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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보물순례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3. 8. 25. 17:21
농경문청동기, 보물1823호. 1971년대전서 구입, 크기 12.8cm×7.3cm. 나경(裸耕)이 새겨져 있는 청동기시대의 의기(儀器). 裸耕은 벌거벗은 몸으로 경작하는 행위인데 하늘과 땅에 대한 주술적 소통으로 해석된다. 가는 줄무늬 띠와 격자무늬[格文] 띠로 좌우로 나눠진 표면에는 두 마리의 새가 나뭇가지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다. 왼쪽에는 끈을 꼰 것 같은 둥근 고리가 한 개 붙어 있는데, 고리가 끼어 있는 반원형의 꼭지는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의 손잡이꼭지[鈕]와 똑같다. 뒷면도 좌우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는데, 왼쪽 부분에는 손을 내밀고 그 앞에 빗살문살무늬(빗살격자무늬)가 있는 항아리가 있다. 오른쪽에는 머리채가 긴 사람이 두 손으로 따비를 잡고 한 발로 힘있게 따비를 밟고 있으며, 따비 밑에는 밭고랑으로 보이는 가는 선을 그어 놓았다. 생김새와 무늬로 보아 주술적(呪術的) 의기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통일신라시대. 보물360호. 이 탑비는 거북 받침돌 위에 비신(몸체)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형태다. 전체높이는 3.95m로, 비신은 높이 2.28m, 너비 0.96m, 두께 0.24m다. 비신(碑身)은 탑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대통(大通)의 생애가 새겨져 있다. 명문가였던 김영(金穎)이 비문을 지었고, 순몽(淳蒙)이 구양순 해서체로 썼다. 비문에는 대통의 행적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 제도, 불교 문화 등에 대한 정보도 포함하고 있어 역사학·불교학에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며, 비석에 쓰인 글자는 금석학·서예학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귀부와 이수의 화려한 조각 장식은 통일신라시대 탑비의 대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2026년 개관예정인 국립충주박물관으로 이전하기 위해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충주 정토사지 흥법국사탑과 흥법국사탑비 세 점이 철거되었다.
청자상감매화대나무학무늬매병 보물 1168호, 서정적이고 우아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여유로운 공간 배치와 붓으로 그린듯 섬세한 상감무느가 뛰어나다.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에서 주로 만들어졌다.
청자상감매화대나무학무늬매병, 보물903호. 고려12-13세기, 하동군 출토. 추위를 견뎌내고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와 사계절 내내 푸른 대나무는 군자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무늬가 인산적인 매병은 고려인이 동경했던 이상세계를 펼쳐낸 듯하다.
청자상감보자기무늬매병, 보물342호, 고려 12-13세기, 매병의 어깨 뒷면에 화려한 조각보 장식이 상감되었다. 이 무늬는 뚜껑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파손을 막고 장식이 돋보이도록 부드러운 비단 조각보를 올려 놓았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청자상감구름학무늬매병, 보물1869호. 부드러운 선 처리와 단정한 형태, 시원스럽게 펼쳐진 무늬, 비색(翡色)의 유약 등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고려청자의 명품 중 명품이다. 특히 작고 예리한 각을 지닌 기품 있는 주둥이, 풍만한 어깨에서 유연하게 흘러내려 잘록한 허리와 굽에 이르러 약간 반전되는 곡선미는 12세기 고려 청자 매병을 대표할 만하다.
청자퇴화주자와 병, 보물(주자)1930호. 높이 29.7cm, 퇴화기법으로 나타낸 무늬가 독특한 병이다. 퇴화(堆花)기법은 백토(白土) 안료를 붓을 이용하여 무늬를 나타낸다. 점을 찍어서 장식하거나, 무늬를 그리는 데 이용된다. 사실적인 무늬 묘사보다는 단순화시키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으며 철화기법과 같이 붓을 이용하기 때문에 표현이 자유스럽다.
백자상감모란버들갈대무늬매병, 보물 345호, 높이29.2cm. 고려 12-13세기, 경기도 개성 출토, 고려백자는 고려청자와 형태 무늬 장식 기법이 같으며 같은 가마에서 구워졌다. 마름모 모양으로 백자 매병의 바탕면을 파낸뒤 청자의 바탕흙으로 메우고 모란 갈대 버들등을 상감했다. 고려백자와 청자가 섞여있는 보기드문 예로 창의성이 돋보인다.
청자 귀룡모양 주자, 보물452호. 고려12세기. 고려에서는 12-13세기 뛰어난 상감청자를 많이 만들었다. 이 주자는 연꽃 위에 거북이 앉아 있는 형태다. 고려시대 비석의 받침돌에도 거북의 얼굴과 앞가슴 조각을 볼 수 있다.
청자 죽순모양 주자, 보물1931호. 고려12세기. 높이 22.1cm. 개성 출토. 대나무 새싹인 죽순 모양으로 만든 상형청자이다. 조형과 장식, 유색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몸체의 알맞은 비례로 죽순의 모습이 더욱 우아하게 보인다. 대나무 모양으로 표현된 손잡이와 주구(注口)는 사실적이면서도 창의적이다.
