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문화 culture/천연기념물 natural monument 2024. 11. 18. 22:02

    천연기념물 제84호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 이 압각수(鴨脚樹, 은행잎이 오리발을 닮은데서 유래)는 나이가 약 1,000(지정일 기준)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4m, 가슴높이 둘레 12.93m이다. 줄기가 썩어서 동굴처럼 비어 있고 사방으로 자란 가지 중에 남쪽 및 동쪽의 가지는 부러졌는데 그 가지로 3년 동안 밥상을 만들고 관 37개를 만들어 마을 주민이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500년 전 이 마을에서 살던 오씨(吳氏)의 조상이 전라감사(현 전라도지사)로 있을 때 나무 밑에 정자를 짓고, 은행나무 정자라는 뜻의 행정(杏亭)이라고 불렀는데 한때 금산 행정의 은행나무란 이름이 이렇게 불리워지기도 했다. 현재는 행정헌(杏亭軒)이라는 육각정자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머리가 둔한 아이를 밤중에 이 나무 밑에 한 시간쯤 세워두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며, 잎을 삶아서 먹으면 노인의 해소병이 없어지고, 나무에 정성 들여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외에도 나라와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소리를 내어 알려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와 같은 전설을 믿는 사람들은 음력 정월 초사흗날 자정에 나무 밑에 모여 새해의 행운을 빌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배고픈 시절 천 살 먹은 마을 수호신 은행나무에 불이 났다. 은행나무에 살고 있는 쥐를 잡아먹겠다고 쥐구멍에 불을 놓았던 것이다. 불씨가 꺼지지 않고 조금씩 속으로 타들어가 석달열흘을 타고 있는 것이다. 마침네 연기가 피어오르는 나뭇가지에 올라가 진흙으로 숨구멍을 막아 불길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밑둥이 훼손되어 시멘트수술을 한 연유였던가? 해마다 11월이 시작되기 전 목신제를 지내고 있다. 금산 행정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생활과 문화 속에서 살아온 나무로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와 오래되고 큰 나무로서 생물학적인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드넓은 잔디밭에 높이 20미터에 1천년 고목임을 자랑하면서도 균형 잡힌 수형으로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율곡문집진산 은행정에 큰 나무(大木於珍山銀杏亭)’라는 기록은 물론 김종직의 문집에서도 기록을 볼 수 있다 하니 예전부터 유명했던 모양이다이 마을에 살던 해주 오씨(吳氏)의 선조가 전라감사로 있을 때 이곳에 정자를 짓고 행정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행정헌(杏亭軒)을 복원하여 마을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관련된 옛이야기도 전한다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서대산 기슭에 살던 호랑이가 요광리 마을까지 내려와 낮잠 자는 농부를 노렸다. 그런데 농부 곁에 호랑이를 주눅들게 한 커다란 무엇인가가 있었다. 덤벼들 엄두가 나지 않은 꼬리를 감추며 뒷걸음쳐 숲으로 돌아갔다. 백수의 제왕을 주눅 들게 한 건 마을의 은행나무였다...

     

    은행나무 / 권태응(1918-1951)

     

    우리 동네 은행나문 굳고 큰데도

    어쩌면 열매 한 톨 안 달리고

     

    건너 마을 은행나문 그리 안 큰데

    해마다 우룽주룽 열매 달리나?

     

    우리 동네 은행나문 수나무고요

    건너 마을 은행나문 암나무래요.

     

    아하하하 우습다 나무 내외가

    몇백 년을 마주보고 살아온다네.

     

    콩 타작. 도리깨질에 익숙한 머릿속이 탈곡기를 보는 순간 신세계처럼 다가온다.

     

     

      穫豆(확두-콩 타작) / 삼산재(三山齋) 김이안(金履安, 1722-1791)

     

     

    日落柴門煙氣昬(일락시문연기혼) 사립문에 해 지자 저녁 연기 피는데

    田家穫豆夜喧喧(전가확두야훤훤) 농가에선 콩 타작에 밤늦도록 시끄럽네

    兒童笑報西峰白(아동소보서봉백) 아이들이 웃으며 서쪽 봉우리 훤하다 하니

    知是遙林月出痕(지시요림월출흔) 먼 숲에서 달이 떠오른 것을 알겠네

     

    -김이안(1722-1791)은 본관은 안동, 자는 원례(元禮), 호는 삼산재(三山齋)이며, 김상헌의 후손으로 노론의 낙론(洛論)을 대표하는 김창협의 증손자이자 김원행의 아들로 정조대 산림으로 우대되었던 인물이다. 김이안 초상은 연세대학교박물관에 반신상이 1(보물 제1500), 이화여대박물관에 전신입상이 한점 전하고 있는데, 두 박물관 소장의 초상은 동일한 상호와 복식을 하고 있다

     

     

    , 너는 죽었다 / 김용택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 , 저 콩 좀 봐라

    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 너는 죽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