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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에 찾은 도동서원
    문화 culture/유교문화 Confucian culture 2022. 9. 6. 11:25

    도동서원 전경

    수령이 400년된 이 은행나무는 1607년(선조40년)에 안동부사로 재직 중이던 한훤당 김굉필선생의 외증손이며 이황선생의 고제(高第)인 한강 정구선생이 도동서원 중건기념으로 식수한 것이라 전해진다. 겨울에 보지 못하던 이끼가 푸르게 돋아 있고 와송까지 늘어선 모습이 마치 줄지어선 탑신처럼 보이기도 하고 궁궐지붕에 늘어선 잡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동서원 강당에선 학생들이 찾아와 소학동자(小學童子)라 칭하였던 한훤당의 소학정신을 배우고 있는데 강당 아래엔 뾰족부전나비가 날아들어 무기물을 섭취하고 있다.

     

    다람재에 우뚝한 한훤당 김굉필의 노방송(路傍松) 시비와 이곳에서 내려다본 도동마을 전경

    한훤당 김굉필(1454-1504)은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蓑翁), 한훤당(寒暄堂)이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특히 소학(小學)에 심취하여 스스로 소학동자라 칭하였다. 1480년(성종11) 생원시에 합격핬으며, 1494년 경상관찰사 이극균(李克均)에 의해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주부(主簿), 감찰, 형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세운 서원으로 1568(선조 1) 유림에서 현풍현 비슬산 기슭에 사우(祠宇)를 지어 향사를 지내오다가 1573년 쌍계서원(雙溪書院)으로 사액되었으나 1597년 왜란(倭亂)으로 전소되었다. 그 후 1604(선조 37) 지금의 자리에 사우를 재건하고 보로동서원(甫老洞書院)으로 불리다가 1610(광해군 2)에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 사액받았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존속한 47개 서원중 하나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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