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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3. 9. 26. 23:02
삼척 죽서루(三陟 竹西樓), 보물 213호. 다른 관동팔경의 누, 정이 바다를 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죽서루만이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다. 자연석 위에 길이가 서로 다른 17개의 기둥을 세워 지은 정자로 관동팔경의 정자 중 가장 크다. 이승휴의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에 의하면, 고려 원종 7년(1266년)에 )였던 진자후와 이승휴가 안집사(安集使)였던 진자후와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서 1266년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 태종 3년(1403년), 부사 김효손부터 중창이 이루어졌다. 삼척도호부의 객사 진주관(眞珠觀)이 옆에 있다. 누의 동쪽에 대나무숲이 있었고, 그 죽림(대나무숲) 안에 죽장사(竹藏寺)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2023년 12월 마침내 국보 343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이 밝힌 지정사유 ㅇ 삼척 죽서루는 적어도 12세기에는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서루(西樓)’로 불리다가 14세기후반에 들어서 ‘죽서루(竹西樓)’라 불리기 시작했다. ㅇ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가 조선전기에 재건된 이후 여러 차례 보수, 증축 되었으나 관련 기록이 잘 남아있으며, 조선후기 증축된 이후 그 본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ㅇ 삼척 죽서루는 1403년 정면 5칸(측면 2칸)의 규모로 중창된 누정이었으나, 1530년 남쪽 한 칸(측면 3칸)이 증축되었고, 1788년 북쪽 한 칸(측면 2칸) 이 증축되면서 현재와 같은 팔작지붕 형태가 되었다. ㅇ 삼척 죽서루에는 조선 숙종(肅宗)과 정조(正祖)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 여 유명한 시인과 명신들의 한시가 현재 28점이 남아 있다. 삼척 죽서루를 표현한 그림도 남아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 의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에 있는 죽서루의 그림이다. ㅇ 삼척 죽서루는 각종 기록을 통해 중창과 후첨된 건립연대가 명확하여 역사 적 가치가 크고, 조선 초기와 중기 이후의 건축 원형을 잘 유지하면서 시 기별 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 건축사적으로 중요하며, 수많은 명사들의 시 문과 그림이 많이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 또한 크다. 더불어 주변 하천인 오십천(五十川)과 어우러진 죽서루의 빼어난 경관 등을 고려할 때 국보(國 寶)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문화재청 통합검색 (cha.go.kr)
보물(213호)인 삼척 죽서루의 국보 승격을 위한 문화재청 심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국보승격 염원을 담은 현수막 앞에서 고양이 한 쌍이 긴 하품을 하고 있다.
죽서루 경내에는 회화나무 보호수 3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은 입구에 있는 지정번호 삼척 8호 회화나무이며, 9호, 10호 역시 수령이 350년 정도이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운 그랭이공법이 보인다.
관동제일루와 죽서루 현판, 조선 숙종 41년(1715년) 삼척부사로 있던 이성조(李聖肇)의 글씨다.