청자 묭머리장식 붓꽂이(靑磁 透刻蓮唐草文 筆架), 보물1932호. 고려12세기 개성 출토. 높이9cm. 길이 17.6cm. 너비4.8cm. 붓을 꽂아놓는 붓꽂이다. 용머리 장식과 연꽃 덩굴무늬가 인상적인 작품으로 상형과 투각기법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밀도 있는 장식을 완성했다. 푸른빛 유색이 마치 옥을 깎아 만든 듯하다. 고려 왕실에서 사용한 문방구로 여겨진다.
청자 양각물가풍경무늬 정병, 보물344호, 12세기, 개성 출토, 높이37cm. 정병은 깨끗한 물을 담는 물병이란 뜻으로, 부처님 앞에 정수를 바치는데 쓰이거나, 여러 불교의식에 사용되었다. 서근의 고려도경(1124)에는 민간에서도 정병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쪽 면에는 갈대 밑에서 노니는 기러기 한 쌍이, 다른 면에는 수양버들 아래 쉬고 있는 원앙 한 쌍이 새겨져 있다.
청자 철채퇴화풀잎무늬 매병(靑磁 鐵彩堆花蔘葉文 梅甁), 보물340호. 고려12-13세기, 높이 27.6cm, 매병은 청자뿐만 아니라 백자, 도기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다채로운 장식적인 기법이 쓰인 기종이다. 표면 전체에 산화철 안료를 발라서 검은 색을 띠는 철제매병은 전하는 예가 드물다. 검은 바탕과 하얀색 무늬가 대비되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분청사기 상감물고기무늬 매병, 보물347호, 조선15세기 전반, 매병 전체에 촘촘하게 인화무늬를 넣어서, 회청색 바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매병의 생김새는 고려말 상감청자에 가깝지만, 무늬는 흰 흙으로 꾸며진 부분이 많아 흰색의 비중이 늘어가는 분청사기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백자 병, 보물1054호, 조선 15-16세기 관요에서 만든 최고급 백자 병이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병으로, 그릇의 부드러운 곡선미와 풍만한 부피감이 일품이다. 순백색 표면과 당당하고 절제된 형태가 조선 왕실과 사대부가 추구했던 미감을 느끼게 해준다. 옥호춘(玉壺春)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백자 철화끈무늬병, 보물1060호, 병의 목에 끈을 묶어 드리운 것 같은 모습의 백자 병이다. 철화 안료로 부드러우면서도 거침없이 그어 내린 무늬가 특징이다. 굽 안 바닥에 한글로 적힌 니ᄂᆞ히 혹은 니가히는 사람 이름으로 여겨진다.
백자달항아리, 보물1437호. 조선17세기 후반. 최대 지름과 높이가 거의 1대1 비율을 이루는 둥근 항아리다. 보름달을 닮아 달항아리라고 불린다. 반원형 몸체를 위 아래 붙여서, 몸체 가운데에 접한 흔적이 있다. 좌우 대칭이 살짝 어긋난 느낌을 주지만, 자연스럽고 편안한 미감으로 조선 후기 백자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본래 이름은 백자대호(白磁大壺) 였다.
백자대호(白磁大壺) / 김원룡(金元龍, 1922~1993)
조선백자(朝鮮白磁)의 미(美)는
이론(理論)을 초월(超越)한 백의(白衣)의 미(美)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껴서 모르면
아예 말을 마시오
원(圓)은 둥글지 않고
면(面)은 고르지 않으나
물레 돌리다 보니/ 그리 되었고
바닥이 좀 뒤뚱거리나/ 뭘 좀 괴어놓으면
넘어지지 않을 게 아니오
조선백자(朝鮮白磁)에는 허식(虛飾)이 없고
산수(山水)와 같은 자연(自然)이 있기에
보고 있으면 백운(白雲)이 날고
듣고 있으면 종달새 우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는 백의(白衣)의 민(民)의 생활(生活) 속에서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고금미유(古今未有)의 한국(韓國)의 미(美)
여기에 무엇 새삼스러이
이론(理論)을 캐고/ 미(美)를 따지오
이것은 그저
느껴야 하며
느끼지 않는다면
아예 말을 맙시다.
은관(銀製冠),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1975년 발굴. 삼국시대(신라) 5세기, 보물631호. 은제 관은 신라와 가야 에서 1점씩만 발굴된 희귀한 출토품 이라고 하며 문헌에 의하면 은관은 상위관료의 복식제도에 채택이 되었으며 중앙과 지방의 상위급 이상의 무덤에 부장 되었다고 한다.
금굽다리 접시, 보물626호, 황남대총 북분, 1974년 발굴, 삼국시대(신라) 5세기. 실생활에서 사용되었다기보다는 무덤부장품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실생활에서 사용하던 토기로 만든 굽다리접시를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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