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
    문화 culture/천연기념물 natural monument 2024. 11. 17. 14:43

    임난수(林蘭秀, 1342∼1407)은행나무, 임난수는 고려말 최영 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운 부안임씨의 중시조이다. 고려 멸망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여러 번 벼슬을 주며 청했으나 응하지 않고 전월산 아래 양화리(현재 세종동)에 은거하며 심었는데, 맹씨행단의 은행나무처럼 쌍행수(雙杏樹)로 수령(樹齡) 652년의 나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이곳의 나무를 베려고 했는데 나무가 울어서 벨 수 없었다고 전한다. 며칠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좋았다. 홀쭉하고 작은 나무는 암나무인데 열매를 맺느라 고달펐는지 잎이 거의 졌으나 은행은 아직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근육질의 통통하고 큰 나무는 수컷인데 아직은 잎이 무성해서 볼만 하다. 바람이 불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압각수(鴨脚樹) 하나하나가 쌓여 땅도 노랗다. 세종 산다는 화가의 수채화 그림이 현실보다 곱고 아름답고 감성적이다. 천연기념물 제570호

     

    은행나무 부부 / 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린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마 발치께 쏟은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풋감이 발그레 홍시가 되는 것도 이 때다

    그러나 모를 일이다

    삼백 년 동안 내달려온 신랑의 엄지발가락이 오늘쯤

    신부의 종아리에 닿았는지도

    바람의 매파가 유명해진 건 이들 때문이라 전한다

    굳게 걸어잠근 숭모각(崇慕閣), 전서공(典書公) 임난수(林蘭秀, 1342~14070)를 기리기 위해 세종리(본래 양화리 혹은 세거리)에 세운 사당. 조선 세종 때 부조묘(不祧廟,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와 사패지(賜牌地, 임금이 내려 준 논밭)를 하사받고 ‘기호서사’라는 사우에서 제향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후 1957년에 숭모각으로 복원되었다. 내부에는 부안임씨 시조인 임팔급을 비롯한 14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임난수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부안임씨집성촌이었으나 최근 국회의사당이 들어설 곳이라 주민들은 모두 쫒겨났다고 임씨후손인 노년의 아주머니는 분노를 내뱉었다. 공사장으로 난 길을 찾느라 아주 애를 먹었다. 세종리 은행나무역사공원.

     

     

    세종 독락정(獨樂亭)과 임난수신도비, 임난수 장군은 전라도 보안현에서 태어나 공민왕 23년 탐라 일대에서 최영 장군과 함께 전공을 세웠다. 이후 공조전서에 올랐으나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공주목 삼기현으로 낙향하였다. 1437년(세종 19) 고려 후기 충신이자 부안임씨(扶安林氏) 전서공파(典書公派) 파조(派祖)인 임난수(林蘭秀) 장군의 절의(絕義)를 기리기 위하여 금남교 인근의 금강변에 둘째아들인 밀직양양도호부사 임목(林穆, 1371~1448)이 지은 정자이다. 정자 이름 독락(獨樂)은 송나라 정치가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이 은퇴하여 만든 정원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정자 내부에는 남수문이 지은 정자기(亭子記)와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독락정 찬시(讚詩) 3()가 걸려 있다.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64호. 동방오현 이언적이 살던 경주 옥산서원의 독락정이 유명하다. 

    고려임장군신도비(高麗林將軍神道碑), 1682년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비문을 썼다. 세종 독락정(獨樂亭)역사공원,

     

     

    공주독락정(公州獨樂亭) / 서거정(徐居正)

     

    소년 시절의 명성과 값어치가 누가 감히 그대만 하겠는가 (少年聲價孰如君 소년성가숙여군)

    만리 길 청운의 높은 벼슬길을 발밑보다 낮고도 평범한 것으로 여겼네 (脚底平看萬里雲 각저평간만리운)

    잠시 조정대신의 반열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은거하였으나 (暫屈朝班還舊隱 잠굴조반환구은)

    다시 영광된 벼슬이 따르고 높은 공훈에 책록되었구나 (更從榮宦策高勳 갱종영환책고훈)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는 것이란 조물주의 진짜 희롱거리와도 같은 것 (功名造物眞如戲 공명조물진여희)