竹西樓(죽서루) / 松江(송강) 鄭澈(정철)
關東仙界陟州樓(관동선계척주루) 관동에서 경치 좋기로 소문난 척주의 누각
虛檻憑危夏亦秋(허함빙위하역추) 커다란 난간에 위태롭게 기대서니 여름 또한 가을 같구나
天上玉京隣北左(천상옥경인북좌) 하늘나라 서울 옥경(玉京)은 북쪽 왼편에 이웃해 있어
夢中銀潢聽西流(몽중은황청서류) 마음을 가다듬으니 은하수 서쪽으로 흘러가는 소리 들리네
疎簾欲捲露華濕(소렴욕권로화습) 성긴 발 걷으려 하니 빛나는 이슬 축축하고
一鳥不飛江色愁(일조불비강색수) 한 마리 새조차 날지 않으니 강가의 경치 수심 가득하구나
欄下孤舟將入海(난하고주장입해) 난간 아래 외로이 떠있는 배 바다로 들려 하는데
釣竿應拂鬱陵鷗(조간응불울릉구) 낚싯대 울릉도 가는 갈매기 쫓아 휘두르네
次竹西樓板上韻(차죽서루판상운) / 沈英慶(심영경)
關東第一竹西樓(관동제일죽서루) 관동에서 제일 가는 누각 죽서루
樓下溶溶碧玉流(누하용용벽옥류) 누각 아래 푸른 물 도도히 흐르는구나
山靜鳥啼叢桂樹(산정조제총계수) 산은 고요한데 우거진 계수나무 숲에서는 새 소리 들리고
月明人語木蘭舟(월명인어목란주) 달은 밝은데 목란으로 만든 배에서는 사람들 이야기 소리 들려오네
百年泉石如相待(백년천석여상대) 오랜 세월 물과 돌이 어우러져 만든 듯한 이 경치
千古文章不盡遊(천고문장부진유) 천고(千古)의 문장으로도 다 표현할 수가 없구나
采采瓊華生遠思(채채경화생원사) 무성한 아름다운 꽃들은 옛 추억 생각나게 하는데
白雲歸駕故掩留(백운귀가고엄류) 떠가던 흰 구름 도리어 오래 머무르네
죽서루중수기부금방명기
敬次沈侯鍾山板上韻(경차심후종산판상운) / 만포(晩圃) 최달식(崔達植)
有名陟府有名樓(유명척부유명루) 유명한 삼척의 이름 난 누각
樓下長川不盡流(누하장천부진류) 누각 아래 긴 냇물은 끊임없이 흘러가네
古渡煙濃迷遠樹(고도연농미원수) 옛 나루터 연기 짙으니 멀리 선 나무들 흐리게 보이고
虹橋雲斷罷行舟(홍교운단파행주) 무지개다리 조각 구름 걸리니 뱃놀이 멈추네
歌娥舞袖隨時出(가아무수수시출) 노래하며 춤추는 미인의 소맷자락 때때로 내뻗어지고
騷客吟唇暇日遊(소객음순가일유) 시인은 시를 읊으며 한가한 날을 즐기고 있네
一目難收千萬景(일목난수천만경) 한 번 보아서는 다 감상하기 어려운 수많은 절경들
十登無厭久淹留(십등무염구엄류) 열 번 올라도 싫증나지 않아 오래오래 머무르네
죽서루기(竹西樓記) 허목(許穆)의 글씨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 현판은 조선 헌종 3년(1837년)의 삼척부사 이규헌(李奎憲)의 글씨. 죽서루는 바다의 신선이 놀던 곳이라... 기가 막힌 찬사다. 이규헌이 떠난 뒤 삼척주민들은 그를 위해 선정비(善政碑)와 흥학비(興學碑)를 세웠다.
敬次石川(경차석천) / 全義(전의) 李俊民(이준민)
天地無心客(천지무심객) 세상일에 무심한 나그네
江湖有約人(강호유약인) 강호에 살기로 사람들과 약속했네
斜陽樓百尺(사양루백척) 백 척 누각에 해 넘어가니
虛送故園春(허송고원춘) 고향에서의 젊은 시절 헛되이 보내구나
