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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운교 水雲敎
    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12. 24. 21:34

    갑작스런 영하의 날씨지만 상쾌하다 수운교 솔숲을 걸으니.

    범종각과 광덕문, 문화재 제335호 수운교 종각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로 지정된 범종. 종각은 육각형 평면에 육모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붕 아래에는 다포식 공포와 함꼐 화려한 단청이 장식되어 있다. 범종은 한국 전쟁 때 사용된 탄피를 녹여 만든 것으로 범종 겉면에는 '금룡산 36도솔천 범종' 그리고 '나무아미타불'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육모정의 종각에는 「금룡산 도솔천 범종」이라 명명한 대형 종이 현종되었는데, 범종은 매일 새벽, 정오, 저녁 3회 타종한다. 육모정의 종각은 외 11포, 내 15포의 포집으로 최고 걸작의 건물이다.

    광덕문(廣德門) 지붕의 잡상(雜像). 조선도교사 朝鮮道敎史에 의하면, 궁궐의 전각과 문루의 추녀마루 위에 놓은 10신상(神像)을 일러 잡상이라 하는데 이는 소설 서유기 西遊記에 나오는 인물 및 토신(土神)을 형상화하여 벌여놓아 살(煞)을 막기 위함이라 한다. 어우야담 於于野談에 ① 대당사부(大唐師傅, 삼장법사 현장(玄奘) ② 손행자(孫行者, 손오공(孫悟空) ③ 저팔계(猪八戒) ④ 사화상(沙和尙, 사오정(沙悟淨), ⑤ 마화상(麻和尙) ⑥ 삼살보살(三煞菩薩) ⑦ 이구룡(二口龍) ⑧ 천산갑(穿山甲) ⑨ 이귀박(二鬼朴) ⑩ 나토두(羅土頭)라 하였으나 일정한 규정은 아닌 것 같다. 어떤 곳은 ①용(龍) ②봉(鳳) ③사자(獅子) ④기린(麒麟) ⑤천마(天馬) ⑥해마(海馬) ⑦ 고기(魚) ⑧해치(獬) ⑨후(吼) ⑩원숭이(猴) +가장 앞쪽의 말을 탄 도인상(道人像)하여 11개로 기록된 곳도 있다. 조선시대 전각에서 볼 수 있는 잡상에 수원 팔달문(八達門, 1796)은 4개,  창경궁 홍화문(弘化門, 17세기)은 5개, 경복궁 동십자각(東十字閣, 1865)은 5개,  창덕궁 돈화문(敦化門, 17세기)은 7개, 창덕궁 인정전(仁政殿, 1804)은 9개, 숭례문(崇禮門, 1448)은 9개, 덕수궁 중화전(中和殿, 1906)은 10개. 경복궁 경회루(慶會樓, 1867)는 11개로 일정하지 않고 들쑥날쑥이다.  

    광덕문의 6금강역사. 통도사 성보박물관의 팔금강도, 김룡사 영산회괘불도의 팔금강, 개심사 팔금강, 서울 미타사 천불전의 팔금강도, 봉원사 팔금강도가 유명하다. 통도사 8금강은 벽독금강, 백정수금강, 정제재금강, 대신력금강, 청제재금강, 황수구금강, 적상화금강, 자현신금강이다. 

    광덕문의 역사는 일반적인 사찰의 역사 모습이 아니다. 보통 사찰 문의 왼쪽에는 밀적금강(密迹金剛),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 서 있다. 밀적금강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가지고 항상 부처님을 호위하는 야차신으로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밀적이라고 한다. 나라연금강은 천상계의 역사로 그 힘의 세기가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된다고 한다. 이들의 머리 뒤에는 커다란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다. 이는 이들이 단순히 힘센 이가 아니라 신성한 지혜를 고루 갖추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방어하는 자세로 묘사되고, 나라연금강은 입을 크게 열어 ‘아’ 하고 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흔히 입을 열고 있는 역사를 ‘아금강역사’, 입을 다물고 있는 역사를 ‘훔금강역사’라고 하는데, 이때의 ‘아’는 범어의 첫째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이다. 이 금강역사의 입은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의를 입지 않고 옷을 허리에 걸친 채 주먹을 쥐어 밖에서 안으로 한 팔을 올리고 한 팔을 내린 자세를 취하거나, 한 손으로 칼을 잡고 있는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

    수운교 도솔천(兜率天) 의 정면

    수운교 도솔천의 배면.

    수운교 도솔천은 수운교 본부의 본당 건물이다. 수운교는 천도교에서 분파된 종파로, 수운(水雲) 최제우를 교조(敎祖 어떤 종교나 종파를 처음 세운 사람)로하여 이상룡이 창립하였다. 도솔천은 수운교의 본부 중 가장 중요한 건물로, 천궁(天宮) 또는 천단(天壇)이라고도 한다. 수운교 본부에는 도솔천을 비롯하여 봉령각(鳳靈閣), 법회당(法會堂), 용호당(龍虎堂), 장실(丈室) 등이 있다. 도솔천은 1929년에 건립되었고, 장실은 1921년에, 용호당은 1940년 벼락으로 소실 되어 1948년 재건립 된 것이다. 도솔천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공포와 조각 등이 매우 화려하다. 이는 조선 후기의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조선의 마지막 궁궐 목수 최원식(崔元植)이 지었기에 광덕문과 도솔천에 잡상이 설치되었을 것이다.