    사내대장부가 나간 곳은 쉽게 논할 수 없는 것 일 뿐 (出處男兒未易論 출처남아미이론)

    다만 두려운 건 조서를 받든 사자가 길 오르길 재촉하는 것 (却恐鳴騶催上道 각공명추최상도)

    북산의 원숭이와 학이 다시 옮겨가는 명분의 글을 새김일세 (北山猿鶴更移文 배산원학갱이문)

    독락정이라고 이름 한 동산은 금강을 누르듯이 나직하게 자리했는데 (名園並壓錦江低 명원병압금강저)

    내가 옛날 찾아 가던 길에 길을 잃고 헤메였었지 (我昔相尋路自迷 아석상심로자미)

    어떤 성씨 보다도 임씨의 정자가 가장 멋진 곳이라네 (何氏林亭知最勝 하씨림정지최승)

    두보가 오동잎에 시를 쓴 것과 같은 시를 쓰지는 못하고 (杜陵桐葉不曾題 두릉동엽불증제)

    수레 기름 쳐서 은자로서 살 수 있는 반곡에 가지 살지 못함은 한스럽지만 (膏車恨未從盤谷 고거한미종반곡 )

    어느 눈 온 밤 나룻배를 타고 친구를 찾아 가듯, 은자가 사는 독락정을 찾아갈 터이니 (雪艇終須訪剡溪 설정종수방섬계)

    부디 여울물에 흔적을 감추고 안개 속에 거두지 마시지요 (莫遣藏湍仍斂霧 막견장단잉렴무)

    들으니 독락정은 세상에 이미 복숭아나무나 자두나무의 밑에 길이 난 것과 같이 유명하다고 하더라 (似聞桃李已成蹊 사문도리기성혜)

    戊戌孟秋徐居正題(무술맹추서거정제, 무술년 초가을 서거정)

    -출전  신증동국여지승람, 이정우 번역

     

    독락정에 올라 / 돈헌(遯軒) 이홍유(李弘有, 15881671)

     

     

    가파른 곳에 지어진 집은 푸르게 흐르는 강물을 굽어보고

    온산 소나무와 계수나무는 가장 푸름이 깊으니

    물가마을 임하지사(林下之士)로 살며 숨어 지낼 것 기약한다.

    낚시질하는 높고 낮은 바위는 언덕 끝 잘라 낭떠러지 되고

    난간에 의지하여 붉게 물든 여뀌꽃(紅蓼) 언덕 마주하며

    창문 열어 흰 새 나는 물가 멀리 바라본다.

    나그네 서글픈 감정 저 맘데로 품으니

    독락은 하루의 근심을 날려버리라고 가르친다.

    강을 베고 누운 높은 누각은 단청이 빛나니

    이곳이 임공(林公)의 독락정 이로다.

    넓고 아득한 긴 물결은 달빛 빼앗아 비추고

    가파른 바위는 구릉 위에 늘어서 푸른 병풍 쌓는다.

    경치나 달빛은 그 옛날의 빛을 내고

    땅 형세나 산 모양은 지난날의 모양이다.

    어디서 피리소리 들려 나그네의 응어리진 한을 더하니

    가을밤 난간 의지하여 그 소리 더욱 듣지 못하겠구나.

    세종 독락정역사공원 나성석불, 머리 일부분과 좌측 불신 훼손. 상호는 평면적이고 눈썹은 굵고 눈은 가늘다. 귀는 길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하고 코는 뭉툭하며 입가에 엷은 미소가 보인다. 수인은 분명치 않고 하단에서 습의가 둥글게 표현되었다. 임난수가 서역에서 가져온 석불인데 양겨드랑이에 끼고 금강을 건너뛰다 쇠나막신 한쪽을 물에 빠뜨려 신발을 찾으려 양쪽에 석불을 세웠는데 강건너 석불은 홍수로 유실되고  나성리석불만 남았다는 장군 같은 얘기도 전한다... 고려시대 추정. 신경림의 '파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기억난다.

     

    파장(罷場) / 신경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