己未仲夏旬三(기미중하순삼) (전의이준민)
御製(어제) / 숙종
硉兀層崖百尺樓(율올층애백척루) 위태로운 벼랑 위에 높이 솟은 백 척 누각
朝雲夕月影淸流(조운석월영청류) 아침에는 구름 저녁에는 달 그림자 맑은 물에 드리우고
粼粼波裡魚浮沒(린린파리어부몰) 반짝이는 물결 속에는 물고기 뛰어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데
無事凭欄狎白鷗(무사빙란압백구) 한가로이 난간에 기대어 백구(白鷗)를 희롱하네
正祖御製詩(정조어제시)
彫石鐫崖寄一樓(조석전애기일루) 돌을 쪼고 절벽 깎아 누각 하나 세웠구나
樓邊滄海海邊鷗(누변창해해변구) 누각 옆에는 푸른 바다 해변에는 갈매기
竹西太守誰家子(죽서태수수가자) 죽서루 있는 고을 태수 누구 집 아들인가
滿載紅粧卜夜遊(만재홍장복야유) 미녀들 가득 싣고 밤새워 뱃놀이 하겠구나
題竹西樓(제죽서루) / 前郡守(전군수) 尹 昇老(윤승로)
頭陀山落起高樓(두타산락기고루) 두타산 뻗어 내린 자락에 높은 누각 우뚝 솟았는데
樓下長江不盡流(누하장강부진류) 누각 아랜 긴 강은 끊임없이 흘러가네
巖削二三層壁立(암삭이삼층벽립) 깎아지른 층암절벽 솟아있고
魚廻五十谷川游(어회오십곡천유) 물고기는 쉰 구비 냇물 따라 놀고 있네
誇今棟宇千年史(과금동우천년사) 지금 누각은 천년 역사 자랑하는데
懷舊文章七月舟(회구문장칠월주) 옛 글들은 초가을 뱃놀이 생각나게 하네
古來賢達逍遙地(고래현달소요지) 예로부터 현인(賢人) 달사(達士)가 놀던 곳인데
余亦當時百里憂(여역당시백리우) 나는 그때 겨우 지방 다스릴 걱정만 하였구나
五十川韻(오십천운) - 오십천을 노래하다 / 서성
川自牛山來(천자우산래) 우보산에서 흘러내린 오십천의 물
沙明苔蘚綠(사명태선록) 모래는 깨끗하고 이끼는 푸르구나
縈紆何盤盤(영우하반반) 구불구불 휘돌아가니 몇 구비던가
四十七回曲(사십칠회곡) 마흔일곱 번이나 휘돌아서 흐르네
深厲淺則揭(심려천즉게) 깊이는 허리나 또는 무릎까지인데
石齒嚙我足(석치교아족) 돌부리들이 나의 발을 찌르는구나
時見浣紗女(시견완사녀) 때맞추어 나타난 빨래하는 여인은
白晳顔如玉(백석안여옥) 얼굴이 백옥과도 같이 새하얗구나
家住水東西(가주수동서) 오십천 동서쪽에 자리잡은 집들은
柴扉掩幽谷(시비엄유곡) 사립문이 깊숙한 골짜기를 가리네
我欲從之遊(아욕종지유) 마음만 같아서는 쫓아가 노닐면서
微辭屢往復(미사루왕복) 은근하게 정담을 주고받고 싶지만
佳期在桃月(가기재도월) 춘삼월에 만나자고 약속을 했기에
一諾終不宿(일낙종불숙) 한번 승낙했으니 머물지는 못하네
沿流惆愴歸(연류추창귀) 물길을 따라서 쓸쓸히 돌아오려니
疎風響修竹(소풍향수죽) 바람이 간간이 대나무숲을 울리네
제일계정〉(第一溪亭), 조선 현종 3년(1662년)에 삼척부사 허목(許穆, 1595-1682)의 글씨.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60세 넘어 지평 벼슬. 자의대비 복상문제로 1660년에 삼척부사로 좌천. 대사헌 이조참판 우의정 역임하고, 송시열 처벌 주장한 남인으로 전서체에 능했다.
