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옥천 용암사(龍岩寺)와 운해
    풍경 landscape 2022. 10. 20. 21:34

    용암사 운무대(雲舞臺) 안내- 미국CNN go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곳으로 선정, 낮게 깔린 구름은 마치 춤을 추듯 일렁이고 운해를 물고 떠오르는 붉은해는 수묵화같은 산봉우리마저 짙게 물들인다. 해발 424m에 위치한 소담스러운 용암사는 일출을 봐도 낮에 봐도 좋은 풍광을 자랑한다.

     

    용암사(龍岩寺) 마애여래입상 충북유형문화재17호. 용암사 뒤편의 대형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은 라말여초에 제작되었다.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온 사람이란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한 열가지 이름중 하나다. 불상 위에 드러난 암반은 비바람으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얹어놓은 듯하다. 연꽃 대좌 위에 발을 좌우로 벌리고 뒤꿈치가 서로 닿을 듯이 어색하게 서 있으며, 몸 주변의 광배는 불꽃을 표현한 듯하다. 눈은 감은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아있으며, V자형의 규칙적인 옷주름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목에 잇는 3개의 주름은 삼도(三道)인 번뇌, 업, 고통을 상징한다. 광배, 연꽃대좌, 입술, 옷에는 붉은색을 칠했던 흔적이 있는데 이처럼 색이 남아있는 마애불은 드물다.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에 가던중 이곳 용바위에 올라 서러벌을 향해 통곡하였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여 마의태자불이라고도 부른다. 광배(光背)란 부처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화한 것이다.

    용암사 마애불 / 배정옥

     

    맑은 날

    코로나로 밀려드는

    허기를 채우려 산사에 올랐다

    절을 품은 산은 명징한 한 말씀을

    절쪽으로 밀어놓았다

    대웅전을 지나 천년을 침묵하는

    마애불상 앞에 서니

    숙연해진다

    망국의 슬픔 삭히며 삼베옷 걸치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군자의 충절은 바람결로 날아올랐나

    천계와 하계사이 구름인양

    창천의 길들을 속계와 이어주는

    자비의 손길로 어루만지는 은혜로움이여

    순간,

    깊고 아름다운 사유을 거느린

    그가 허공을 박차고

    훌쩍 뛰어 내릴것만 같다

    용암사 천불전

     

    용암사 범종각

     

    용암사 대웅전.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13년(552)에 의신(義信)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용암사는 충북 옥천 장령산에 있는 법주사의 말사(末寺)이다.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용암사라고 이름지었으나, 일제때 용바위가 파괴되어 현재는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대웅전 안에는 불상과 5종의 탱화(幀畵)가 보관되어 있다. 용암사 목조아미여래좌상. 아미타여래는 모든 중생을 생사없는 열반에 이르게 하겠다는 큰 소원을 품고 부처가 되어 서방정토에 머물며 불법을 설하면서 극락으로 이끌어주는 부처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86cm이다. 부처의 정수리에 육계가 있으며 이마 위쪽에 계주가 있다. 야무지면서도 단정한 인상이지만 목이 짧고 고개를 약간 숙인 자세다. 오른손을 가슴까지 들고 왼손은결가부좌한 다리에 얹고 있는데 양손 모두 엄지와 중지를 맞잡고 있는 중품중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신의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대의가 두터우며 통견으로 양 어깨를 덮었다. 1880년 불상 복장 속에서 순치8년신묘(효종2년, 1651)에 제작된 다라니경이 발견되어 문경 오정사에서 제작되어 이곳으로 올겨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작은 체구에 약간 숙인 자세, 야무진 인상, 중품중생인의 모습, 착의법을 볼때 조선후기 불상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용암사 종무소

     

    용암사 동서삼층석탑, 보물1338호. 이 석탑은 일반적 가람배치와 달리 대웅전 앞이 아닌 사방이 한눈에 조망되는 북쪽 낮은 봉우리에건립된 것으로 보아 고려때 성행했던 산천비보(山川裨補)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석탑이나 건물을 건립해 산천의 쇠퇴한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것이다. 같은 모양의 석탑 2기는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자연암반 위에 있음에도2층 기단을 갖췄으며 동탑은 4.3m, 서탑은 4.1m로 규모면에서 차이가 있다. 서탑은 2층과 3층 탑신의 몸돌이 결실되어 새로 보충되었다. 각부의 양식과 석재의 결구수법에서 매우 간략한 수법을 보이는데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석탑중 유일하게 쌍탑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옥천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 / 배정옥

    새소리 앞장 선

    용암사 계단 오르는데

    천년동안 눈감지 못한

    대웅전 풍경소리

    억겁 세월

    허공에 기대어

    아직도 못 깨친 깨달음인가

    북쪽 낮은 능선위

    그 때 그 하늘로 올린 설법

    풍화속 무심히 묻히고

    고색석화 마른버짐처럼 자욱 핀

    동서삼층석탑 앞에 서니

    의신조사 숨결 되살아나고

    세월 저쪽 화엄의 바다

    산천의 쇠퇴한 기운 돋워

    쌍으로 세운 간절함 속

    우뚝한 전언의 깊은 속내

    안개 속 장령산을 묵화로 펼쳐들고

    신라 천 년 역사의 전조前兆

    부재를 찾는가

    동서삼층석탑에서 보이는 용암사 전경

     

    운해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옛날 수법이지만 경부선 옥천 철로를 주행중인 열차를 담을 수도 있다. 물론 상,하행 장면을 합성했다.

     

     

    산정무한  /  정비석

     

    (생략).....비로봉 최고점(最古點)이라는 암상(巖上)에 올라 사방을 조망(眺望)했으나, 보이는 것은 그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운해(雲海), 운해는 태평양보다도 깊으리라 싶었다. 내 외 해(內外海) 삼 금강(三金剛)을 일망지하(一望之下)에 굽어 살필 수 있다는 한 지점에서 허무한 운해밖에 볼 쑤 없는 것이 가석하나, 돌이켜 생각건대 해발 육천 척에 다시 신장 오척을 가하고 오연(傲然)히 저립(佇立)해서, 만학천봉(萬壑千峯)을 발 밑에 꿇어 엎드리게 하였으면 그만이지, 더 바랄 것이 무엇일랴.....(생략)

     

     

    나란히 함께 간다는 것은 / 안도현

     

    길은 혼자서 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멀고 험한 길일수록 둘이서 함께 가야 한다는 뜻이다.

    철길은 왜 나란히 가는가?

    함께 길을 가게 될 때에는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늘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토닥토닥 다투지 말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말고,

    높낮이를 따지지 말고 가라는 뜻이다.

    철길은 왜 서로 닿지 못하는 거리를 두면서 가는가?

    사랑한다는 것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알맞은 거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서로 등을 돌린 뒤에 생긴 모난 거리가 아니라,

    서로 그리워하는 둥근 거리 말이다.

    철길을 따라가 보라.

    철길은 절대로 90도 각도로 방향을 꺾지 않는다.

    앞과 뒤, 왼쪽과 오른쪽을 다 둘러본 뒤에 천천히,

    둥글게,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커브를 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도 그렇게 철길을 닮아가라.

    '풍경 landscap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솔산(兜率山)에서  (0) 2022.11.15
    동네 한 바퀴  (0) 2022.11.05
    구봉산 운해  (0) 2022.10.08
    불놀이  (0) 2022.09.12
    팔월 보름  (0) 2022.09.10

    댓글

Designed by Tistory.