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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추사고택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4. 2. 27. 23:24
추사체의 진수인 추사의 글씨와 세한도를 새긴 기념탑. 예전에 못보던 것이니 최근에 세웠을 것이다. 화법유장강만리(畵法有長江萬里) 서세여고송일지(書勢如孤松一枝) 글자와 세한도가가 새겨져 있다. 글자의 뜻은 화법은 장강 만리에 있고 서법은 외로운 소나무의 한 가지와 같다. 추사고택. 충남 유형문화재43호,
석년(石年)은 추사가 직접 제작했다고 전하는 해시계다. 모란이 필때 다시 오자는 아쉬움의 말들이 터져 나온다.
죽로지실(竹爐之室) 竹爐는 화로의 겉이 뜨겁지 않게 대나무로로 감싼 화로. 전서와 예서의 혼합, 글자로 이루어진 그림 즉 타이포그라피typography, 竹은 대와 죽순, 爐에서 盧는 그릇, 그릇 안에 작은 불火을 담았다. 爐는 주전자가 있는 복층 화로의 형상이다, 室은 육각형 창이 활짝 열린 단아한 집 모양이다.
다산(茶山) 정약용이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대흥사의 초의와 가까이 지냈다. 다산은 혜장선사의 소개받은 초의에게 유학과 다도를 가르쳤다. 다산은 동다기(東茶記)를 쓰고 초의는 동다송(東茶頌)을 지어 교류했다. 귀양이 풀리고 두물머리로 귀향하자 초의도 따라와 8km 떨어진 수종사에 머물렀다. 나중에 대흥사로 돌아가 차 연구에 매진하고 초의차를 만들었다. 소식이 돼지고기(동파육)로 화병을 다스렸다면 다산은 차로 화병과 속병을 다스렸다. 추사가 제주 유배 중에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에게 차를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 고마움에 죽로지실(竹爐之室)을 선물했다고 한다. 곡우 전후하여 수확한 곡우차, 즉 초의가 공들여 만든 초의차가 어떤 맛인지 범해선사가 다음과 같이 읊었다.
초의차 (草衣茶) / 범해 각안(覺岸, 1820∼1896)
穀雨初晴日(곡우초청일) 곡우에 이제 막 날이 개어도
黃芽葉未開황아엽미개) 노란 싹 잎은 아직 펴지 않았네
空精炒出(공당정초출) 빈 솥에 세심히 잘 볶아내
密室好乾來(밀실호건내) 밀실에서 아주 잘 말리었구나
栢斗方圓印(백두방원인) 잣나무 그릇에 방원(方圓)으로 찍어 내어
竹皮苞裁(죽피포과재) 대껍질로 꾸려 싼 다음 저장한다네
嚴藏防外氣(엄장방외기) 잘 간수해 바깥 기운을 단단히 막아
一椀滿香回(일완만향회) 한 사발에 향기 가득 떠도는구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옛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 2동짜리 건물로 조선 영조(재위 1724∼1776)의 사위이자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에 의해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건물 전체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데, 안채는 서쪽에 있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은 동쪽에 따로 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머물면서 손님을 맞이하던 생활공간인데, ㄱ자형으로 남향하고 있다. 각방의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어 통로로 이용하였다.
안채는 가운데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힌 ㅁ자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살림살이가 이루어지던 안채는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벽을 설치하여 막아놓았다. 대청은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동쪽을 향하였고 안방과 그 부속공간들은 북쪽을 차지하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지형의 높낮이가 생긴 곳에서는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층을 지게 처리하였다. 문화재청.세한도 / 구이람(1950 ~ )
눈 퍼얼 펄 하염없이
마음을 덮고
나뭇가지를 덮는다
오솔길마저 흰 산으로 막혀 버리고
그 누가 이 어둔 길을 뚫고 날 찾아오랴
저 높은 하늘과 작은 새 한 마리
깃털 흔들어 첩첩 백설을 녹이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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