이학규의 '죽서루중수기'
敬次栗谷先生板上韻(경차율곡선생판상운)- 부사 심공저
罨畵溪山起一樓(엄화계산기일루) 그림같이 아름다운 시내와 산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누각 하나
蒼凉洞氣四時秋(창량동기사시추) 어쩐지 쓸쓸한 골짜기 기운 사시사철 가을 같구나
削成環壁參差聳(삭성환벽참차용) 깎아지른 듯 둘러선 절벽 높고 낮게 솟아 있고
控引長川曲折流(공인장천곡절류) 잡아당긴 듯한 긴 냇물 구불구불 흘러가네
數牒題來無箇事(수첩제래무개사) 몇 장의 공문서 가지고 왔으나 별일 아니니
百篇吟過寫閑愁(백편음과사한수) 많은 시 읊조리며 지내는 것은 쓸데없는 근심 없애기 위함이라
蓮舟未與仙人악(연주미여선인악) 연밥 따는 배는 신선을 만나지 못하여
江海幽期問白鷗(강해유기문백구) 강과 바다의 비밀스런 기약 백구(白鷗)에게 묻는구나
서증보의 '경차충숙공선조판상운'
竹西樓敬次栗谷先生韻(죽서루경차율곡선생운) / 양정호(梁廷虎)
蒼崖陡起架飛樓(창애두기가비루) 푸른 이끼 낀 절벽 위에 우뚝 솟은 높은 누각
三伏炎蒸爽似秋(삼복염증상사추) 삼복의 찌는 더위에도 시원하기가 가을 같구나
遠峀浮嵐濃淡態(원수부람농담태) 먼 산 푸르스름한 기운 짙고 엷은 형상 이루었고
晴川芳草淺深流(청천방초천심류) 비 갠 날 맑은 냇물 아름다운 풀 사이로 얕고 깊게 흐르는데
雕欄物色添詩料(조란물색첨시료) 조각한 난간의 형상은 시 짓는 재료를 더해주고
錦席絃歌散客愁(금석현가산객수) 비단 방석에서 거문고 타며 읊는 시 나그네 근심 흩날리는구나
吏隱名區翻自愧(이은명구번자괴) 벼슬하지만 은거하고 싶은 마음이라 좋은 경치 도리어 내 자신에게 부끄럽고
江湖一約負沙鷗(강호일약부사구) 강호에 살기로 한 굳은 약속 모래 위 갈매기에게 부끄럽구나
竹西樓次韻(죽서루차운) -栗谷(율곡) 李珥(이이)
誰將天奧敞華樓(수장천오창화루) 누가 하늘 도와 이 아름다운 누각을 세웠는가
石老星移不記秋(석로성이불기추) 그 지나온 세월 얼마인지 알 수가 없구나
野外千鬟浮遠岫(야외천환부원수) 들판 저 멀리 산봉우리에는 검푸른 빛 서려있고
沙邊一帶湛寒流(사변일대잠한류) 모래사장 부근에는 차가운 물 고여있네
騷人自是多幽恨(소인자시다유한) 시인은 본래 남 모르는 한이 많다지만
淸境何須惹客愁(청경하수야객수) 깨끗한 이 곳에서 어찌 나그네의 근심을 일으켜야만 하리요
會撥萬緣携籊籊(회발만연휴적적) 온갖 인연 모두 떨쳐버리고 긴 낚싯대 들고는
碧崖西畔弄眠鷗(벽애서반롱면구) 푸른 절벽 서쪽 물가에서 졸고 있는 갈매기와 놀아보리
죽서루 유래에 등장하는 죽선선녀(竹竹仙女)는 이승휴의 연인이었을까?
陪安集使兵部陳侍郞(諱子俟)登眞珠府西樓次板上韻[배안집사병부진시랑(휘자사)등진주부서루차판상운] / 李承休(이승휴)
半空金碧駕崢嶸(반공금벽가쟁영) 높은 하늘 고운 색채 높고 험준함을 더하는데
掩映雲端舞棟楹(엄영운단무동영) 햇빛 가린 구름조각 용마루와 기둥에서 춤추는구나
斜倚翠岩看鵠擧(사의취암간곡거) 푸른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날아가는 고니 바라보고
俯臨丹檻數魚行(부림단함수어행) 붉은 난간 잡고 내려다보며 노니는 물고기 헤아려 보네
山圍平野圓成界(산위평야원성계) 산은 들판을 빙 둘러싸 둥그런 경계를 만들었는데
縣爲高樓別有名(현위고루별유명) 이 고을은 높은 누각 때문에 매우 유명해졌구나
便欲投簪聊送老(편욕투잠료송로) 문득 벼슬 버리고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고 싶지만
庶將螢燭助君明(서장형촉조군명) 작은 힘이나마 보태 임금 현명해지기를 바라네
竹西樓(죽서루) 심동로(沈東老)를 생각하며/ 이구(李球)
三陟官樓是竹西(삼척관루시죽서) 삼척 지방 누각 하면 곧 죽서루인데
樓中佳客沈中書(루중가객심중서) 누각 안의 가객(佳客)은 심중서(沈中書)로구나