    하날님과 일월성신을 모신 천단, 천단 앞에는 국조 단군을 비롯하여 유불선 합일의 교리에 따라 불도 석가, 선도 노자, 유도 공자의 네분 성인 위패를 봉안하였다. 좌측 태상노군노자지위(太上老君老子之位) 우측 무상정각석존지위(無上正覺釋尊之位)

    노자 오른편에 단군의 위패와

    석가 왼편에 공자의 위패를 모셨다.

    도솔천단 앞쪽으로는 6층의 금강탑과 무량수탑을 봉안하였는데, 불보살과 선관, 사천왕 등을 4면으로 조각하였다. 좌측의 일정상(日精像)은 해를 상징하는 동시에 성덕군 나옹불사님을 표상하며, 우측의 월정상은 달을 상징하는 동시에 순덕군 수운천사님을 표상하였다. 또 좌우로 자미성과 삼태성과 동남서북으로 사대칠성을 조성하여 대우주의 실상을 36성신으로 형상하였다. 천단 건물에는 12마리의 큰 용과 44마리의 작은 용 88마리의 봉황 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에는 궁궐과 왕실 건축물에만 이용하던 2지신상을 배치해 건물의 위엄을 강조하고 있다.

    서쪽벽에는 수운 천사님의 명에 따라 이남곡 화사가 화성한 18두 신장의 동진보살 탱화를 봉안하였다.

    창문 앞의 목각용상

    석종(石鐘), 개구리 모양 혹은 누운 소와 같다고도 하는데, 두드리면 신기하게도 쇠북소리가 들려 석고(石鼓)라고도 한다. 수운교의 한 신도가 꿈을 꾼 후 그 장소로 찾아갔더니 꿈에서 본대로 이상한 바위가 있었다. 돌로 쳐 보니 쇠소리가 났고 후에 수운교주에게 알려 1925년 3월 지금의 자리에 놓아 두었다. 대전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3호.

    법회당(法會堂). 법회당은 도솔천, 봉령각과 더불어 수운교 삼단(三壇)의 하나다. 1936년 건립되어 수운교의 법회를 위한 본부건물로서, 사무 공간과 불교 의식을 주관하는 법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무 공간은 가운데에 복도가 있으며, 그 우측의 법당은 내부 3칸에 불단이 있다. 지붕틀은 트러스 위쪽에 서까래를 얹은 구조로, 한옥 건축 형식과 서양식 목조 트러스 지붕이 혼합된 모습이다.

    용호당(龍虎堂). 용ㅎ호당은 교주 이상룡의 사저였으나, 1940년에 벼락으로 소실되고 1948년에 다시 세워졌다. 이 건물 안에는 수운교 경전과 금강경탑 다라니 원판 등 관련 기록물 등이 보관. 왼쪽에 있는 장실은 교주의 거처로 사용하였던 곳으로, 수운교 본부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대청 다락방에는 미륵불을 봉안하고 있고,부엌엔 조왕단이 마련되어 있다. 등록문화재332호

    조왕신단,

    香積㕑中常出納(향적주중상출납) 향기로운 부엌을 드나들면서

    護持佛法亦摧魔(호지불법역최마) 불법을 지키고 마군을 쫒아내네

    人間有願來誠祝(인간유원내성축) 인간의 바램이 있어 정성스레 축원하면

    除病消災降福多(제병소재강복다) 병과 재앙을 없애고 많은 복을 내리신다.

    *향적주는 절간의 부엌을 일컫는다.

    돌확이 몇 개 더 있다.

    봉령각(鳳靈閣), 1947년 건립된 이 건물은 도솔천, 법회당과 더불어 수운교의 삼단(三壇)의 하나다. 벽체는 긋기단청의 조촐한 맛을, 부연개판이나 서까래, 퇴보 등에서는 화려한 단청의 맛을 느끼게 한다. 내부 중앙에는 1937년에 만든 목조 입상의 아미타불을 주불로 봉안하였으며, 왼쪽에는 성덕군(나옹불사), 오른쪽에는 순덕군(수운천사 출룡자)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봉령각 아래 선성당(先聖堂)은 천영공덕(天靈功德) 8만4천 성지지공묘(聖秪之共墓)로 선성(先聖)의 영위를 봉안할 건물의 명칭이다. 선성당 기지는 도솔천단과 만성당기지와 함께 금병도국의 요지이며 하늘이 정하신 천정대지(天定大地)로써 수운강생113년(1934) 갑술9월에 천사주께서 2천여평을 정하시고 중앙에 나무푯말을 세웠으나 노후되어 수운강생168년(1898) 기사2월에 성신교인(聖信敎人)의 협력으로 선성당의 내력을 밝힌 석비가 건립되었다. 세계의 8만4천 천영공덕 영위를 편안히 모실 3층 목조건물이 건립되기를 기원하며 정성을 모아 대지를 정지(整地)하고 청정도량으로 미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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