정주, 1789∼1850)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한 가옥으로 雲岡(운강) 朴時默(박시묵)이 순조 24년(1824)에 중건하고 1905년 朴淳炳(박순병)이 다시 중수하였다...
-
초피나무 Zanthoxylum piperitum초목류 wild flower/운향과 Rutaceae 2024. 10. 23. 22:48
김씨고택(운림고택) 가는 길의 초피나무 Zanthoxylum piperitum, 제피나무, 山椒, 동의보감에초목(椒木), 촉초(蜀椒), 초엽(椒葉), 화초(花椒), Japanese Pepper,운향과의 암수딴그루로 황록색 꽃이 새 가지 끝에서 피어난다. 수꽃의 수술은 4~8개인데 암꽃의 암술은 2~3개이다. 산초보다 향이 강하다. 산초는 7월에 초피는 4월에 꽃이 핀다. 산초는 가시가 어긋나고 꽃잎이 있다. 초피는 가시가 마주 나고 꽃잎이 없다. 초피를 산초(山椒)라고도 부르지만 엄연히 다른 것이다. 산초나무는 학명을 Zanthoxylum bungeanum로 한다. 왕비나 후궁 등 ‘왕의 여자’들이 거처하는 방을 초피나무 방이란 뜻으로 초방(椒房)이라 불렀다고. 초방은 초피가루를 벽에다 발라 향기로움으로..
-
운문사 처진소나무 Pinus densiflora문화 culture/천연기념물 natural monument 2024. 10. 22. 14:03
운문사 처진소나무 Pinus densiflora f. pendula Mayr. 천연기념물 180호. 북한어로 늘어진소나무. 나이는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 처진 소나무는 고승(古僧)이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꺾어서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스님들은 매년 봄·가을에 뿌리 둘레에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려주는 등 정성을 다하여 가꾸고 있다. 겉에서 보아 반송으로 알고 있었으나 속으로 들어가니 3m 높이에서 뻗은 가지가 늘어지는 특징이 있어 처진소나무로 알려지게 되었다. 처진소나무는 유형상 두 가지가 있다. 삿갓처럼 생겨 삿갓송, 버드나무처럼 생겨 유송이라 한다. 삿갓송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운문사 처진소나무이며, 청도 동산리 처진소나무는 유송(柳松)으로 유명한데 천기295호이다. 운문사 처진 ..
-
청도 호거산(虎踞山) 운문사(雲門寺)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4. 10. 21. 23:04
비구니 사찰이라는 호거산(虎踞山) 운문사(雲門寺), 비구니 사찰은 정돈되어 깔끔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미지가 있다. 문을 들어서기 전 맥문동 밭에 눈 익은 토기가 먼저 들어온다. 신라시대 기마인물형토기인데 중앙박물관에 있는 경주 노동동 금령총 출토분1쌍(국보91호), 경주 덕천리 출토분, 김해 덕산리 출토분 1개(국보275호) 총4개가 전한다. 높이 한 뼘 정도 23.4cm 의 이 조그만 토기에 대해 고고학계에서는 술주전자로 해석하지만 최근 김정수는 '신라 기마인물형토기의 용도에 관한 소고'에서 실험을 통해 주전자가 아니라 등잔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동안 고고학계에서는 주전자이며, 명기(明器, 장사 지낼 때 무덤 속에 주검과 함께 묻기 위해 만든 그릇)로 알려져 있었다. 속이 비어 있어 술을 넣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