如今白首能詩酒(여금백수능시주) 지금은 흰머리 노인이지만 시를 짓고 술을 마실 수 있으니
暇日相遊爲說予(가일상유위설여) 한가한 날 어울려 놀며 나와 이야기나 나누어 보겠는가
竹西樓(죽서루) 최복하(崔卜河)를 생각하며 / 이구(李球)
鳳池司諫臥仙槎(봉지사간와선사) 신선이나 타는 뗏목에 누워 쉬고 있는 중서성(中書省) 사간(司諫)은
早知滄浪漁父歌(조지창랑어부가) 일찍이 창랑(滄浪)의 어부가(漁父歌)를 알았구나
爲說塩梅時所急(위설염매시소급) 말하건대 임금을 도와 선정을 베풀게 하는 것이 지금의 급한 일이니
天廚鼎味待君和(천주정미대군화) 임금이 정치를 함에 그대가 나와 도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네
선사암각화. 용문바위 위에 여성 생식기 모양의 구멍을 뚫어놓은 성혈암가이다. 성혈은 선사시대에 풍요 생산 다산을 상징하는 한국적 원시신앙의 형태로 조선시대에는 칠월칠석날 자정에 아녀자들이 성혈터를 찾아가서 일곱 구멍에 좁쌀을 담고 치성을 드린 다음 한지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두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신앙이 성행하였다. 성혈제작은 암반을 쪼아 깊이 판 다음 원형의 돌이나 나무로 연마하여 구멍을 넓혀 만든다. 구멍은 모두 10개이며 크기는 직경 3-4cm, 깊이 2-8cm이다.
괴산 쌍곡구곡의 떡바위 북두칠성 성혈(性穴) 에 대해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성혈”은 고고학계, 암각화학계에서 청동기인이 여성의 성기(性器)를 중시숭상하는 의식을 반영하여 파놓은 것으로 본다. 청동기인들도 자녀를 많이 낳고 물자가 풍부하기를 열망했다. 남녀가 성교할 때, 남자의 성기를 여성의 성기에 들락날락 넣다뺐다하듯이, 다른 도구를 성혈구멍 속에 넣고 돌리며 문질렀다. 그래서 성혈이 점점 커지고 깊어졌다. 따라서 성혈은 여성의 성기와 같은 구멍이다. 이렇듯 남녀의 성행위와 비슷한 행위를 통해, 자녀도 많이 낳고 풍년이 들기를 빌었다. 즉 성혈은 다출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모방주술(呪術)신앙의식을 행한 현장이다.
성혈이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오는날 남녀가 성교하는 행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용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방아공이 건다, 방아확이 크겠는데”,“가죽방아 찧는다,떡방아 찧는다”, “떡친다, 떡판 좋다, 떡깨나 치겠는데”,“절구질한다”등이다. 이렇듯 청동기인들이 성혈을 파놓고 거기에 의탁한 그들의 사유세계가 지금까지 전승됐다. 최초로 곡식의 껍질을 벗기는 도구(搗臼)는 성혈이다. 이를 응용 확대하여 개인용 이동용으로 “절구”, 고정용 다인용(多人用)으로 “방아”를 창의했다. 절구질하고 방아찧는 모습이, 남녀가 성교하는 모습과 같다고 여겼다. 그래서 남녀가 성교하는 행위를 방아와 절구에 비유한 용어가 생겨난 것이다.
정철의 광동별곡 중 6경에 소개된 죽서루를 기념하는 가사비가 세워져 있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익히 보던 유명한 구절이다.
관동별곡關東別曲 / 정철
眞진珠쥬館관 竹듁西셔樓루 五오十십川쳔 ᄂᆞ린 믈이 (진주관 죽서루 아래 오십천에 내리는 물이)
太태白ᄇᆡᆨ山산 그림재ᄅᆞᆯ 東동海ᄒᆡ로 다마 가니,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 가니,)
ᄎᆞᆯ하리 漢한江강의 木목覓멱의 다히고져. (차라리 한강으로 돌려 남산에 대고 싶도다.)
