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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구두 시계 그리고 ...심상 image 2012. 1. 25. 21:59
탑정호.
의자 氏의 하루 / 홍일표
빈 의자는 입도 없고 손도 없다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저는 사람이거든요
입도 있고 발도 있어요
제 입과 손을 빌려 드릴까요?
말이 빠져나간 의자를 잡고 흔들어본다
삐걱거리는 오후의 어깨를 들었다 놓는 순간
다리에 붙어 있던 입이 툭 떨어진다
말라버린 입술이 바사삭 부서진다
미안해요
대신 제 입을 드릴게요
입을 떼어 뼈만 남은 의자의 몸에 붙인다
말랑말랑하던 입술이 굳는다
온종일
딱딱한 나무의자에 끼어있는 혀
밤을 동그랗게 오려낸 구멍으로 밤이 빠져나가듯
입 없는 그림자가 창밖 나무 밑에 제 그림자를 묻는다
계간 『서시』 2010년 여름호 발표
탑정호.
버려진 벽시계의 침묵 / 노홍균
버려진 벽시계의 부러진 시침이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등짐이었던 시간의 떨쳐짐이
버림받은 아픔의 시간을 삼키는 중이다.
일생을 기대 살도록
납작하게 제작된 등 짝이며
똑딱똑딱, 똑딱똑딱.
타인의 음성으로 불러야 했던 사분 박 노래까지
훌훌 벗어 던지는 해방의 순간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침묵하는 일이다.
오늘은 하늘을 향해서,
내일은 땅바닥을 향해서
침묵에도 침묵다운 침묵이 있다.
시간으로부터 해방을 위해
목 터지게 봉기할 수만은 없는
버려진 벽시계의 침묵 같은
탑정호.
구두/ 송찬호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 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
- <10년 동안의 빈 의자>(1994) -
탑정호.
빈 소쿠리의 노래 /서지월
너는 지금 내 잠의 어느 변두리에서 쉬고 있는가.
도라지 씀바귀 참비름 취나물 그 목숨들의
수북한 잔치 끝낸 지 오래
젊은 날 어머니 밭둑에서 뛰놀던 바람이여
휘몰아쳐 간 눈발들의 돌아선 뒷모습 앞에
오지 않는 물살을 데불고 夕陽은
저만치 비켜 平床 위에 앉아 있네.
굳어진 돌처럼 돌의 침묵처럼 뜨락의 채송화며
맨드라미며 봉숭아며 물달개비며
꽃燈 밝힌 채 저물고 있네.
내 잠의 숭숭한 모퉁이에 떠 가는
구름 행렬 훔쳐 볼 뿐
꿈 속에서 보았던 흰 날개죽지의 새 한 마리
그 행방을 찾다가 길을 잃어버렸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시간의 맥박소리 들으며
나는 홀로 빈집 지키는 아이가 되어 있네.
가난한 꽃, 1993,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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