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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김명관고택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18. 1. 19. 18:27
얼마 전까지는 김동수고가라 하였는데 선조인 김명관이 정조8년(1784)에 지은 집이라 하여 김명관고택으로 개명하였다. 국가민속문화제 제26호로 지정될만큼 조선 중기 99칸을 자랑하는 상류층 주택의 면모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바깥행랑채 대문 앞에는 하마석(下馬石)이 놓였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북모양의 빗장이 눈길을 끈다. 2차 방문 2020년 1월에 갔더니 KBS 진품명품이라나 무슨 드라마라나 출연후 절도되어 다시 깎아 맞추었다. 세상 천지가 도둑놈 사기꾼으로 드글드글하다.
고택의 왼쪽입구에 호지(護持)집이 있다. 유일한 초가로 집을 지키는 노비가 살았다. 지금은 문화해설사의 쉼터로 사용한다.
벗듯한 사랑채의 뒤쪽에 정방(淨房)이 이쁘기만 하다. 뒷간, 측간(厠間)이라고도 했으며 지금의 화장실이다. 장성 필암서원에도 동일한 형식이 정방이 있다.
협문을 지키는 300살 향나무는 노쇠해 있다.
안행랑채에서 본 안채
안행랑채의 지붕과 지붕
안채 모서리에서 본 안행랑채
안행랑채 좌우 모서리에서 본 안채
안채에서 마당을 가로질러 사랑채까지 뚫린 문
부엌의 빗살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좋아 한참을 놀았다. 벽면 중앙 왼쪽에 놓인 조왕신(竈王神)을 모시는 공간에 두 개의 항아리가 있다. 정주(鼎廚)가 어원인 정지. 불을 뜻하는 부와 불언저리를 의미하는 부뚜막에서 유래된 부엌. 청산별곡에는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정지 가다가 드로라.(중략) 얄리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 에정지는 부엌 주변.
부뚜막 / 장석남
부뚜막에 앉아서 감자를 먹었다
시커먼 무쇠솥이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솥 안에 금은보화와도 같이 괴로운 빛의 김치보시기와
흙이나 겨우 씻어낸 소금 술술 뿌린 보리감자들
누대 전부터 물려받은 침침함,
눈 맞추지 않으려 애쓰면서
물도 없이 목을 늘려가며 감자를 삼켰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감자를 삼킨 것인지
무쇠솥을 삼킨 것인지
이마 위에 떠도는 무수한 낮별들을 삼킨 것인지
눈물이 떨어지는 부뚜막이 있다
어머니는 부뚜막이 다 식도록, 아궁이 앞에서
자정 너머까지 앉아 있었다 식어가는 재 위의 숨결
내가 곧 부뚜막 뒤의 침침함에 맡겨진다는 것을 짐작했지만 나는 가만히
어머니의 치마 끝단을 지그시 한번 밟아보고 뒤돌아설 뿐이었다
마당 바깥으로 나서는 길에 뜬 초롱한 별들은
모든 서룬 사람의 발등을 지그시 누른다는 것이
이후의 내 상식이 되었다 그로부터
천정이 꺼멓게 그을린 부엌 찬 부뚜막에 수십년을 앉아서 나는
고구려 사람처럼 현무도 그리고 주작도 그린다
그건 문자로는 기록될 수 없는 서룬 사랑이다
그것이 나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학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것을 시(詩)로 알고 그리고 있다
-[뺨에 서쪽을 빛내다], 창비, 2010
안채 벽의 앙징맞은 창
사당 앞쪽에 태산목(泰山木)인가?
안채 뒤꼍에 사당이 있다.
바깥사랑채는 비닐을 뒤집어 쓴 채 보수중
안채 뒤꼍의 안사랑채와 우물
안사랑채
안사랑채가 끝나면 오른쪽 협문이 있고, 마주하는 왼쪽 협문은 잠겨 있는데 동생네 집이다.
동생네 집은 돌보지 않아 폐허로 변해가는 중...능소화가 피면 흙담과 어울려 멋진 그림이 나올 것이다.
골목이 참 곱다.
동생네 집 앞모습.
조선 시대 상류 주택인 전북 정읍 산내 '김명관 고택'은 국가 민속문화재 제26호로 이 마을은 앞에는 동진강(東津江)의 상류가 서남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조선 중기에 건립한 일명 '아흔아홉 칸집'을 감싸 안은 창하산과 앞에 맑은 동진강이 흐르고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에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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