王왕程뎡이 有유限ᄒᆞᆫᄒᆞ고 風풍景경이 못 슬믜니, (관리의 여정은 유한하고, 풍경은 싫지 않으니,)
幽유懷회도 하도 할샤, 客ᄀᆡᆨ愁수도 둘 듸 업다. (회포가 많기도 많구나. 나그네의 시름도 달랠 길이 없구나.)
仙션사ᄉᆞᄅᆞᆯ ᄯᅴ워 내여 斗두牛우로 向향ᄒᆞ살가, (신선의 뗏목을 띄워내여 북두성, 견우성으로 갈까,)
仙션人인을 ᄎᆞᄌᆞ려 丹단穴혈의 머므살가. (신선을 찾으러 단혈에 머물러 살까?)
진주관-삼척도호부 관아 안에 있는 객사의 중심건물로 궁궐을 향해 절을 하던 의식공간인데 館을 쓰지 않고 觀을 쓴 것이 특징이다. 자연경관이 뛰어난데 연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삼척의 옛이름이 진주였다.원래 죽서루 밑에 있었으나 중종12년(1517)에 부사 남순종이 옮겨 지었다. 1908년 삼척군청으로 사용하였고, 궐패(闕牌)와 전패(殿牌)를 강원도청으로 옮겼다. 2010년 문화재청 지원으로 현재 모습이 복원되었다. 궐패는 궁궐을 상징하는 위패 모양의 나무패이며, 전패는 객사에 세우던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이다.
죽서루 이름을 갖게 만든 새로 조성된 대숲이 나날이 울창해지고 있다. 누의 동쪽에 대나무숲이 있었고, 그 죽림(대나무숲) 안에 죽장사(竹藏寺)라는 절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죽서루 동편에 기생 죽죽선녀(竹竹仙女)의 유희소가 있었다는데서 유래한다는 설도 전한다.
진주 촉석루 앞에 남강이 흐르듯 삼척 죽서루 앞엔 오십천이 유유히 흐른다. 가을을 재촉하는 빗물이 혼탁하게 만들었다.
죽장고사(竹藏古寺, 죽장사 옛절) / 성현
玉立千竿雨洗靑(옥립천간우세청) 옥대처럼 선 대숲은 비에 씻겨 푸르른데
疏林缺處露朱櫺(소림결처로주령) 숲이 뚫린 곳으로 붉은 처마 바라보이네
冷冷金磬隨風遠(냉랭금경수풍원) 맑은 금경소리는 바람 타고 멀리 울리고
知是闍梨飯後經(지시사리반후경) 알건대 고승도 밥 먹은 뒤에 금강경일세
*千竿(천간); 대나무 숲. *櫺(령); 격자창(格字窓), 처마, 추녀, 난간(欄干, 欄杆). *金磬(금경; 절의 종소리와 경판(磬板)의 소리. *闍梨(사리)'; 모범이 되어 제자의 행위를 바로잡는 고승
암공청담(巖控淸潭, 바위절벽 밑 맑은 못) / 성현
畫屛低列抱山南(화병저열포산남) 낮게 펼친 그림병풍 산의 남쪽 품었는데
龍虎騰挐揷翠嵐(용호등나삽취람) 용과 호랑이 올라탄 듯 이내 피어오르네
巖罅雜花開爛漫(암하잡화개난만) 바위 갈라진 틈마다 온갖 꽃들 만발하고
滿空紅影落毿毿(만공홍영낙삼삼) 하늘 가득 붉은 그림자 삼삼히 떨어지네
죽서루와 오십천 주변의 봄풍경을 환상적으로 묘사한 시다. '翠嵐(취람)'은 멀리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이내다. '巖罅(암하)'는 바위가 갈라진 틈이다. '爛漫(난만)'은 '주고받는 의견이 충분히 많음, 만발함'의 뜻이다. '毿毿(삼삼)'은 털이 긴 모양 , 버들가지 같은 것이 가늘고 길게 늘어진 모양이다.
정선(1676~1759년) 정선의 '죽서루'(회견에 먹 담채 23 x 27.5cm, 간송미술관 소장)
표암 강세황(1713~1791년)의 '죽서루'(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의 '죽서루'(30.4 x 43.7㎝,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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